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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시론] 내부 고발, 제보자 아닌 제보 내용으로 판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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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우·신재민 폭로 둘러싸고

정치권 이해 따라 시각 갈려

내부 고발은 내용이 사실인지

확인하고 재발 방지 노력해야

중앙일보

이지문 한국청렴운동본부 이사장 리셋 코리아 시민정치분과 위원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 수사관과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폭로를 계기로 이들이 공익신고자에 해당하는지, 고발 내용이 진실한지를 둘러싸고 공방이 일고 있다. 한편에서는 동기·방식에 대한 부정적 시선으로 파렴치범으로 몰고, 다른 편에서는 1980년대 민주화 이후 가장 큰 양심선언 사건이라며 의인으로 치켜세운다.

필자는 92년 14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군 부재자 투표 과정에서 여당을 지지하라는 정신교육과 함께 공개투표 같은 부정행위가 있었다고 고발했었다. 김태우·신재민 씨의 경우 법적 공익 신고 여부를 떠나 신고 내용이 사실인지, 공익에 부합하는지에 대한 차분한 확인보다 정략적 마타도어나 진영 논리에 따라 감정적 대응이 앞서는 상황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어느 정부에서든 공익 제보는 나올 수 있다. 정권 차원 비리가 아니더라도 부처 차원에서, 고위공직자 또는 여당 국회의원 개인의 비리든 신고 대상이 있을 수 있다. 내부 고발은 상식과 원칙의 문제일 뿐임에도 정치권의 이해에 따라 신고를 바라보는 시각이 천양지차다. 특히 일부 여당 국회의원들이 고발자 개인의 인격을 거론하며 인신공격하는 행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또 야당 역시 정부 때리기 차원에서 정쟁의 수단으로만 끌고 가려고 하는 행태 역시 적절치 못하다.

내부 고발이 나오면 신고자인 메신저가 아니라 제보한 내용인 메시지에 대해 집중하면 된다. 신고자 보호와 관련된 법에서는, 예를 들어 공금을 횡령한 직원이 적발되어 해고당할 상황에서 회사가 무단으로 폐수를 방류해왔다고 제보했다면 국가 기관은 신고 내용에 대한 사실 여부만 확인하는 것이지 그 동기를 파악해 조사 및 보호 여부를 결정하지 않는다. 물론 대중적 지지를 얻을 수 있고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보다 윤리적인 고발이 요청된다. 설령 그렇지 않은 신고라 하더라도 정부는 무조건 백안시할 것이 아니라 과연 그 메시지가 사실인지, 그리고 공익적 가치가 있는지 객관적 확인 작업과 함께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이와 함께 허위로 제보한 것이 아니라면 신고를 함으로써 당하는 불이익이 있었는지 살펴보고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중앙일보

시론 1/19


신고자보호법은 원칙적으로 인적사항을 밝히고 법에서 정한 기관에 신고할 경우 비밀 보장, 신변 보호, 신분 보장, 책임 감면, 비밀 준수 면책과 같은 보호와 함께 보상을 담고 있다. 특히 공직자는 직무 과정에서 알게 된 이들 행위에 대해 신고하게끔 되어 있다. 국가가 공직자에게 신고 의무를 부과한다면 국가 역시 신속하고 철저한 조사와 함께 신고자를 보호할 의무가 당연히 있다. 정치권에서는 두 건의 폭로를 계기로 불필요한 정쟁만 되풀이할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부패 행위 신고자 보호를 담고 있는 부패 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과 공익 침해 행위 신고자 보호를 규정하고 있는 공익신고자보호법에 미비한 점이 없는지를 살펴보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입법 노력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기업 비리와 국가 재정 건전성을 해치는 행위 등 신고 대상을 확대하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신설하며, 국민권익위원회의 독립성 확보 및 조사권 부여가 요청된다. 또 신고자 보복 시 보다 강력한 처벌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법 개정이 요구된다. 몰수한 부패 수익의 일정 비율을 재원으로 하는 공익제보자지원기금 설립 역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신고를 보다 용이하게 할 수 있도록 공익신고자보호법상 권익위에 신고할 경우에만 허용하는 변호사를 통한 대리 신고를 확대하고 서울시 공익 제보 보호 및 지원에 관한 조례에서 인정하고 있는 시민단체를 통한 신고 역시 고려할 점이다.

법적 차원의 강화도 중요하지만, 내부 고발에 대한 보다 우호적 인식이 요청된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공익 신고의 날’ 선포와 함께 필자의 고발을 포함해 우리 사회를 변화시킨 10대 공익 제보를 발표하는 등 공익 신고의 긍정적 기여에 대해 홍보하고 있다. 영국에는 “블라인드 뒤에 있는 할머니를 조심하라”는 말이 있다. 할머니들이 블라인드 사이로 밖을 보다가 공동체 질서에 위반되는 행위를 목격하면 바로 신고하다 보니 동네 사람들이 아예 그런 잘못을 하지 않게 되었다는 의미다. 할머니들의 적발이 강력한 예방 효과를 낳는다. 공익제보자에 대한 강력한 보호는 고발자에 대한 사후 지원의 의미와 함께 부패 비리를 사전 예방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공정하고 투명한 사회를 원한다면 공익 신고에 대한 인식 전환이 절실하다.

이지문 한국청렴운동본부 이사장·리셋 코리아 시민정치분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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