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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을지로 재개발 다시 수렁 속으로…박원순 '판도라 상자'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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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 전면 재검토" 발언에

세운재정비촉진지구 혼란 빠져

오락가락 시정에 10년 넘게 몸살

전문가 "선언 말고, 공론화부터 해야"

중앙일보

18일 오후 철거 가림막이 설치된 서울 중구 을지로 일대. 인도를 따라 오른쪽으로 가면 을지면옥이 나온다. 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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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가락하는 서울시의 도시계획 정책으로 을지로와 청계천 일대가 요동치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에 속한 을지로 일대 노포(老鋪)와 공구상 거리가 재개발 사업으로 모두 철거된다는 소식에 박원순 서울시장이 16일 “전통을 살리는 방향으로 재설계하겠다”고 즉답하면서다.

그런데 이 말이 또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이미 철거에 들어간 구역도 있는 재개발 사업을 어떻게 재검토할 것인지, 실제로 가능한지 여부를 놓고서다.

이에 박 시장은 20일 자신의 SNS를 통해 “을지로 일대 재개발 관련해 많은 우려와 질타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서울의 역사와 시민의 추억이 담긴 곳은 당연히 보존돼야 한다”며 전면 재검토 의지를 재차 밝혔다.

서울시에 따르면 관리처분이나 사업시행 인가는 법적으로 취소할 수 있다. 다만 보상이 끝나 철거가 진행 중인 구역은 현실적으로 취소가 어렵고 전례도 드물다. 21일 현재 을지로 3-1, 3-4, 3-5구역은 80개 동 중 33개 동 이상이 철거된 상태다. 이에 비하면 사업시행 인가 상태인 3-2구역, 즉 을지면옥 일대는 판결 또는 협의에 따른 취소가 다른 곳보다 어렵지 않다고 봐야 한다.

서울시 조남준 역사도심재생과장은 “수정ㆍ보완하는 상황을 봐 가면서 (취소 여부를)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조성룡 건축가는 “의사 결정 속도가 너무 빠르다. 시장 주도의 선언보다, 공론화를 통해 시민 의견을 수렴하고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했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

서울 세운상가 재생사업 구간 [연합뉴스]


청계천과 을지로의 구도심은 1980년대 초부터 재개발이 논의되던 곳이다.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것은 2006년 오세훈 전 시장 때였다. 이후 세운재정비촉진지구는 시정(市政)에 따라 ‘개발과 보존’을 오가며 몸살을 앓아왔다. 종로구와 중구에 걸쳐 있는 세운상가 일대 43만8585㎡(약 13만평)가 개발 대상지였다.

서울시는 당시 종로에서 퇴계로까지 1.8㎞에 이르는 세운ㆍ신성ㆍ대림ㆍ삼풍 상가 등 8개 건물을 철거하고 초고층 건물을 짓고, 종묘와 남산을 잇는 1㎞ 상당의 공원 녹지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2000억원을 들여 종로 4가 대로변에 있는 현대상가를 철거하고 공원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조 단위의 보상비와 개발비가 들어가는 사업은 지지부진하게 이어지다, 2010년 문화재청이 세계문화유산인 종묘 근처에 고층 건물 건립 반대에 나서자 동력을 잃었다.

서울시가 재개발 계획을 확정하기 전에 주변 여건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았다는 비난 여론이 이 당시에도 일었다. 2011년 10월 박원순 시장이 당선되면서 세운상가 일대 재개발은 전면 재검토에 들어갔다. 2013년 서울시는 세운상가를 보존하고 일대 구역을 쪼개 재정비하는 세운재정비촉진계획 최종 변경안을 통과시켰다. 옛 도시 조직을 보전하겠다는 이른바 ‘박원순식 도시재생’이었다.

모두 합쳐 177개 구역, 중구는 133개 구역으로 세분화했지만, 전면 철거 방식은 여전해 논란이 일고 있다. 반세기 넘게 을지로ㆍ청계천에서 제조산업을 일군 장인들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산업 생태계가 깨지고, 을지면옥과 같은 노포 역시 철거되면서다.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청계천변은도심 산업의 생태계를 촘촘히 이루고 있어 일부를 들어내면 다른 곳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크게, 신개발, 재개발했던 과거 개발시대 방식은 이제 접고 개별 건물 단위로 개발하거나 두세 필지 묶어 합병 개발하는 방식으로 도심을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시장의 전면 재검토 선언에 인허가권을 쥔 중구청도 난감해하고 있다. 익명을 원한 중구청 관계자는 “박원순 시장이 판도라의 상자의 연 것이다. 이미 공사가 진행된 곳도 많고, 보존 가치에 대해서도 형평성을 맞추기 힘들 것”이라며 답답해했다. 그는 “노포든, 골목길이든 보존 얘기가 거론된 게 2~3년 전부터다. 그때 논의를 시작했어도 늦었는데 철거가 시작되는 상황에서 해답 찾기가 더 난감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상재ㆍ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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