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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KPGA 이준석 “체벌보다 인종차별이 견딜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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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트랙 선수에서 골프로 전향

폭력과 체벌 싫어 호주로 유학

세계 1위 지낸 제이슨 데이와 동창

“올해 3승 거둔 뒤 디 오픈 출전 꿈”

중앙일보

이준석. [우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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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참았다면 아마 지금도 스케이트를 타고 있었을 것이다. 태극마크를 달고 쇼트트랙 금메달을 땄을지도 모를 일이다. 팀 내 집단따돌림 사건 같은 일에 휘말렸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는 지금 스케이트 화를 벗고 골프 클럽을 잡고 있다. 국적은 호주가 됐다.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의 이방인 이준석(31) 이야기다.

이준석은 1988년 대전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다.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쇼트트랙으로 대전 지역을 휩쓸었고 대표 선수가 되기 위해 서울의 엘리트 코스에 들어갔다. 그러나 서울 목동 링크에 가서 훈련을 시작하자마자 그만뒀다. 무시무시한 체벌이 있었다. 어머니에게 그만두겠다고 했다. 그동안 갈고 닦은 스케이트가 아까웠지만,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고 말했다.

쇼트트랙을 그만둔 뒤 그는 골프를 했다. 실력이 금방 늘었다. 중학교 1학년 때 호주 퀸즈랜드로 유학을 갔다. 부모님이 “한국에서는 학교 안 가고 운동만 해야 하니 공부도 할 수 있는 곳으로 가라”고 권유했다. 낯선 나라에서 말이 통하지 않았지만 견딜 만했다. 차별이 없지 않았지만, 체벌보다는 나았다. 또 실력이 있다면 인정해주는 문화가 있었다. 이준석은 가장 열심히 훈련하는 학생이었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연습장에서 공을 쳤다. 8시 반부터 수업을 들었고, 오후 3시부터 또 공을 때렸다. 어두워지면 라이트를 켜고 훈련했다. 깊은 밤에는 숙제를 했다.

다른 호주 아이들도 이준석을 따라 새벽에 연습장에 나오기도 했지만 대개 하루 이틀 하다 그만뒀다. 중학교 2학년이 되던 해에 아시아계 아이가 전학을 와 새벽 훈련에 동참했다. 그는 다른 아이들과 달랐다. 이준석 보다 일찍 나오는 날도 있었다. 그의 이름은 제이슨 데이, 세계랭킹 1위를 지낸 그 제이슨 데이다. 당시 데이는 몸이 아주 마른 편이었다. 골프 실력도 거칠었다. 당시 이준석의 핸디캡은 0, 데이는 11이었다. 이준석은 “제이슨은 가난한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치열하게 훈련했다. 우리 둘이 퀸즈랜드주에서 주니어 1, 2위를 다퉜고, 함께 호주 대표가 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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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시절 이준석(아랫줄 우측에서 두 번째)과 제이슨 데이(윗줄 우측에서 두 번째). [사진 이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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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는 열아홉 살 때 좀 더 큰 무대에 도전하기 위해 미국으로 갔다. 이준석은 한국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했다. 2009년 KPGA투어 퀄리파잉 스쿨에서 1위를 했다. 그러나 그는 KPGA투어에서도 이방인이었다. 청소년기를 외국에서 보낸 그는 한국 문화를 잘 몰랐다. 일부 선배가 “외국에서 배운 선수라 인사를 제대로 안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선배 연습을 방해할까 봐 인사를 안했더니 그런 일이 생겼다. 그다음부터는 인사 안 한다는 선배를 보면 화장실까지 쫓아가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고 말했다.

그래도 문화 차이를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했다. 성적도 부진했다. 잔디에도 적응하지 못했다. 이 코치 저 코치를 찾아다니다 스윙도 망가졌다. 이준석은 “어디서든 적응을 잘하던 제이슨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고 말했다.

성적이 떨어지면서 그는 방황했다. 한국과 호주, 아시안 투어, 중국 투어를 전전했다. 데이는 세계랭킹 1위에 올랐는데 그는 여전히 자리를 잡지 못했다.

이준석의 처가는 대구에 있다. 호주에 어학연수를 온 한국인과 사귀다 스물다섯이던 2013년 결혼했다. 현재 다섯 살, 세 살인 아이 둘이 있다.

2016년 가족이 있는 한국에 돌아오기로 결심했다. 그러면서 왼팔에 ‘스페로 스페라(spero spera)’라는 문신을 새겨넣었다. 라틴어로 ‘살아 숨 쉬는 한 꿈을 꾸라’는 뜻이다.

최근 성적은 좋은 편이다. 지난해에는 몇 차례 우승 경쟁을 했다. 그러나 아직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진 못했다. 이준석은 “작년 후반에 샷 감각이 돌아왔다. 올해는 3승을 거두는 게 목표”라며 “한국오픈에서 우승해서 메이저 대회인 디 오픈 챔피언십에 나가고 싶다. 국내에서 열리는 PGA 투어 CJ컵 출전권도 따서 제이슨 데이를 필드에서 만나고 싶다”고 했다.

외국 생활을 오래 해서 그런지 외모도 튄다. 수염을 길렀고 올 블랙이나 레드 등 튀는 색깔의 옷을 입는다. 이준석은 “내면은 보여줄 수 없기 때문에 일단 외면으로 어필할 수밖에 없다. 연예인처럼 운동선수도 TV를 통해 보여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패션은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내가 입었던 옷이 중계방송을 통해 노출된 뒤 많이 팔렸다고 들었다. 수염 때문에 알아보는 팬들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지게 된 짐도 있다. 일부 동료는 “태어난 곳도 한국이고, 활동하는 곳도 한국인데 왜 호주 국적인가, 병역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닌가”라고 지적한다. 이준석은 “병역 문제는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말하기 조심스럽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주니어 시절 열심히 해서 호주 대표가 됐고, 그래서 호주 국적을 가지게 됐다. 호주 국적을 포기했다면 호주에 계신 부모님도 기반을 잃게 될 상황이었다”며 “PGA 투어에서 활약하다가 군대에 다녀온 배상문 선배나, 지금 군에 가는 선수를 보면 미안한 생각이 든다. 국적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을 존중한다”고 했다.

한국에서 태어났다는 자부심은 크다. 호주인이 됐지만 이름을 바꾸지 않고 ‘준석’으로 쓴다.

이준석은 생각한다. 어릴 적 계속 스케이트를 탔으면 어땠을까, 호주로 유학을 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러면서도 친구인 제이슨 데이처럼 세계적인 스타가 됐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이준석은 “사람들에게 갈채를 받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준석은…
생년월일: 1988년 5월 9일(대전 출생)

국적: 호주

체격: 키 1m74㎝, 몸무게 76㎏

골프 시작: 12세

프로 입문: 2008년 KPGA Q스쿨 1위

주요 성적: 2018년 최경주 인비테이셔널 공동 2위

전북 오픈 4위

2017년 전북오픈 공동 4위

최경주 인비테이셔널 공동 9위



글=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사진=우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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