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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다시 쓰는 인구론]어쩌다 자식은 부모에게 행복 아닌 ‘짐’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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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부터 취업까지 돈에 눌린 양육

남는 건 자녀와 나의 ‘불안한 미래’

차라리…부모가 되지 않는 선택

경향신문

그래픽 | 윤여경 기자 tigeryoonz@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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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사람들이 하는 대로 몇백만원짜리 유모차를 태우고, 아이에게 좋다는 것을 찾아 먹이고 입힌다. 유아기 때부터 취업준비생 때까지 최소한 남보다는 뒤처지지 않게 하기 위해 수천만원의 사교육비를 댄다. 그래도 자녀의 미래는 불투명하고, 아이 키우기에 올인한 나의 미래도 불안하다. 아이 키우는 데 돈은 필요조건일 뿐이지만, 아이 키우기의 8~9할을 가족 책임으로 여기는 사회에선 돈의 무게가 다른 조건을 압도한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돈으로 다 되는 것도 아닌데 개인에게 모든 책임이 넘어오니 결국 돈 문제만 크게 부각된다. 자녀 가치에 대해 생각할 여유는 없다. 쏟아부었는데 아이의 미래가 불안하다면 부모는 어떤 선택을 내리게 될까. 부모가 되지 않는 것이다.

■ 아이는 줄었는데 상품은 늘어났다

김미희씨(34·가명)는 지난해 8월 첫아들을 낳고 사진 공유 SNS인 인스타그램에 아들 계정을 만들었다. 친구들이 아기의 성장 과정을 올리는 것을 보면서 아이 크는 모습을 따로 기록해주고 싶었다. 아이 계정을 만드니 ‘우리 소통하고 지내요’라는 댓글과 함께 모르는 사람들이 팔로를 하기 시작했다. 광고 업체들이었다. 찜찜했지만 한편 익숙했다. 정보가 모이는 곳에는 언제나 장사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김씨는 인스타그램에서 또래들이 아이를 기르는 모습을 엿보며 ‘육아 아이템’을 자연스럽게 습득해갔다. 보습에 좋은 로션, 씻기기 편한 욕조부터 몇백만원짜리 유모차까지 절로 눈길이 갔다. 많은 육아용품을 주변 사람들에게 물려받았지만 빠진 것이 있으면 찾게 됐다.

인스타그램에는 우리 사회 ‘부모 되기’ 역할을 수행하는 다양한 소비 활동이 게시된다. 육아 관련 해시태그(정보 검색을 쉽게 해주는 메타데이터 태그)를 검색해보면 15일 현재 #맘스타그램(1353만여개), #육아스타그램(2188만여개), #딸스타그램(1684만여개), #아들스타그램(1406만여개) 등이 무수히 쏟아진다. 인스타그램에서 엄마들의 모습을 연구한 강혜원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연구소 연구위원은 “인스타그램에서 모성 실천은 육아 지식 생산자와 습득자의 경계, 정보와 광고 사이의 경계, 기록과 전시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특징을 보인다”며 “소비문화가 진화하면서 얼마를 쓸 것인지, 소비문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해지고, 엄마들이 할 일이 더 늘었다”고 말했다.

■ 자녀가 성인 돼도 끝없는 ‘부모 노릇’…청년 격차 더 벌린다

아이 키우기에 정말 필요한 것

본격적으로 육아 시장이 열리는 것은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다. 임신 확인을 위해 산부인과에 가면 연계 조리원, 성장앨범 촬영 업체들을 접하게 된다. 만삭사진, 50일 사진을 무료로 촬영해주면서 성장앨범을 패키지로 판매하는 식으로 업체들은 진화했다. 초보 엄마들이 육아와 상품 정보가 뒤섞인 정보를 받아들이는 곳은 조리원이다. 김씨도 몬테소리 수업과 분유 업체 수업을 참관했다. 아기 울음소리 익히는 법을 배우며 분유 상품을, 아기 모빌을 만들며 몬테소리 교재를 자연스럽게 접했다.

개인이 육아 책임 모두 떠맡으며

‘뒤처지지 않기’ 위해 돈 쏟아부어

신조어 ‘식스 포켓’도 이젠 옛말

이모·삼촌까지 지원 ‘에잇 포켓’


백일잔치, 돌잔치도 이벤트가 되었고 상차림, 답례품 모두 상품으로 거래되고 있다. <엄마의 탄생>을 쓴 여성학 연구자 김향수는 “전통적 통과의례인 돌잔치 준비나 진행을 전문업체의 서비스가 대체했다”며 “성장앨범과 같은 상업 의례들이 새로운 관습으로 자리 잡으면서 상업 의례들을 비교해 현명하게 소비해야 한다는 새로운 사회적 압력이 생겨났다”고 밝혔다. 아이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왜 상품의 개수는 계속 늘어날까. 유아용품 시장은 1990년 5000억원 수준에서 2018년 3조8000억원 수준에 이르렀다. 아이가 귀해지니 아이 하나를 위해 부모, 조부모, 외조부모 6명이 주머니를 연다는 ‘식스 포켓’이라는 신조어가 나왔고 이제 이모, 삼촌까지 붙어 ‘에잇 포켓’이 됐다.

■ 0세부터…뒤처질까 두렵다

‘놀이 형태를 띤 교육’은 0세부터 시작된다. 백화점·마트 문화센터에서는 0~3개월짜리에게 하는 베이비 마사지 수업, 6개월 내외 영아들의 오감 자극 활동 등부터 찾을 수 있다. 사교육의 시기는 계속 내려와 유아 시장도 장악했다. 최근 전국보육실태조사를 보면 어린이집·유치원 시기 특별활동 프로그램 수는 평균 2.4개로 나타났다. 영어학원 형태나 놀이학교, 체육센터 등 기관을 다니는 아이들은 월평균 43만4300원을 쓰는 것으로 나타났고 영어학원 비용은 가구소득 대비 11.8%를 차지했다. 기관 이용으로 인한 비용이 부담되는 편이라는 의견은 53.5%, 매우 부담된다는 의견은 20.6%로 나타났다. 영아의 6.7%, 유아의 24%가 시간제 학원을 이용하고 있었는데 시간제 학원 중 부모 부담 비율은 영어가 11만9200원으로 가장 높았다.

딸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박미경씨(39·가명)는 영어학원이 고민이다. 유아기에는 영어유치원을 보내거나 학습지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해 왔지만 초등학교에 가서는 상황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구글 번역, 네이버 파파고 서비스가 나왔는데 영어학원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싫지만 ‘여기는 한국이니까’라며 마음을 다잡는다. “부모들은 다 아이의 적성과 흥미를 고려해 아이가 원하는 삶을 살도록 도와주고 싶어 하죠. 임금 격차가 크고 비정규직을 차별하는 사회라는 것을 부모가 알고 있는데 그럴 수 있나요?”

부모들이 원하는 것은 최고가 되는 것이 아니다. 평범해지는 것이다.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을 쓴 사회학자 오찬호는 “사교육의 효과는 부귀영화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평범하게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투자”라고 말한다. “헬조선에서 ‘평균치’로 살아간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우니 사교육을 멈출 수 없다. 모두가 멈추지 않으니 모두가 시작점을 앞당긴다”는 것이다. 오찬호는 ‘사교육 없이 평범하기조차 힘든 세상은 누가 만들었나’라고 묻는다.

2015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9개국 대상 자녀가치 국제비교 조사에서 한국의 부모들은 자녀에 대해 양면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녀는 부모에게 기쁨을 준다’는 긍정적 답변도 많았지만, ‘부모의 자유를 제한한다’ ‘재정적 부담이 된다’는 부정적 인식도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은기수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한국 부모들은 자녀에 대한 가치가 서양 사람들과 다르다”며 “아이가 하루하루 자라는 것만 봐도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 귀한 자식을 얼마나 잘 가르쳐서 사회에서 성공시킬까를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녀와 함께하는 현재의 기쁨보다는 자녀의 앞날, 일생을 고려하면서 출산을 결정하다 보니 아이 낳기가 점점 힘들다는 말이다.

1명당 사교육비 6427만원 써야

겨우 ‘보통사람’ 수준 될 수 있어

대학 입학 후엔 취업 활동 지원


신한은행이 2018년 3월 만 20~64세 금융거래 소비자 2만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8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를 보면 자녀 1명의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드는 교육비는 총 8552만원이다. 사교육비가 6427만원으로 75.1%를 차지했다. 대학 등록금까지 고려하면 다른 비용은 뺀 교육비로만 1억원 이상 든다는 말이다. 월평균 소득이 1000만원 이상인 가구의 자녀 1인당 총교육비는 1억4484만원으로 300만원 미만인 가구의 교육비 4766만원보다 3배나 많았다.

■ 부모들이 책임지는 기간 점점 늘어

대학 입학 후엔 오히려 본격적으로 돈이 들어간다. 대학 등록금, 자녀 용돈 및 생활비부터 취업이 늦어지면 취업 준비를 위한 활동도 지원해야 한다. 청년실업률이 높아지고 청년이 갈 만한 일자리가 적으면 결국 부모 부담이 되는 구조다. 취직한다고 끝도 아니다. 결혼이 남았다. 신혼부부들이 자기 힘으로 구하기 힘든 서울의 집값은 결국 부모 부담이다. 김윤희씨(56·가명)는 딸이 대학 졸업 후 취업하는 데까지 3년이 걸렸다. 3년 동안 매달 용돈을 주고 토익학원을 다녀야겠다고 하면 학원비를 내줬다. “취업이 늦어졌는데 취업한 곳도 너무 월급이 적어 가끔 제가 도와주고 있어요. 아직 결혼도 남았는데 결혼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걱정이에요. 서울 아파트가 몇억이라는 얘기 들으면 기가 질려요. 부모 노릇은 언제 끝나는 건가요.”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상장사 571곳의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일대일 전화조사를 한 결과 2018년 상반기 대졸 신입직원 최고령은 30.9세, 최저령은 24.4세로 집계됐다. 1997년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30세를 넘은 신입사원이 증가하기 시작했고 인크루트 조사 결과 10년 사이 30세 이상 ‘늦깎이’ 신입사원 비율은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취업이 늦어지니 ‘캥거루족’(자립할 나이가 됐는데도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기대는 청년)과 ‘부메랑 키즈’(대학·사회생활 등으로 수년간 부모 곁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청년)도 늘고 있다. 2018년 인크루트가 성인 남녀 3086명에게 설문조사한 결과, 정신적 독립과 경제적 독립 두 가지 모두에 대해 ‘독립 전’이라고 대답한 비율은 18.2%에 달했다.

청년들의 경제적 독립, 결혼도 모두 지연되고 있다. 2017년 초혼 연령은 남자 32.94세, 여자 30.24세로 1997년 남자 28.59세, 여자 25.71세에 비해 늦어졌다. 한국에서 성인기 이행의 비용은 가족이 책임지는 구조로 부모의 부양을 받는 청년 집단이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부모의 양육 부담도 늘어난다는 의미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 결과 국민건강보험 가입자 중 25~34세 청년이 부모 피부양자로 있는 비율은 2002년에서 2015년까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25~29세는 2002년 25.3%였지만 2015년 30%로 늘었고, 30~34세는 2002년 9%에서 2015년 12.8%로 늘어났다.

■ 부모 자산으로 벌어지는 격차

한국 사회는 자녀 부양 책임의식이 높다. 2015년 가족실태조사를 보면 ‘부모는 자녀의 대학교육비를 책임져야 한다’에 49%가, ‘자녀가 취업할 때까지 책임져야 한다’에 33.7%가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러한 자녀 부양 책임의식은 역으로 부모 지원을 받지 못하는 청년들에게 격차를 만들고 있다. 김수민씨(33·가명)은 지난해 10월 결혼했다. 아내는 대학원에서 공부 중이고 김씨도 노무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지금은 구청 산하기관에서 일하면서 세전 230만원 정도 번다. 대전에 사는 김씨 아버지는 일용직으로 용접 관련 일을 하고 어머니는 일을 하다가 그만뒀다. 대학 때부터 과외를 해 자취 비용을 벌었다. 아내도 스무살 때부터 장학금을 받아 학비를 조달하고 생활비는 스스로 벌었다. 지금은 은행의 전세 대출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친구들 중 부모 자산이 넉넉한 경우를 보면 부러움을 느낀다. “주변에 드라마 <SKY 캐슬> 같은 집안이 많은데 63빌딩에서 결혼식 하는 걸 보면서 부러웠죠. 원룸 구하러 다닐 때 빌라 건물주가 1988년생인 것도 봤어요. 그런데 계약은 50대인 아주머니랑 한단 말이에요. 88년생의 엄마겠죠. 속으로 ‘서류상 건물주’는 좋겠다고 생각하죠.” 김씨는 퇴근하면 오후 7시부터 3~4시간 동안, 새벽 6시30분에 일어나 2시간 정도 공부한다. 올해 꼭 합격하고 싶다. ‘억울함’은 김씨의 동력이다. “ ‘라이선스 사회’잖아요. 한국 사회에 억울함이 있기 때문에 열심히 해요. 자산에 따른 무시를 당하지 않으려면 전문 자격증을 따야겠다고 생각해요.” 아이는 2명 낳는 게 목표지만 당분간은 아이 낳는 것을 미루고 있다.

이지현씨(34·가명)의 경우 부모의 빚이 짐이 된 경우다. 남편 부모가 IMF 경제위기 때 빚보증 서준 게 잘못돼 채무 문제가 터질까봐 혼인신고도 안 하고 있다. 회사원인 이씨의 소득이 보험판매사인 남편보다 더 많다. 두 사람 소득을 합치면 월 500만원 정도. 10년 동안 연애한 사이지만 남편의 채무 문제를 전부 알지는 못했다. 결혼하고 더 알게 됐고 출산 계획은 미루게 됐다. “남편의 채무는 제 선택이니까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만 제가 감당할 부분에 2세까지는 안 들어 있는 듯해요.”

실제 부의 대물림을 목격할 때 속상하다. “시댁에서 집을 해줘 적어도 5억~7억원 하는 서울 역세권 아파트에서 시작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경우 출발선이 이미 다르게 되는 거죠.”

부모 자산이 청년 세대의 격차를 만들고 가족이 사회적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도구가 됐다. 2017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한국노동패널조사 9차 연도(2006)부터 18차 연도(2015) 자료를 통해 부모와 떨어져 사는 19~39세 미혼인과 이들의 부모를 분석한 결과 부모와 자녀 모두 경제적 지원을 주고받는 경우는 다른 집단에 비해 정규직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세대 간 자원 이전이 계급적 위치를 강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부모 자산 따른 격차 대물림 막고

아이 키우기 불안감 해소하려면

개인 단위로 복지 제도 다시 짜야


취·창업 준비활동 비용 지원 여부에서는 현재 부모의 경제적 지위가 영향을 주는 변수로 나타났고 하층에 비해 중간층과 상층일수록 부모가 경제적으로 더 많이 지원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고교 졸업자보다 대학 졸업자가 취업 지원을 더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의 계층은 자녀의 소득에 일관되게 정비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 학비 지원의 경우 자산 5억원 이상일 때 학비를 지원하는 비율이 더 높았다. 취·창업 준비활동 비용 지원 여부에서는 현재 부모의 경제적 지위가 영향을 주는 변수로 나타났고 하층에 비해 중간층과 상층일수록 부모가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격차 확대의 악순환을 끊으려면 성인기 이행까지의 지원 구조를 총체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김영란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가족이 아니라 개인 단위로 복지 제도를 다시 짜야 한다”며 “20대가 되면 부모의 경제 지원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북유럽처럼 가야 부모 자산 격차로 인해 청년들 격차가 생기지 않고 사람들이 아이를 낳고 싶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 부모 지원 없이도 홀로 서도록…유럽 주요국, 20대 청년층까지 포괄하는 보장제도 갖춰

유럽의 청년보장 제도

교육지원에 생활비·주거지원까지

부모의 경제력에 의존하지 않고도

교육에 전념하도록 하는 게 핵심

영·유아 지원 머무른 한국과 대조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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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출산 현상은 감당하기 어려운 높은 양육부담의 결과이다. 한국 사회도 아동·청소년 지원정책이 틀을 갖춰가고 있지만 주로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가족지원정책의 틀에 머물러 있다.

청년은 정책의 대상에서 소외돼, 부모의 경제적 지원에 의존하거나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교육·취업 기회가 불평등하게 나타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유럽이 대학생과 직업을 구하지 못한 20대 청년층까지 포괄하는 보장제도를 폭넓게 갖춘 것과 대조적이다.

유럽의 청년보장제도는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있는 ‘성인 이전의 존재들은 개인으로서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정신을 근거로 한다. 유엔헌장 등에서 아동은 18세까지로 규정되지만 시대 변화에 따라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시기가 늦어짐에 따라 20대 후반까지 포괄하는 다양한 정책이 만들어지는 추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청년실업률이 급상승하면서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각국의 현실에 맞는 청년보장제도를 만들 것을 권고했다. 청년보장제도는 교육지원과 공공부조, 고용지원, 주거지원, 의료지원으로 구성돼 있다. 교육지원에는 생활비와 주거지원까지 포함된다. 공공부조는 실업급여와 장애·빈곤 청년에게 주는 지원이다. 부모의 경제력과 무관하게 불안에 내쫓겨 질 낮은 일자리로 섣불리 취업하지 않고 교육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핀란드에서는 교육비가 무료이며 17세 이상 학생에게 학업보조금이 부모 소득에 따라 차등 지급된다. 독일에는 ‘바펙’이란 주거비를 포함한 생활비 지원제도가 있다. 고등학생까지는 전액 무상지원이며, 대학생은 반액만 상환한다. 대졸 취업준비생도 12개월간 저리융자 형태로 바펙을 이용할 수 있다.

아일랜드는 주거급여 대상자의 경우 사회주택과 임대료 보조금을 지급하며, 연간 소득 1만5000유로(약 1918만원) 이하 저소득층의 경우 주택 구입 시 국가가 40%, 50%, 60%씩 지원한다.

단 한 번도 직장생활 경험이 없거나 불안정한 일자리에 있는 사회초년생을 위한 생계지원도 발달해 있다. 독일, 핀란드는 직장생활 경력이 없는 취업준비생을 위한 실업급여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프랑스에는 니트(직장에 다니는 것도 아니고 교육이나 직업훈련을 받는 상태도 아닌 청년)가 구직활동에 뛰어드는 것을 지원하는 수당이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21~26세는 취업했더라도 불안정 노동에 종사하거나 사회에 안착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소득에 따라 차등적으로 수당을 지급한다.

한국에서 근로장려금이나 실업급여는 직장 경력이 있어야 수혜를 받을 수 있다. 직업훈련 보조금인 취업성공패키지 프로그램은 대학 4학년(전문대 2학년)에게만 적용된다. 올해부터 19만명을 대상으로 청년구직활동지원금 지급이 시작되지만 지급 요건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건강보험료 기준 소득 인정액이 중위소득 120% 혹은 150% 이상 가구에 속한 청년은 제외되는데 부모가 서울에 아파트 한 채만 있어도 적용 대상에서 제외될 소지가 크다. 19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는 취약계층을 위한 맞춤형 정책이 부족하다는 것도 특징이다. 결국 미취업 청년 대다수는 부모의 뒷바라지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하다.

부모가 청년 자녀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는 구조는 정책 설계에도 어려움을 준다. 형편이 어려우면 취준생 기간이 오래 걸리는 게 아니라 좋지 않은 일자리, 비정규직으로 취직하기 때문에 오히려 취업 준비기간이 짧다. 반대로 대학 때 전폭적으로 지원받아 바로 취업되는 경우 등을 보면 계층 간에 취업 준비기간이 제각각이다. 부모의 계층이 높을수록 취업 준비기간이 길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집안 사정이 안돼서 바로 취직해 구직활동지원금을 못 받는 경우도 생겨난다. 신혼부부 주거지원도 개인 소득을 근거로 보는데 부모 자산을 받는 경우에 역전될 수도 있다. 가령 부부가 합쳐 연봉 8000만원을 받으면 신혼부부 주거지원을 못 받지만 부모가 생활비를 지원해주는 대학원생 부부는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기헌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유럽 청년보장제도의 기본은 국가와 시민 간의 계약”이라며 “청년 개개인에 대한 보편적 지원이 한국에서도 확산되려면 청년의 교육과 훈련에 대한 지원은 공공성을 위한 일이라는 의식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목차

1. 인구 감소, 위기인가 기회인가

2. 다 인구 때문일까

3. 세대게임을 넘어

4. 우리 모두는 일할 수 있을까

5. 아이 키우기에 정말 필요한 것은

6. 지방은 지속가능한가

7. 우리는 이방인을 품을 수 있을까

8. 돌봄은 어떻게 재구성될까


임아영·박은하 기자 laykn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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