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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매경데스크] 최저임금 인상 때 놓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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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지난해 말 도요타자동차의 도요다 아키오 사장이 야구선수인 스즈키 이치로와 대담한 프로그램을 흥미롭게 시청했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이치로가 도요타 사장의 연봉을 35억엔(약 350억원)까지는 높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러자 도요다 사장은 "최종 의사결정자로 내가 책임은 지지만 임금은 사람들이 납득할 만한 수준이어야 한다"며 "일본 연봉 기준은 외국과 다르며 특히 제조업에서 임금 격차를 크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답했다. 이는 자신의 행동이 전체 공동체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는 일본인 특유의 사고방식을 보여준다. 과연 한국은 어떤가.

미국처럼 짧고 굵게 일하면서 상대적으로 고액 연봉을 받는 모델일까, 아니면 일본처럼 초봉은 낮지만 70세까지 길게 일하는 모델일까. 대부분 한국 임금 근로자는 50대 중반에 회사를 나와 은퇴자로 생활한다. 조선시대에 사농공상이란 신분제가 있었다면 최근에는 임금 근로자의 신분 서열이 나타났다. 결혼 시장에 가 보면 재직 중인 회사의 규모, 정규직 여부부터 묻는다. 공무원과 대기업 정규직, 대기업 계약직, 중소기업 직원 순서로 인기가 있다.

한국은행이 최근 내놓은 보고서는 대기업·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를 잘 보여준다. 국내 대기업(종업원 300명 이상)과 중소기업의 기업 규모에 따른 임금 프리미엄 추정치는 1980년 6.3%에서 2014년 46%로 커졌다. 대기업에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중소기업 근로자에 비해 임금을 50%가량 더 받는다는 뜻이다.

이는 중소기업연구원 발표에서도 드러났다. 한국의 종업원 500명 이상 대기업 임금은 5명 미만 기업의 3.1배에 달했다. 주요국의 종업원 500명 이상 대기업과 5명 미만 소기업 간 임금 격차를 살펴보면 미국이 1.3배, 일본 1.5배로 2배를 넘지 않았다. 노동연구원 분석에서도 원도급 대기업의 임금 총액을 100으로 보면 1차 협력사는 약 54이며 3차 협력사는 42에 불과하다. 대기업 직원이 한 달에 500만원을 받는다면 3차 협력사 직원은 210만원밖에 못 받는다는 얘기다.

왜 이렇게 기업 규모와 고용 형태에 따른 임금 양극화가 심화됐을까.

이는 임금 차이가 생산성에 기인한 게 아니라 노조 유무와 노조의 강성 정도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최근 광주형 일자리 도입을 둘러싼 진통을 보면 이런 우려는 설득력이 있다. 강성 노조가 지배하는 자동차 산업의 글로벌 비교는 이를 잘 보여준다. 국내 자동차 업계 근로자 평균 연봉은 9072만원이다. 일본 도요타(8390만원), 독일 폭스바겐(8303만원)에 비해 높다. 국내 차 업계는 매출액 대비 임금 비중도 13%에 육박해 도요타(5.9%), 폭스바겐(10%)보다 높다. 그럼에도 한국 완성차 업체 생산성이 도요타보다 높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번 정부가 들어서면서 노조는 한국 사회 주류 세력이 되었지만 걸핏하면 파업하며 이제는 누구도 제어하지 못하는 슈퍼 권력이 되었다. 이는 평균 연봉이 9100만원인 국민은행 노조의 최근 파업에서도 드러난다. 중소기업 직원 눈으로 보면 강성 노조는 기득권의 성벽을 높게 쌓은 귀족 노동계급이다.

그동안 문재인정부는 최저임금 인상 등을 통해 저임금 근로자의 소득을 높여왔다. 그러나 최저임금 인상과 강성 노조가 있는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의 임금 낮추기 또는 임금 억제를 동시에 패키지로 처리했어야 했다. 최저임금 인상과 '최고임금 인하 또는 동결'을 한 세트로 묶었다면 좋았을 뻔했다. 물론 사기업 임금에 대해 정부가 직접 간섭하긴 어렵다. 그렇다면 북유럽처럼 정부가 나서서 노사정 협의를 통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도 방법이다. 스웨덴과 네덜란드는 20~30년에 걸쳐 노동개혁을 추진했다. 스웨덴은 개별 기업 수익성에 크게 상관없이 업종별로 '동일노동 동일임금' 정책을 정착시켰으며 네덜란드는 시간제·파견직을 광범위하게 허용하되 종일제 근로자와 차별하지 않도록 사회적 협약을 맺었다. 이를 통해 스웨덴과 네덜란드는 상위 10% 근로자 임금을 하위 10%의 각각 2.5배, 3배로 낮췄다. 한국은 이 비율이 4.5배로 상당히 높다. 이번 정부의 성패는 강성 노조의 무리한 요구를 얼마나 제어하고 이들이 쌓아 올린 기득권의 벽을 얼마나 낮추는가에 달려 있다. 지금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근로자 간 신분 서열은 더욱 굳어지고 사회적 분노와 대립은 격화될 것이다. 문재인정부에 남겨진 시간은 많지 않다.

[김대영 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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