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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초콜릿 성분 보여주고 점원 말 통역… IT 무장한 수퍼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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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파리=손진석 특파원




파리의 문화를 상징하는 건물인 '오페라 가르니에' 바로 옆에 '하이퍼커넥티드' 수퍼마켓이 지난 연말 문을 열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이퍼커넥티드(hyperconnected)란 모바일 시대를 맞아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이 연결된 상황을 일컫는 용어다. 19세기 지어진 오페라 극장과 IT(정보기술)를 응용한 차세대 유통 매장이 나란히 마주 보게 됐다는 소식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프랑스 최초라는 이 하이퍼커넥티드 매장을 운영하는 수퍼마켓 체인 프랑프리(Franprix) 본사에 연락했더니 "환영한다"는 응답이 왔다. 약속한 날짜인 지난 11일 찾아갔더니 장 폴 모쉐 프랑프리 최고경영자(CEO)가 기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출입구에서 모쉐 CEO와 인사를 나누자마자 그는 뒤를 돌아보라고 권했다. 흘끗 고개를 돌려보니 웅장한 오페라 가르니에가 한가득 시선에 들어왔다. 전통과 미래, 예술과 유통이 만나는 특별한 공간에 발을 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시 내부를 바라보니 여느 수퍼마켓과 달리 카페, 샐러드바까지 갖춰져 있어 음료와 음식까지 만들어 팔고 있었다. 곳곳에 테이블이 있었다. 내부는 300㎡(약 91평) 넓이다.

입구 오른쪽에는 아이폰 충전용 박스가 두 개 있었다. 아이폰을 충전용 코드에 연결시킨 뒤 비밀번호를 설정하고 문을 닫게 돼 있다. 매장을 이용하는 동안 충전하고 나가면서 꺼낼 수 있게 돼 있다. 출입구 옆의 왼쪽과 오른쪽 창가 테이블에 각 2개씩 설치된 태블릿PC(이하 태블릿)를 손님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다루고 있었다. 태블릿마다 바로 옆에는 디지털 기기 충전용 전기 콘센트가 마련돼 있다. 모쉐 CEO는 "갓 구운 빵과 커피를 주문해 마시면서 동시에 스마트폰을 충전하고 태블릿으로 기사 검색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왼쪽의 카페, 오른쪽의 음료 코너를 지나 10m쯤 들어가니 커다란 실내 나무를 둘러싼 테이블에 태블릿 4대가 추가로 설치돼 있다. 샐러드를 먹으며 태블릿을 다루던 앙투안이라는 20대 남성 고객의 옆에 앉아 함께 태블릿을 살펴보자고 했다. 태블릿에는 프랑프리가 마이크로소프트와 공동으로 개발한 하이퍼커넥티드 매장 전용 앱이 설치돼 있었다. 크게 네 가지로 주크박스, 기사 보기, 일기예보, 모바일 프랑프리 앱 안내로 구성돼 있었다. 메인 화면에서 주크박스를 누르자 약 300곡의 샹송 리스트가 주르르 떴다. 그중 하나를 누르자 천장의 스피커로 음악이 들렸다. 고객에게 매장 내 음악 선택권을 준 것이다. 그동안 어떤 곡들이 많은 선택을 받았는지 볼 수 있다. '뉴스 보기' 코너에서는 갓 작성된 온라인 기사가 가지런히 배열돼 있다. '날씨 보기'에서는 프랑스 모든 지방의 현재 날씨와 바뀔 날씨를 확인할 수 있다. 앙투안은 "앱이 복잡하지 않고 꼭 필요한 메뉴만 있어 편리하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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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님이 프랑스 파리의 하이퍼커넥티드 수퍼마켓에서 점심을 먹으며 태블릿PC를 통해 뉴스를 읽고 있다. 오른쪽은 프랑스어로 된 초콜릿 포장지를 번역 전용 태블릿PC 카메라에 갖다 대자 성분·열량·재료 등이 일본어로 번역돼 화면에 나타난 모습. 현재 영어·중국어·스페인어 등 10개 국어를 지원한다. /파리=손진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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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의 깊숙한 쪽을 쳐다봤더니 눈에 잘 띄는 코너 앞에 별도로 한 대의 태블릿이 세워져 있었다. 모쉐 CEO는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만능 번역기'"라며 씩 웃었다. 그는 진열대에서 초콜릿을 하나 집어 이 태블릿 뒷면 카메라에 비추며 화면에서 일본어를 선택했다. 초콜릿 포장지에 프랑스어로 적힌 성분, 보관 방법, 열량 등이 3초 만에 일본어로 번역돼 화면에 나타났다. 옆에 있던 일본인 여성 관광객한테 번역이 잘됐냐고 물었다. 그녀는 "우와, 상당한 걸요"라며 감탄했다. 이 번역 기능은 중국어, 영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등 10개 국어로 가능하다. 한국어를 비롯해 60개 언어를 추가할 계획이다.

뷔페식 샐러드바도 하이퍼커넥티드 개념을 살리고 있다. 20여 가지의 샐러드 박스마다 센서가 부착돼 있어 언제 음식을 채워 넣었는지, 다 팔려나가 떨어졌는지 여부를 점원들이 갖고 있는 디지털 기기로 알려준다. 이를테면 감자 샐러드가 비워졌다면 즉각 점원들이 알고 채워 넣는 식이다. 샐러드바 옆의 커다란 화면에는 각 샐러드의 자세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햇볕에 말린 토마토'를 선택했더니 100g당 열량이 238㎉이고 설탕은 5.9g이라는 식으로 주르르 정보가 나타났다.

계산을 할 때도 IT를 활용한다. 손님이 보는 방향으로 계산대 위에 태블릿 화면이 두 개 설치돼 있다. 오른쪽 태블릿으로는 계산 내역을 볼 수 있다. 왼쪽 태블릿으로 10가지 언어 중 원하는 말을 선택한 뒤 해당 언어로 말을 하면 실시간으로 프랑스어로 통역돼 바로 옆 스피커로 점원이 들을 수 있다. 중국 관광객들은 위챗 또는 알리페이 앱으로 결제가 가능하다. 모쉐 CEO는 "관광객들이 언어 장벽을 느낄 수 없는 매장"이라고 했다.

숙박 공유 플랫폼인 에어비앤비 이용객을 위한 열쇠 보관 서비스도 가동하고 있다. 고객과 집주인을 만나 집 열쇠를 건네 주거나 돌려받는 시간이 부족하다면 이곳의 에이비앤비 전용 키박스를 이용할 수 있다. 키박스를 만든 스타트업의 전용 앱을 통해 집주인과 고객만 공유하는 비밀번호로 열쇠가 담긴 작은 상자에 달린 문을 여닫을 수 있다. 레베카 에베르 프랑프리 홍보 담당 매니저는 "에어비앤비를 이용하고 열쇠를 이곳에 넣어둔 다음 저희 매장 바로 앞에서 출발하는 공항버스를 타고 샤를드골공항을 통해 출국할 수 있다"고 했다. 이 매장에 왔다는 '기념품'도 독특한 방식으로 남길 수 있다. 입구 한쪽 구석에 '셀카' 전용 머신이 있다. 얼굴을 카메라 앞에 내밀고 하나, 둘, 셋 찰칵했더니 배경에 오페라 가르니에가 그려진 셀카가 찍혔다. 이메일 주소를 입력해 찍은 사진을 즉시 전송할 수 있다.

프랑프리는 프랑스 전역에 약 900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나머지 매장들도 하나둘 리노베이션을 거쳐 하이퍼커넥티드 매장으로 탈바꿈시킬 예정이다. 모쉐 CEO는 "유통업이 좋은 물건을 싸게 파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시대가 됐다"며 "IT를 접목시켜 고객의 편의를 키우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하며 기자를 배웅했다.




파리=손진석 특파원(aur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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