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전적으로 믿으셔야 합니다."
요즘 인기 드라마 속 입시 코디네이터의 단호한 대사도 통하지 않는 시장이 있다. 펀드매니저가 종목을 골라서 투자하는 액티브 주식형 펀드 얘기다. 일반 투자자들이 등 돌리고 외면하면서 순자산(설정액+운용수익) 1조원 이상인 주식형 펀드의 명맥이 끊길 위기에 놓였다. 1조(兆) 펀드는 자본시장의 흐름을 잘 읽고 꾸준한 성과를 올려 투자자 자금을 모았다는 의미에서 상징성이 있다.
◇살아남은 공룡펀드, 덩칫값은?
현재 유일하게 살아남은 공룡펀드인 '신영밸류고배당펀드'는 삼성전자·맥쿼리인프라·기업은행과 같은 배당주에 주로 투자한다. 지난 2003년 처음 출시됐던 롱셀러 펀드로, 전성기엔 몸집이 4조원에 육박할 정도로 커지기도 했다. 하지만 책임 펀드매니저의 퇴사와 성과 부진 등이 맞물리면서 최근 들어서는 자금 유입이 더뎌지는 추세다. 최근 1년, 3년 수익률은 각각 -15.1%, 7.4%로, 동일 유형 펀드 평균(-14.4%, 8.4%)에도 못 미쳤다. 시중 자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며 인기 상종가를 쳤던 메리츠코리아펀드나 KB밸류포커스펀드 등도 투자자 환매가 이어지면서 지금은 1조원 클럽에서 모두 탈락했다.
그래픽=박상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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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식 플레인바닐라투자자문 대표는 "최근 5년간 코스피는 배당 포함해서 15% 상승했지만 대다수 액티브 주식형 펀드는 이를 넘어서지 못했다"면서 "코스피를 뛰어넘는 발군의 실력을 갖춘 수퍼스타 펀드가 없다 보니 투자자 이탈이 더 심해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투자자 김모씨는 "액티브 주식형 펀드를 잘만 고르면 수익이 크게 난다고 하지만, 그걸 골라내기가 너무 힘들다"면서 "전문가라고 해서 비싼 수수료를 내고 맡겼는데 오히려 예금보다 성과가 나쁘니까 눈길이 안 간다"고 말했다.
◇펀드 빙하기… 봄날은 언제?
운용업계 빅3로 꼽히는 삼성·미래·KB운용은 "고객 맞춤형 자산 관리 시대에 펀드 규모에는 집착하지 않겠다"고 입을 모은다. 이 3개사는 1조원 펀드를 여럿 거느리기도 했지만 지금은 단 한 개도 없다.
운용업계 관계자는 “대형사들은 간판 펀드에 올인하듯 마케팅해서 1조원까지 만들었다가 자금이 빠져나갈 때 후유증에 시달린 경험이 있다”면서 “고객들의 투자 입맛도 다양해지고 있어 특정 펀드로만 큰돈이 몰리긴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마경환 프랭클린아카데미 대표는 “주식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크고 작은 변수가 너무 많아졌는데 덩치가 크면 기민하게 대응하기 어렵다”면서 “통계적으론 중소형주의 경우 3000억원, 대형주는 5000억원 정도의 펀드가 우수한 성과를 낸다”고 말했다.
국내 주식시장 전망이 밝지 않고 작년처럼 펀드 성과가 지지부진하면 ELS나 혼합형 펀드 같은 대안 상품으로 투자자 이탈이 가속화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지난해 ELS 발행 금액은 전년 대비 6.8% 증가한 86조6203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국내 유일 공룡펀드를 운용하고 있는 신영자산운용의 이상진 고문은 “시장 흐름을 따라가는 인덱스펀드는 삼성전자 등 반도체 업종 비중이 높은데, 올해는 이 업종 전망이 밝지 않다”면서 “경기 둔화 국면에선 성장기업을 골라 투자하는 액티브 펀드가 유리하다”고 말했다.
이경은 기자(div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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