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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민주노총 ‘암적 존재’”…옛 공안 행태 못 버린 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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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공안부가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의 구속영장을 청구하며 “민주노총은 대한민국 법치와 경제를 망치는 암적 존재”라는 표현을 청구서에 담아 비판이 일고 있다. 노조 탄압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던 1980~90년대 구공안적 시각을 그대로 담은 것으로, 최근 탄력근로제 등을 추진하는 정부·여당의 민주노총 압박 움직임이 수사기관의 ‘공안 퇴행’을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21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는 김수억 금속노조 기아차 비정규직지회장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이 열렸다. 김 지회장은 지난 18일 ‘문재인 대통령과 대화를 요구하는 비정규직 100인 대표단’ 노동자 5명과 함께 집회·시위가 금지된 청와대 앞에서 기습시위를 벌이다 체포됐다. 서울종로경찰서는 지난해 9월부터 청와대와 국회, 대검찰청, 서울지방고용노동청 등에서 여섯차례 불법 집회 등을 한 혐의로 김 지회장의 구속영장을 검찰에 신청했다.

논란이 된 표현은 지난 20일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수사부(부장 김수현)가 법원에 낸 김 지회장의 구속영장 청구서에 담겼다. 검찰은 구속을 필요로 하는 사유에 “피의자는 노사문제 해결을 위해 존재하는 법체계를 무시한 채 불법적인 폭력 집단투쟁을 계속해왔다”며 “이에 대통령과 정부, 정치권도 노동계의 불법행위에 대해 엄단 처벌을 지시, 당부했다”고 적시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11월 정치권 등에서 잇달아 나온 민주노총 비판 발언 등을 ‘주어’ 없이 길게 나열했다. “민주노총과 전교조는 더 이상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당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민주노총은 대한민국의 법치와 경제를 망치는 암적 존재(라고 했다)”(하태경 바른미래당 최고위원), “민주노총이기 때문에 손을 못 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등이 대통령과 정부, 정치권의 “지시와 당부”로 인용됐다. 특히 가장 논란이 된 “민주노총은 암적 존재”의 경우, 누가 발언했는지를 밝히지 않은 채 “당 연석회의”로만 표기해 마치 여당에서 나온 표현인 것처럼 교묘하게 편집됐다. 사회적 타협을 강조하며 임 전 실장이 했던 ‘사회적 약자가 아니다’라는 발언도 ‘엄단 지시’로 포장됐다.

이에 대해 금속노조법률원의 탁선호 변호사는 “(과거) 검사들이 주도권을 잡고 사회질서 유지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노동사건을 공안사건으로 처리해왔다. 예전의 구시대적 시각을 아직 버리지 못한 것 같다”고 비판했다. 최근 검찰은 공안 파트에서 노동사건을 맡을 경우 ‘시국사건화’한다는 비판을 받아들여 이를 떼어내려 했지만, 공안검사들의 반대로 명칭만 ‘노동수사지원과’ ‘공공수사부’ 등으로 바꾸기로 한 바 있다.

‘100인 대표단’ 쪽도 강하게 반발했다. 대표단은 “김 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가 단순히 경찰과 검찰의 과잉 반응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반인권·반노동 기조에 공안검찰이 날개를 편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말부터 보수세력의 민주노총 때리기는 심해졌고, 보수언론에선 ‘민주노총 공화국’이냐며 김 지회장을 겨냥해 불법 시위와 점거농성에 대한 처벌을 요구해오던 상황이었다. 여기에 노동운동을 했던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까지 “지금 민주노총과는 대화로 뭐가 되지 않는다. 항상 폭력적인 방식을 쓴다”(지난해 11월12일)며 거드는 상황이 ‘촛불정부 공안’의 퇴행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검찰은 해당 문구를 경찰이 작성했다면서도, 이를 걸러내지 못한 것은 부적절했다고 인정했다. 검찰 관계자는 “경찰이 작성한 구속영장 신청서 내용을 걸러내지 못하고 그대로 법원에 넘겼다. 범죄 혐의를 소명하는 과정에서 마지막에 꼭 들어가지 않아도 될 사족이 들어간 것 같다.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 박찬호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는 논란이 커지자 “경찰 신청서를 그대로 청구한 것일 뿐 특정 단체에 대한 선입관을 가진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이번 구속영장 논란을 부른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수사부는 지난해 9월 삼성의 노조와해 공작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노조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불공정 게임을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임재우 고한솔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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