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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김정기의 소통카페] 함께 가는 최고의 소프트웨어…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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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김정기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새해는 혼자 오지 않는다. 희망과 함께 온다. 그래서 지난 것을 보내고 새 것을 맞이하는 송구영신은 애틋한 새해의 지혜이다. 제야의 보신각 종소리같이, 새해를 향한 카운트다운처럼 희망의 소통이 널리 퍼지기를 기대한다.

작년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소통의 길’들이 본격적으로 뚫린 해였다. 11월 23일에는 군사분계선 안 화살머리고지에서 남측과 북측을 연결하는 육상 길이 열렸다. ‘지옥에 내려온 천국행 도르래’라며 방송은 흥분했다. 11월 30일엔 남북철도의 실태조사를 위한 열차가 북으로 출발했다. 경의선은 부산~서울~평양~신의주~베이징을 연결하고, 동해선은 부산~강릉~원산~나진~중국연변자치주~몽골횡단철도~시베리아횡단철도~유럽을 잇는 희망을 꿈꾼다. 분단으로 고립된 섬나라 대한민국이 유라시아 대륙의 일원이 되는 거다. 12월 26일에는 판문역에서 ‘남북 철도, 도로 연결 및 현대화 착수식’이 거행되었다.

당시 임종석 청와대 전 비서실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비핵화와 함께 속도를 낸다면…. 당장 2022년에 경의선을 타고 신의주까지 가서 단동에서 갈아타고 북경으로 동계올림픽 응원을 갈 수도 있을 것”이라며, “과거의 틀에 우리의 미래를 가두지 말고 멀리 도모하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소망한다”고 했다.

중앙일보

소통카페 1/21


이 소망을 위해서는 북한행 길과 함께 대한민국에서도 과거의 틀에 매이지 말고 다양하게 길을 내고 적극적인 소통에 나서야 한다. 평화의 길을 특정 정권이나 집단만이 건설할 수 있다는 생각은 단견이다. 이른바 불가역적인 평화의 길, ‘대못을 박는’ 일은 빨리만 간다고 되는 길이 아니다. 네 편이든 내 편이든 국민과 함께해야 갈 수 있는 멀리 가는 길이라는 역사적 경험에 겸손해야 한다. 모든 길이 궁극적으로 목표하는 ‘평화롭게 잘 사는 한반도’를 위해서는 더욱 그렇다.

선과 악의 이분법이 아니라 치열한 논쟁과 지속적인 소통만이 안정된 큰길을 닦을 수 있다. “합리적이고 옳은 의견은 경쟁이 치열한 정보의 공개시장에서 당연히 승리한다는 것”(『On Liberty』, 존 스튜어트 밀)을 믿어야 한다.

좀 다른 목소리를 두고서 ‘그럼 전쟁하자는 말이냐’는 비난은 권위주의 군사독재시대에 비판적인 의견에 대해 ‘빨갱이로 몰던’ 것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 대한민국의 국민소득이 70달러도 못되던 세계 최빈국의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했겠지만, 지나친 경제만능주의 정책으로 인한 인권유린과 불평등한 노사문제가 개인과 사회에 끼친 엄혹한 고통과 손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후유증으로 법을 경시하고 합리적인 토론을 무시하는 풍조가 만연하게 된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과학철학자 칼 포퍼(Popper)는 선이나 행복과 같은 추상적 가치를 완벽하게 실현하려는 집단은 전체주의적 사고로 빠질 수 있음을 경고했다. 집단편향에 쉽게 빠져서, ‘보는 것을 믿기’(seeing is believing)보다는 ‘믿는 것을 보게’ (believing is seeing) 되기 때문일 것이다. 소통은 인류가 만든 최고 소프트웨어다. 소통은 자신(들)의 의미를 관철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의미(meaning between people)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소통은 네 탓 내 탓으로는 갈 수 없는 길이다.

김정기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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