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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노년과 청춘 넘나드는 종로3가의 낮과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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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홍미옥의 폰으로 그린 세상(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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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뉘는 청춘과 노년, 종로3가 골목길에서. 갤럭시 노트8, 아트레이지 사용. [그림 홍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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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종로3가, 할머니는 청량리. 얼마 전 뉴스에서 본 내용이다. 65세 이상 어르신을 대상으로 가장 많이 하차한 지하철역을 조사한 결과란다. 아하! 할아버지들은 탑골공원, 종묘 등이 몰려있는 종로3가역, 할머니들은 값싸기로 소문난 청과물시장, 경동시장이 있는 청량리역. 단박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지난해 겨울, 종로3가에 몇 차례 갔었다. 언제나 만원인 지하철 1호선과 3호선이 만나는 그곳 종로3가역, 승강장을 나서면서부터 여느 지하철역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역사 내 좋은 위치에 항상 자리 잡고 있는 편의점이나 로드샵 화장품 가게 대신 건강용품 가게와 저렴한 상품을 파는 단기임대매장이 그 자릴 대신한다.

어르신의 홍대, 종로 락희거리
신나는 가요를 틀어놓은 건강용품매장을 살짝 들여다보니 다양한 기구를 체험하는 어르신으로 분주했다. 발목 펌프 운동기구를 만지작거리며 고민에 빠진 어르신, 이미 한가득 쇼핑 상자를 들고 함박웃음을 짓고 나오는 어르신도 보였다. 평일 오전이었음에도 종로3가 역사는 인파로 가득했는데 아닌 게 아니라 남자 어르신들이 대부분이었다.

역사 밖으로 나가면 번쩍이는 귀금속 상가들 귀퉁이엔 겨우 손바닥만 한 좌판이 펼쳐진다. 요즘은 통 구경하기도 힘든 가루무좀약, 상처에 효과만점이라는 이름 모를 연고, 바퀴벌레 박멸이라는 무시무시한 명칭의 약, 그리고 잔뜩 멋을 부린 돋보기와 선글라스가 놓여있다. 물건을 살 것도 아니면서 좌판 옆엔 삼삼오오 어르신들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길을 건너면 갈매기살 맛집으로 소문난 종로3가 돈의동 골목이 나온다. 밤이 되면 직장인들의 노고를 고소한 고기 굽는 냄새와 왁자지껄한 이야기로 날려 버릴 수 있는 곳이다. 최근 방송을 타는 통에 더 유명해지고 분주해졌다는 먹자골목이다.

오전 11시쯤의 골목은 간밤의 흥청거림은 오간 데 없고 조용하기만 하다. 좁은 골목 한쪽엔 인색한 겨울 햇살을 차지하고 자전거를 개조한 미니설비 수레 앞에 두 어르신이 옹색하게 앉아있다. 뭔가를 고치면서 끊임없이 얘기를 주고받는 걸 보니 고장 난 물건이 아니라 이야기 상대가 그리운 모양이다.

내용인즉슨, “아~ 이 석유풍로가 30년도 넘었지만 아직 쌩쌩하거든 그러니 부속만 잘 갈아줘. 마누라 살았을 땐 여기에 맛난 거 많이 해 먹었는데 말여.” 검은 털모자를 쓴 어르신은 석유풍로가 고장 난 게 속상한지 부인이 그리운지 알듯 모를 듯한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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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이 서울 지하철 종로3가역에서 개찰구를 통과하고 있는 모습. 65세 이상 어르신이 가장 많이 하차한 지하철역으로 종로3가와 청량리역이 선정됐다. 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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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걱정 붙들어 매셔, 서울 어디를 가도 이런 거 고칠 수 있는 곳은 없으니깐!”

자신만만하다 못해 잔뜩 거드름을 피우는 어르신의 판자를 덧댄 수레엔 난로, 열쇠, 양변기까지 수리해준다는 글씨가 큼직하다. 만능 기술자인 사장님과 귀한 고객님의 정겨운 대화는 이내 종로 거리의 변화에 대한 성토로 이어졌다.

길 건너는 젊은이의 먹자골목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젊은이들이 모이는 종로3가 익선동과 어르신들의 해방구인 이곳 돈의동 거리는 전혀 다른 세상이라고. 어쩌다 그쪽으로 건너가면 괜스레 젊은이들의 눈치가 보인다는 것이다. 누군들 늙고 싶어서 늙는 것이냐며 목청을 공허하게 높이다 이내 시무룩해진다.

그러다 하릴없는 사람처럼 고깃집 앞에서 두 어르신의 대화를 엿듣고 있는 내게도 동의를 구하는 듯한 눈길을 보낸다. 화가 난 것인지 속상한 건지 알 수 없는 눈길이다. “네~암요 그렇고 말고요. 맞습니다요, 어르신.” 물론 속으로만 대답했다.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의 시 ‘노파의 절망’에는 이런 시구가 나온다. ‘쭈글거리는 노파는 귀여운 아기를 보자 마음이 참으로 기뻤다. 모두가 좋아하고 뜻을 받아주는 그 귀여운 아기는 노파처럼 이도 없고 머리털도 없었다.’ 누군들 저 아기처럼 반짝이는 시간이 없었을까. 불과 몇 걸음 거리인 길 건너 청춘들에게 다가서기 어려운 날이 올 줄을 알았을까.

야트막한 하늘 위를 어지럽게 가로지르는 전선처럼 마음이 복잡해졌다. 하긴 이 골목도 밤이 되면 직장인들에게 그 자리를 내어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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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지고 변화하는 어르신의 홍대로 불리는 종로에 조성된 락희 거리의 모습. [사진 홍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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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곳도 요즘 들어 그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고 한다. 탑골공원 북문에서 낙원상가에 이르는 100여 m의 거리는 ‘락희(lucky) 거리’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그곳은 한때 청춘이었던, 그리고 지금도 마음만은 청춘인 어르신들을 위해 특별히 조성된 거리다. 그러니까 지붕 없는 노인 복지관인 셈이다. 상냥한 가게로 선정된 곳이 있는가 하면 커다란 글씨로 표시된 메뉴판, 심장응급소…. 몇몇 매장 안에는 지팡이 거치대를 설치해놓기도 했다. 그뿐인가 음식값이며 이·미용 요금도 놀랄 만큼 저렴하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본 한겨울의 락희거리는 야심 찬 당초 계획과는 달리 스산하기 그지없었다. 거리의 위생상태도 또 이용하는 어르신들도 적응이 안 되는 모양인지 내 눈에도 아주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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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 1000만명의 방문객이 다녀가는 노인 특화 관광 특수지구인 일본 도쿄의 스가모(巢鴨)의 거리. [사진 홍미옥]




황혼 미팅 주선하는 도쿄의 ‘스가모’
몇 년 전 일본 도쿄에 잠시 드나들 때가 있었다. 그때 도쿄의 '스가모(巢鴨)'라는 곳을 몇 번 방문했는데, 어르신들의 하라주쿠(原宿)라고 불린다는 거리였다. 우리가 벤치마킹했다는 바로 그 동네다.

그 거리는 전철역의 느린 에스컬레이터부터 휴식용 의자, 돋보기, 음용 식수대 등 어르신을 위한 편의시설이 있었다. 역시나 그곳에서도 건강과 장수는 최고 품목인지 각종 건강식품과 멋쟁이 할머니들을 겨냥한 반짝이 큐빅 지팡이,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빨간 속옷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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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모의 대표상품인 장수를 기원하는 붉은 속옷가게. [사진 홍미옥]




호기심에 나도 몇장 샀다. 효과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어르신들의 황혼 미팅을 주선하는 공공장소까지 마련돼 있다고 해 그 배려에 놀라기도 했다. 실제 그곳엔 잘 차려입은 어르신들이 담소를 나누며 시간을 즐기는 걸 목격할 수 있었다.

일본에 비하면 아직도 우린 나 같은 일반인의 눈으로 보기에도 미흡하고 어설프다. 하지만 우리도 일본에 이어 장수국가대열에 합류했으니 조만간 일본을 뛰어넘는 노인복지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언젠가는 나도 그 대열에 합류하게 될 테니까!

그렇게 변화하는 종로3가를 걷다 보니 가게 사이의 좁은 골목길에 노점 꽃 좌판이 보인다. 과하지 않은 꽃다발을 파는 노점엔 은발의 노신사가 꽃을 고르고 있다. 기념일에 장미 100송이를 준비하는 건 청춘들의 전유물만은 아닌 게 분명하다. 멋쟁이 어르신이 들고 계신 아름다운 장미처럼 향기 나는 종로거리를 꿈꾸어본다.

오늘의 드로잉팁
무료 그림 앱인 펜업(PENUP)에는 지난번에 소개했던 대로 컬러링 카테고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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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로잉팁 1. [사진 홍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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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앱 실행 후 화면에서 컬러링을 클릭 후 맘에 드는 도안을 고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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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로잉팁 2. [사진 홍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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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오늘은 먹음직스러운 햄버거를 맛깔나게 칠해볼까 한다.

나만의 특별 레시피가 있다면 추가로 그려 넣어도 좋다. 무료할 때 혹은 점심시간을 기다리며 한번 색칠해 보는 것도 좋겠다. 유화 브러시를 사용해 양감이 느껴지게도 해보고 수채화 브러시로 깨끗한 번짐을 표현해보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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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로잉팁 3. [사진 홍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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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평범하지만 맛있는 햄버거가 완성되었다. 단, 한밤중에 그린다면 꿈틀대는 식욕으로 꽤 곤란할지도 모르니 그 점만 주의하자.



홍미옥 스마트폰 그림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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