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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베토벤, 베토벤… 이름만 쓰여있어도 술술 팔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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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베토벤 탄생 250주년]

한국 관객 선호 1위가 베토벤… 기왕이면 익숙한 작품 들으려해

유명하지 않은 지휘·연주자여도 그의 곡이면 전석 매진 행렬

이윤에 초연할 것 같은 클래식 공연이어도, 객석의 조명이 꺼지기 전까지 관계자들 피를 말리는 영역이 있다. 티켓 판매 실적이다.

지난해 2월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서울시향 정기연주회. 네덜란드에서 온 안토니 헤르무스(46)가 지휘하고, 러시아 피아니스트 예브게니 수드빈(39)이 베토벤 협주곡 5번 '황제'를 협연했다. 헤르무스와 수드빈은 유럽에서 인정받는 음악가들이지만 국내 관객들은 잘 모르는 연주자. 그런데도 좌석이 모조리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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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6월 롯데콘서트홀에서‘올(all) 베토벤’프로그램을 선보이는 세계적 지휘자 이반 피셔. /빈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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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뒤 같은 공연장에서 안토니오 멘데스(35)가 지휘한 '베토벤 교향곡 영웅' 연주회 역시 매진됐다. 유료 판매율이 95%를 웃돌았다. 기획자들은 머리를 싸맸다. "도대체 이 공연들이 왜 잘 팔린 거지?" 해마다 인기인 베토벤 교향곡 '합창' 연주회까지 더하면, 지난해 서울시향에서 베토벤 작품으로 꾸린 총 4회의 정기연주회가 전 석 매진이었다. 핵심은 베토벤이었다. 조사를 해보니, 티켓을 살 때 가장 많이 고려하는 요소는 압도적으로 '프로그램'이었고, 선호 작곡가 1위는 '베토벤'이었다. "표가 잘 안 나갈 것 같으면 '베토벤'부터 넣고 보자!"는 농담이 나왔다.

마침 내년은 베토벤 탄생 250주년. 베토벤을 기리는 공연이 쏟아진다. 데카에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로 신보를 낸 최희연(51)은 31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베토벤 소나타만으로 무대를 꾸민다. '세계 최고 베토벤 전문가'인 루돌프 부흐빈더(73)는 꽃 피는 5월 서울·대구·광주를 돌며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에 올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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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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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피셔(68)가 30년 넘게 지휘하고 있는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도 6월 24일 '올(all) 베토벤'에 젖는다. 베토벤 에그몬트 서곡으로 시작해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협연 조성진)을 하고, 베토벤 교향곡 7번으로 닫는다. 7월 6일 미하엘 잔데를링(52)과 오는 드레스덴 필하모닉은 베토벤 교향곡 5번으로 정통 독일 사운드를 들려준다. 마시모 자네티(57)가 이끄는 경기필하모닉은 내년까지 베토벤 교향곡 전곡 프로젝트를 펼친다. 베토벤 진수성찬이다.

곡목과 상관없이 연주자의 명성만으로 표를 팔 수 있는 국내 음악가는 백건우(73)와 정경화(71), 조성진(25) 정도. "베토벤은 다르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이름난 연주자가 없어도 프로그램과 제목에 '베토벤'을 넣으면 수월하게 팔 수 있다는 얘기다.

박현진 영아티스포럼앤페스티벌 상임이사는 "같은 콜라여도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파는 것, 미국 현지 콜라가 제각각 맛이 다르듯 나라마다 선호하는 작곡가가 다르다"며 "베토벤은 아시아 시장에서 먹히는 상품"이라고 했다. 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을 꾀하는 '가심비'도 한몫한다. 한정호 에투알클래식&컨설팅 대표는 "일반인들 입장에선 1년에 한두 번 맘먹고 가는 거라 기왕이면 잘 알고 익숙한 작품을 들으려 한다"고 했다.

베토벤 음악이 가진 힘도 크다. 미국 포트워스 심포니의 음악감독인 페루 출신 지휘자 미구엘 하스베도야는 "하이든이 소나타와 교향곡·협주곡이란 형식을 만들었다면 모차르트는 그 틀을 세공하고 확장한 사람. 베토벤은 이를 거대한 건축물로 쌓아올린 '음악계의 피카소'"라고 말한다. "베토벤 음악은 변화상이 뚜렷하고 곡마다 완성도도 높다. 연주자와 관객 모두의 도전 욕구를 자극한다."

[김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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