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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취재파일] "맞지만 않았으면" 택시기사 잔혹사…대책은 '공염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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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금 내라니 손목 꺾은 만취 승객

운전 중인 택시기사 얼굴로 주먹이 날아옵니다. 뒷좌석에서 끊임없이 욕설을 내뱉는 승객. 택시기사가 가까스로 차를 세우고 요금을 내라고 하자, 이번엔 손목을 꺾습니다. 폭행은 차에서 내려서도 계속됩니다. 지난 11일, SBS 사회부에 들어온 제보 영상입니다.

☞ 참고 기사 : "손 뒤로 꺾고, 계속 폭행"…만취 승객에 맞는 택시기사

승객은 당시 만취해있었습니다. 왜 차를 빨리 세우지 않냐고 하더니, 폭행이 시작됐다는 게 택시기사 설명입니다. 10차선 도로, 5차선을 가는 동안 끊임없이 맞았다고 합니다. 택시기사 강 모 씨는 전치 3주 부상을 입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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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모 씨/택시기사 : 10차선인데 우측으로 가려면 5차선을 넘어가야 되는데 한 2차선쯤 넘어가니까 빨리 안 세운다고... 내려서는 차 앞으로 오셔가지고 귀를 잡아 뜯고 때리고.]

4년 전부터 택시 운전을 시작한 강 씨. 이 일로 생계를 이어가고, 또 노부모님 용돈도 드립니다. 하지만 3주 동안 아예 일손을 놓게 됐습니다. 그것보다 더 힘든 건, 트라우마입니다. 강 씨는 그 날 이후 단 하루도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눈을 감으면, 자꾸 그 날 승객에게 폭행당했던 기억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강 모 씨/택시기사 :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그 생각이 자꾸 나니까. 힘들죠. 일 못하는 거도 속상하고... 무엇보다 운전대 잡기가 싫어요. 일 하기가 싫고. 그렇다고 손님이 많아서 술 취한 사람을 골라 안 태울 수도 없는 상황이고. 하기 싫어도 이게 직업이니까 뭐 어쩔 수 없죠. 낫고 나면 또 해야 되는 게 현실이고...]

● "맞지만 않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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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기사나 버스기사 등을 폭행한 사건은 매해 3천 건씩 일어납니다. 가해자 대다수가, 만취 승객들입니다. 자정 무렵, 신도림역과 강남역에서 취재진이 만난 택시기사들은 하나같이 취객이 가장 두렵다고 털어놨습니다.

[택시기사 A : 뭐 술 취해가지고 뒤에 타고 있다가 목적지 도착해서 깨우니까 막 주먹 휘두르는 사람도 있고 아니면 목적지에 다 왔는데 빨리 더 가라고 막 그런 사람 있었고.]

[택시기사 B : 저희는 안 맞고 했으면 제일 좋겠어요. 겁이 나요. 취객, 주취자를 태우면 목적지도 얘기 않고 무조건 그냥 가라고만 하고 어제 같은 경우는 세 바퀴를 돌렸어요. 세 바퀴. 주먹 날아오면 피하고 그랬어요, 넘어오면. 블랙박스에 다 있고 그래요. 근데 방법이 없잖아요, 승객인데.]

"택시기사 폭행은 하루에 2,3건씩 꼭 들어온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모 경찰서 형사과장 설명입니다.

● '보호 칸막이' 사업은 지지부진

사실 그동안 대책이 없던 건 아니었습니다. 지난 2013년, 국토부는 버스와 마찬가지로 택시도 운전자 보호 칸막이 설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가장 먼저 시작한 건 서울입니다. 서울시는 지난 2014년 여성 운전자들을 대상으로 보호 칸막이 설치 시범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칸막이 설치비용은 20-25만 원가량 드는데, 그 가운데 많게는 절반 정도를 지자체가 지원해주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떨까요?

취재해봤더니, 당시 설치한 건 고작 20여 대. 신청이 저조하다는 이유로 사업을 바로 중단했습니다. 박원순 시장이 공약으로 내걸면서 5년 만에 다음 달부터 시범사업을 다시 합니다. 그런데 다 하는 것도 아닙니다. 서울시 택시 전체 7만여 대 가운데 250대만 합니다.

다른 지역도 살펴봤습니다. 대구와 부산 역시 신청이 저조하단 이유로 지난해 시작했다가, 바로 사업을 접었습니다. 울산과 광주, 인천은 검토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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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관계자 : 올해는 안 하죠. 올해는 하려 해도 이게 워낙 실적이 안 나오니까. 작년에 여성, 장애인 그걸로 했다 하도 안 되가지고 다시 전 운수종사자로 확대를 해도 일단 실적이 들어와야 저희들이 사업을 할 수가 있잖아요. 그렇죠? 19년도 예산이 확정인데 올해는 반영 안 했습니다. ]

● '머리 받침대'같은 '보호 칸막이'…있으나 마나

보호 칸막이가 설치된 택시를 찾는 것도 하늘의 별 따기였습니다. 서울의 경우 현재 단 3대, 대구에는 단 2대만 설치가 돼있었습니다. 나머지 기사들은, 아예 칸막이를 떼 버렸다고 합니다. 이만큼 호응이 없는 데는, 이유가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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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서울시가 설치한 보호 칸막이입니다. 망치로도 깨지지 않는 단단한 강화 플라스틱 소재 칸막이를 운전석을 빙 두르는 형태로 설치해놓은 겁니다. 그런데 사진으로 자세히 보이실 진 모르겠지만, 윗부분이 뚫려 있습니다. 칸막이를 설치해놓은 기사는 이 부분이 불안하다고 합니다.

[택시기사 C : 저는 승객이 하는 얘기 그대로 하는 거거든요. 걱정을 너무 해주니까. 타신 분마다 옆이 다 파였네, 손 다 들어가고, 손도 뻗어보면서 이래요. 손도 다 들어가고 다 붙잡겠네 뭐. 위에도 이게 뭐야, 여기 위를 더 막아야지. 이걸 왜 공간을 띄어놔 막 이러고요. 이거 너무 어설프게 해놨다는 거예요. 외국에는 아주 잘해놨다는 거예요. 앞에도 못 타게 한다든가. 외국에는 안전하게, 그렇게 해놨다고.]

그래도 뭐 여기까진 괜찮습니다. 대구 사례를 한번 보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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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 칸막이일까요? 머리 받침대일까요? 폭력을 막는 건 불가능해 보입니다.

● '니즈'를 반영한 디자인 필요

전문가들은 현실적으로 보호 칸막이가 유일한 대책이니만큼, 실효성을 높이려면 '니즈'를 반영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실제로 사용하는 택시기사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디자인해야 한다는 겁니다. 또한 현재 50% 수준에 불과한 재정 부담을 70-80% 정도까지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취 승객이 택시기사를 폭행함으로써 장기적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보다는 적다는 겁니다.

[안기정/서울연구원 교통시스템 연구위원 : '보호 칸막이' 제도를 활성화하기 위해선 지금 50% 수준인 보조금 지원을 70%, 80%로 끌어올리는 방법도 있습니다. 또 기사들이 꺼려한다는 건 결국 '보호 칸막이'가 사용자 편의적이지 않다는 뜻이니까, 되도록이면 이용하시는 기사 분들의 요구를 반영해서 디자인을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택시에 비용을 지원하는 것에 대해 시민 불만이 있을 수 있는데, 이런 부분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지금 개인택시 하시는 분들이 심야에 안 나오고, 초저녁에 퇴근하는 분들이 많거든요. 심야 시간에 택시가 부족합니다. 특히 고령 운전자들이 젊은 승객하고 마찰 빚는 것을 피해서 야간에 운행 안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보호 칸막이'는 그분들이 심야에도 안전하게 운행할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그래서 택시 승차난 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구속은 1%…'솜방망이 처벌'

지난해 택시기사, 버스 기사 등을 폭행해 검거된 피의자 2천8백여 명 가운데, 구속된 건 단 29명. 1% 수준입니다. 기사들은 이 같은 솜방망이 처벌이, 폭행 사건이 반복되는 이유 중 하나라고 말합니다. 그동안 술과, 심신미약에 관대했던 사회 분위기와 법이 한몫했던 게 아닌가 합니다. 처벌 강화에 대한 고민도 필요해 보입니다. '매 맞는 택시기사' 란 표현을 자주 쓰게 되지 않기를, 해마다 나왔던 대책들이 더는 공염불에 그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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