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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기고] 심석희 선수에게 스포츠인권상을 수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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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얼마 전 평생을 노동 운동에 투신한 선배의 정년퇴임 축하 모임에 다녀왔다. 모처럼 만나 이야기꽃을 피운 조촐한 자리였는데 불콰해진 선배의 40년도 훨씬 더 전에 벌어진 대학 시절 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소위 '빠따(몽둥이)'가 있던 시절이었는데, 당시에 경험한 폭력의 공포가 여전히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고 털어놨다. 세상에! 노동자로 살면서 4번이나 구속당했고 강철같이 살아온 남자의 머릿속에 아직도 청년 시절에 겪은 폭력이 고통으로 남아 있다니….

최초로 경험한 폭력이 얼마나 집요하고 고통스럽게 화인처럼 남아 있는지 보면서 최근 스포츠계에서 일고 있는 미투운동을 생각했다.

(성)폭력 문제는 빙상, 유도, 테니스, 태권도, 체조 등 전방위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피해자 대부분이 자신을 제대로 방어할 수 없는 미성년자였기에 우리로서는 그들이 느꼈던 고통과 치욕과 불안을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설 만큼 전 국민적 관심과 우려를 사고 있는데 과연 문제의 원인은 무엇이고, 어떻게 고칠 수 있을 것인가.

그동안 많은 진단과 처방이 나왔다.

그중에는 스포츠계의 폐쇄적인 문화와 도제식 제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폐쇄적인 문화는 전문가 집단에서 늘 일어나는 문제다. 법조인이든 의료인이든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분야는 늘 타인을 배제하기 마련이다. 특정 종목의 기술을 가르치는 것은 대단히 전문적인 일이기 때문에 그들만의 세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또 도제식 교육이라는 것은 상당히 효과적인 교육 방법이다. 스승이 가진 모든 지혜와 지식을 넘어 품성까지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문제의 근본 원인은 지도자들이 인권에 대한 인식이 결여됐기 때문이라 봐야 한다. 인권 감수성이 낮거나 아예 없었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게 '성적과 기록'이라는 미명 아래 비인간적인 행위를 할 수 있었다. 가르치는 선수 이전에 한 명의 인간이라는 인식이 없었고, 목표를 향해 함께 가는 동반자가 아니라 수단이라고만 여겼다.

따라서 이에 대한 근원적 인식 제고가 필요하고 전면적 교육이 필요하다. 어떤 이들은 '처벌만이 능사냐'고 하는데 이 경우에는 '철저한 조사와 처벌'이 능사다. 세리(稅吏)처럼 빈틈없이 조사해 가을의 찬 서리 같은 처벌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반복적이고 집요하게 스포츠 인권 교육을 해야 한다. 지도자들의 무의식 속에서 자동으로 반응이 나온다면 문제의 많은 부분이 해결될 것이다.

여성가족부와 문화체육관광부 등 관계 부처는 2월 중으로 '체육 분야 성폭력 등 인권 침해 근절을 위한 대책'을 내놓기로 했다. 좋은 대책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고려할 수 있다. 첫째, 피해자들이 신분 노출이나 2차 피해에 대한 염려를 하지 않고 신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동안 어둠 속에 감춰졌던 일들이 낱낱이 드러날 것이다. 둘째, 반드시 가해자들이 합당한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그래야 운동장과 코트 안팎에서 피해자와 마주치는 일이 없을 것이다.

2019년 1월 8일은 앞으로 한국 스포츠계가 기억해야 할 날이 될 것이다. 이제 어느 부모가 자녀를 운동선수로 키우고 싶겠는가. 인류는 1948년 세계인권선언을 발표했다. 올해로 71년째다. 심석희 선수는 개인적으로 엄청난 고통과 피해를 감수하고 용감하게 나섰다. 스포츠가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기회를 우리 모두에게 제공한 셈이다. 스포츠인권상을 만들어 그녀를 첫 번째 수상자로 선정하자. 그리고 매년 그들의 용기를 잊지 말고 우리를 돌아볼 기회를 갖자. 그래야 앞으로 우리 모두가 양심에 거리낌 없이 스포츠 선수들의 플레이를 즐기고 그들에게 마음껏 박수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유상건 상명대 스포츠ICT융합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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