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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정태명의 사이버펀치]<96>짝퉁과 진짜의 숨바꼭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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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신문

“저희는 진실하게 가짜만을 판매합니다.” 중국 베이징에는 수천개 짝퉁 판매 점포가 가득한 백화점 크기의 건물이 있다. 손님은 이미 가짜임을 알고 찾아온 터라 기분 나쁠 리 없지만 진짜가 보는 피해는 막대하다. '이름은 명품이지만 내용은 가짜'인 상품을 짝퉁이라고 정의한다면 우리 사회 곳곳에도 짝퉁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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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가 많아지고 1인 미디어가 활성화되면서 전문가를 자처하는 이가 많아졌다. 많은 전문가가 미래 일 예측을 주저하지 않는다. 남북평화 향방을 예측하기도 하고 올해 경제 상황을 전망하기도 한다. 열심히 결과를 주시하지만 얼마나 정확한지는 알 수 없다. 많은 전문가는 또 자신의 예측이 어긋나더라도 별로 개의치 않는다. 잘못된 분석은 차치하고라도 엉터리 이론을 말하면서도 스스럼이 없다. 기술 전문가가 정책 전문가로 둔갑하기도 하고, 외모와 언변이 좋으면 전문가 자격을 부여받는 어이없는 기현상이 일기도 한다. 언젠가부터 매일 변화하는 기술을 따라가기가 버겁다면서 스스로 전문가이기를 내려놓은 친구의 용기가 부럽기만 하다.

지금처럼 나라가 어려운 상황에서 짝퉁 정책은 독이다. 어긋난 정책으로 얼마나 많은 피해를 국가와 국민이 감당해야 하는지 정부는 알아야 한다. 현실을 알지 못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몇 년을 지낸 공무원에게 미래를 담금질해야 하는 정책을 결정하는 자체가 짝퉁을 양산하는 이유가 된다. 책임이 부담스러워서 험한 길을 가지 않는 복지부동이 무의미한 정책을 양산하기도 하고, 현실에 무지한 탁상행정은 짝퉁 정책 생산의 공범이 된다. 관리 권한을 내세워 갑질을 하는 소수 공무원이 정부를 짝퉁백화점으로 만들고 있다. 짝퉁을 진짜로 둔갑시킨 사기성 정책 등장으로 다수의 진짜 공무원이 피해자가 되고 있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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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퉁 언론의 피해는 말할 나위도 없다. 언론은 사실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실을 밑천으로 신뢰 사회를 밝히는 등대가 돼야 한다. 그러나 이념과 감정에 치우친 언론의 행태가 진실과 거짓 구별을 어렵게 만든다. 가짜뉴스도 문제지만 무늬만 정론지일 뿐 정치 바람에 편승하고 광고 유혹에 무너지는 언론이 쓴 위선의 탈은 더욱 심각하다. 낚시 밥으로 던지는 제목이나 정권에 지나치게 아부하는 모습이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진실을 보도하고 판단을 국민에게 맡기는 언론이 특정 목적 달성을 위해 지면을 할애하는 짝퉁 언론을 부끄럽게 하는 것이 정의의 실현일 것이다.

어느 경우에도 가짜는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 특징이다.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만일 짝퉁을 강력하게 규제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진짜가 왕따 당하는 사회가 될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조용한 진짜를 위해 짝퉁을 몰아내는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 이에 앞서 사회는 진짜를 구별하고 가치를 판단하는 지혜를 배워야 한다. 의미보다는 단순한 말초신경을 위한 집착이 짝퉁에 지배당하는 나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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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흥미 유발을 위해 짝퉁은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진지하게 미래의 문을 열려면 진실의 열쇠가 필요하다. 짝퉁 퇴치를 위해 용기와 지혜가 필요한 시대가 됐지만 양식 있는 사회 지도층의 끊임없는 노력이 건강한 사회를 만든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기술과 정책의 짝퉁을 비난하기 앞서 나 자신이 진짜인지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어릴 적에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시간이 걸려도 진실은 승리한다”는 말이 아직도 유효하기를 소망한다.

정태명 성균관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 tmchung@skk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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