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헌 산업1팀 기자 |
“대통령이 말해도 안 풀리는 규제는 도대체 누가 풀어줄 수 있느냐”는 물음에는 말문이 막혔다. 규제 장벽이 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고, 취재하면 할수록 함께 울분이 터졌다.
혁신성장을 내세운 이번 정부가 출범 2년이 다 되도록 규제 하나 속 시원하게 풀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현장에서 반복해서 들어야 했던 것은 책임지기 싫어하는 공무원 조직에 대한 비판이었다.
“‘내 임기 동안만 조용히 지나가면 된다’는 생각에 기관장이 사로잡혀 있는데 누가 규제를 푸는 데 관심이나 있겠어요.” “이익단체 사이에서 눈치 보면서 밥그릇 챙기기에 바쁘잖아요. 결국 규제 완화는 뒤로 밀리는 거예요.”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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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부처 간 칸막이는 규제가 좀처럼 깨지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다. 의료기기 관련 규제는 4개 부처가 담당한다. 유전자 조작 식품은 7개 부처가 각각 관여한다. 모두가 책임지고 있는 듯 보이지만, 바꿔 말하면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 규제를 가할 때는 모두가 숟가락을 얹고, 규제를 풀 때는 주무 부처가 아니라고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한국판 규제 공화국의 현실이다. 공무원 출신 한 교수는 이렇게 표현했다. “부처별로 뺑뺑이 돌다 보면 결국은 담당하는 부서를 찾을 수가 없는 거예요. 공무원을 그만두니 현실이 보이네요.”
문제는 정부가 추진하는 규제 샌드 박스가 또 다른 규제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샌드박스에 들어갈 수 있는 기업을 정부가 선정하기 때문이다. 이를 예방하려면 샌드박스를 과감하게 넓혀 원하는 기업이 들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문제가 생기면 다시 묶어도 늦지 않다.
정부의 규제 권한은 생각 이상으로 막강했다. 50곳이 넘는 기업 등을 접촉했지만, 대부분은 “정부와 등지면 좋을 게 없다”는 이유로 고사했다. 규제는 그토록 끈질기게 기업들을 옭아매고 있었다.
강기헌 산업1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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