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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취재일기] 규제공화국, 대한민국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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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강기헌 산업1팀 기자


한 사람은 울먹였고, 다른 사람은 쌓였던 화를 쏟아냈다. 또 다른 사람은 체념하는 법을 배우게 됐다고 했다. 신년기획 ‘규제 OUT’ 시리즈를 취재하면서 만난 이들의 사연이다. 정부 규제에 막혀 창업자 두 명만 남고 10명이 넘는 직원을 울면서 떠나 보낸 얘기를 들을 때면 울컥하기도 했다.

“대통령이 말해도 안 풀리는 규제는 도대체 누가 풀어줄 수 있느냐”는 물음에는 말문이 막혔다. 규제 장벽이 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고, 취재하면 할수록 함께 울분이 터졌다.

혁신성장을 내세운 이번 정부가 출범 2년이 다 되도록 규제 하나 속 시원하게 풀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현장에서 반복해서 들어야 했던 것은 책임지기 싫어하는 공무원 조직에 대한 비판이었다.

“‘내 임기 동안만 조용히 지나가면 된다’는 생각에 기관장이 사로잡혀 있는데 누가 규제를 푸는 데 관심이나 있겠어요.” “이익단체 사이에서 눈치 보면서 밥그릇 챙기기에 바쁘잖아요. 결국 규제 완화는 뒤로 밀리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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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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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담당 공무원이 규제가 자기 소관인지 모르는데도 규제가 괴물처럼 산업현장에 달라붙은 경우까지 있었다. 기술 발전에 발맞추지 못하는 제도 역시 산업 현장에선 규제로 작동한다. IT 기술 발전에도 20년째 제자리인 원격의료가 그렇다.

정부 부처 간 칸막이는 규제가 좀처럼 깨지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다. 의료기기 관련 규제는 4개 부처가 담당한다. 유전자 조작 식품은 7개 부처가 각각 관여한다. 모두가 책임지고 있는 듯 보이지만, 바꿔 말하면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 규제를 가할 때는 모두가 숟가락을 얹고, 규제를 풀 때는 주무 부처가 아니라고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한국판 규제 공화국의 현실이다. 공무원 출신 한 교수는 이렇게 표현했다. “부처별로 뺑뺑이 돌다 보면 결국은 담당하는 부서를 찾을 수가 없는 거예요. 공무원을 그만두니 현실이 보이네요.”

문제는 정부가 추진하는 규제 샌드 박스가 또 다른 규제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샌드박스에 들어갈 수 있는 기업을 정부가 선정하기 때문이다. 이를 예방하려면 샌드박스를 과감하게 넓혀 원하는 기업이 들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문제가 생기면 다시 묶어도 늦지 않다.

정부의 규제 권한은 생각 이상으로 막강했다. 50곳이 넘는 기업 등을 접촉했지만, 대부분은 “정부와 등지면 좋을 게 없다”는 이유로 고사했다. 규제는 그토록 끈질기게 기업들을 옭아매고 있었다.

강기헌 산업1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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