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5 (목)

[노트북을 열며] 정치인 테마주의 위험한 거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중앙일보

주정완 금융팀장


“당사의 대표이사는 황교안과 개인적인 친분 관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당사의 사업과 전혀 관련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지난 15일 증시 마감 후 코스닥 상장사인 아세아텍이 한국거래소 공시를 통해 투자자들에게 안내한 내용이다. 황교안 전 총리가 자유한국당에 입당한 당일이다. ‘황교안 테마주’라는 소문이 돌면서 주가가 급등하자 회사 측이 공식 입장을 밝힌 것이다. 거래소의 조회 공시 요구에 대한 답변이었다.

공시를 본 투자자들은 냉정함을 되찾았을까.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졌다. 공시 다음 날인 지난 16일 이 회사의 주가는 30%가량 뛰어올랐다. 같은 날 코스닥 지수 상승률(0.43%)의 약 70배다. 새해 들어 이 회사의 누적 주가 상승률은 70%가 넘는다.

아세아텍은 대구시 달성군에 본사를 두고 농기계를 생산·판매하는 중소기업이다. 지난해 6월 결산에선 29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1년 전보다 30%가량 이익이 줄었다. 지난해 7~9월에는 영업이익(23억원)과 순이익(13억원)이 모두 적자로 돌아섰다. 회사의 실적만 보면 주가가 급등할 이유가 전혀 없어 보인다.

‘유시민 테마주’도 비슷한 양상이다. 전남 목포의 보해양조가 대표적인 종목으로 꼽힌다. 유시민 작가가 이 회사의 사외이사가 된 것은 2017년 3월이다. 지난해 10월 초까지만 해도 보해양조의 주가는 800원 선에서 움직였다. 그러다 유 작가의 정계 복귀설이 나오자 지난해 12월 한때 2300원 선까지 넘어섰다.

보다 못한 유 작가가 직접 나섰다. 그는 “그거(테마주) 다 사기다. 선거에 나갈 것도 아닌데 자기들끼리 돈 갖고 장난치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 발언이 나온 직후 보해양조의 주가는 11%가량 급락했다.

투자자들은 생각을 고쳐먹었을까. 천만의 말씀이었다. 새해 들어 다시 불이 붙었다. 보해양조는 지난 2일과 3일의 이틀간 20% 넘게 오르더니 다시 2200원 선을 넘어섰다. 이후 주가가 등락을 거듭하면서 지난 18일에는 1800원 선에서 거래됐다. 4~5개월 전과 비교하면 여전히 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낙연 테마주’ ‘오세훈 테마주’도 한때 주가가 급등하며 한국거래소의 감시 대상에 올랐다. 거래소는 정치인 테마주에 대한 감시 활동을 강화하고 수시로 투자자들의 주의를 촉구하고 있다.

여의도 증권가에선 정치인 테마주에 대해 실체가 없다는 점에서 ‘신기루’와 같다고 말한다. 설령 특정 회사의 대표와 정치인에게 개인적인 친분이 있더라도 회사의 실적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듣지 않기로 작정한 사람들에겐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는 법이다.

주정완 금융팀장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