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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건강 에세이] 맞춤 항암치료 '그림의 떡' 안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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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정선 인하대병원 폐암센터 소장

서울경제


근대 폐암 항암 화학치료의 시작은 바넷 로젠버그 박사가 실험 중 우연히 새로운 항암제(시스플라틴)를 발견한 지난 1964년이었다. 시스플라틴 처방으로 말기 폐암환자가 10개월 정도 생존할 수 있게 됐는데 당시로서는 혁신적 성과였다.

이후 약 40여년간 많은 노력을 했지만 생존기간은 3∼5개월 늘어나는 데 그쳤다. 그래서 폐암을 치료하는 의사들이 치료에 소극적이고 심지어 비관적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연구논문들을 국제학술지에서 종종 볼 수 있었다.

2004년 폐암환자의 표피성장인자수용체(EGFR) 유전자에 변이가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후 EGFR 유전자 활성 억제제 치료가 기존의 항암 화학치료보다 환자의 생존기간을 3배 이상 증가시킨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면서 폐암을 바라보는 시각도 부정에서 긍정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몇 년 뒤 ‘역행성 림프종 인산화효소(ALK)’라는 유전자 변이가 있는 환자에게 효과적인 ALK 억제제가 개발됐다. 이후 치료제 개발은 점점 빨라져 지금은 EGFR·ALK 억제제로 표적치료 후 재발했을 때 대응할 수 있는 차세대 표적치료제도 처방할 수 있게 됐다. 덕분에 10개월 남짓했던 진행된 말기 폐암환자의 생존기간도 4년을 넘어서고 있다.

지난해부터 암 환자에게 잘 듣는 맞춤형 항암제를 선별하기 위한 차세대염기서열분석(NGS) 검사에 건강보험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EGFR·ALK는 물론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BRAF·PI3KCA·ROS1·RET·MEK1 등 다양한 유전자에 변이가 있는지 한 번에 알 수 있는 검사다. 변이가 발견되면 그에 맞는 표적치료제를 선택해 개인별 맞춤 항암치료가 가능해졌다.

그렇다고 폐암을 둘러싼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다. 치료 효과가 잘 알려져 있는 유전자(EGFR·ALK) 변이는 전체 폐암환자의 약 40%에게서만 발견된다. NGS 검사용 폐 조직을 얻는 것도 진행된 폐암환자 중 일부에게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적지 않은 폐암환자는 지금도 표적치료제 처방을 받을 수 없고 전신 부작용이 동반되는 항암 화학치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런 와중에 면역항암제(PD-1·PD-L1 억제제 등)가 등장했다. 우리 몸속에 있는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스스로 공격하도록 작용하기 때문에 암 치료에서 기존의 항암제와 다른 새로운 장을 열어가고 있다.

지난해 항암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꾼 공을 인정받아 제임스 앨리슨 미국 텍사스 MD앤더슨암센터 교수와 혼조 다스쿠 일본 교토대 의대 명예교수가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말 대한폐암학회에서 개최한 국제학술대회의 캐치프레이즈는 ‘한계를 넘어서(Beyond the Limit)’, 학회가 폐암 환우·일반인과 함께한 ‘2018 폐암의 날’ 행사의 주제는 ‘희망을 찾아서’였다. 폐암 치료가 혁신적 발전을 거듭하고 있어 폐암 진단이 더 이상 사망선고가 아님을 알리기 위한 학술행사 및 대국민 홍보의 일환이었다.

이 같은 약진에도 불구하고 남겨진 숙제도 있다. 해외 학회에서 소개되고 효과가 검증된 치료법을 일선 진료현장에 신속히 적용하는 것은 진행된 폐암환자들의 생존기간이 1년 남짓하기 때문에 간절하고 시간을 다투는 사안이다. 표적치료제·면역항암제는 한 달에 1,000만원 안팎의 엄청난 비용이 드는 고가의 항암제다.

따라서 건강보험에서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대부분의 환자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항암제에 대한 건강보험 적응증 확대와 함께 현재 2∼3년 이상 걸리는 건강보험급여 등재기간의 혁신적 단축도 필요하다. 새해에는 환자에게 ‘미국종합암네트워크(NCCN) 진료지침’에서 권고하는 표준치료를 할 수 있었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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