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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디지털스토리] "데이트도 미뤘어요"…미세먼지, 일상생활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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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초미세먼지 최근 '매우 나쁨' 기준치 넘어

미세먼지로 외부활동 줄어…소비에도 영향

성인 10명 중 9명 "범국가적 대책 필요해"

(서울=연합뉴스) 박성은 기자 김민선 인턴기자 = "흙먼지가 끊임없이 날아왔고 우린 흙먼지를 안 마시려고 작은 천 쪼가리로 코와 입을 가렸어요. 식탁에 접시와 컵을 놓을 때는 먼지 때문에 항상 거꾸로 엎어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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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먼지로 뒤덮인 2040년. 지구는 숨쉬기 좋은 장소가 아니다. 곡물이나 과일은 물론 사람들도 점점 병들어 간다. 결국 사람들은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을 찾기 위해 우주로 떠난다. 영화 '인터스텔라' 이야기다.

영화 속 잿빛 하늘은 현실에서 재현됐다. 지난 14일 서울 초미세먼지(PM-2.5) 농도는 2015년 관측 이래 최악을 기록했다. 탁한 공기에 "이민 가고 싶다" "미세먼지보다 차라리 강추위가 낫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전문가들은 미세먼지가 장기적으로 사람들의 건강은 물론 소비시장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 시장상인들 "미세먼지 많은 날, 매출 40% 이상 줄어"

"추운 건 견디겠는데 미세먼지는 못 견디겠어요. 미세먼지 많은 날에는 장사가 너무 안돼요. 평소보다 매출이 40% 이상 줄었으니 말 다 했죠."

지난 15일 명동에서 만난 붕어빵 장수 정 모(52) 씨는 이렇게 하소연했다. 정 씨는 "월요일에 방문한 손님들은 선반에 놓여있는 붕어빵 말고 다시 구워달라고 요청했다"며 "미세먼지가 앉아있을까 봐 못 먹겠다고 하더라"고 덧붙였다.

한국환경공단이 운영하는 대기오염도 공개 홈페이지 '에어코리아'에 따르면 14일 서울의 평균 미세먼지(PM2.5) 농도는 129㎍/㎥에 달했다. 13일은 83㎍/㎥, 15일은 82㎍/㎥를 기록했다. '매우 나쁨' 기준치(75㎍/㎥)를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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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째 이어진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공습으로 시장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은 뚝 끊겼다. 서울 남대문 시장에서 옷가게를 10년 넘게 운영한 남 모(54) 씨는 "미세먼지 경보가 발령된 날에는 평소보다 2∼3시간 일찍 문을 닫는다"라고 말했다.

마스크를 쓰고 장사를 하는 상인도 눈에 띄었다. 육포를 판매하는 정 모(61) 씨는 마스크를 쓰고 소리를 지르며 호객행위를 했다. 정 씨는 "어제(14일) 마스크 안 쓰고 장사를 하다가 머리 아프고 속도 답답해서 큰코다쳤다"며 "미세먼지가 작년보다 올해 더 심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 희비 갈리는 업계…외식·대형소매점 매출 감소, 공기청정기·마스크 판매 증가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야외활동이 감소하고 관련된 소비도 위축된다.

직장인 정 모(36) 씨는 지난주 주말에 잡혔던 데이트 약속을 일주일 뒤로 연기했다. 정 씨는 "최근 소개팅으로 만난 분과 남한산성으로 드라이브를 가기로 했는데, 날씨가 너무 안 좋고 두통이 심해져 미뤘다"고 아쉬워했다.

이필상 서울대 경제학부 초빙교수는 "미세먼지가 많으면 사람들이 외출을 안 하고 경제활동을 줄인다"면서 "외식을 하지 않고 집에서 식사하게 되니까 음식점 자영업자들 매출이 감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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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국책연구기관인 산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공기 중 미세먼지 농도가 10㎍/㎥ 늘어날 때마다 대형소매점들의 판매는 2%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환경계획학과 교수는 "최근 미세먼지는 황사와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빈번하게 일어난다"며 "외부에서 하는 레저활동은 타격을 받지만, 실내에서 하는 여가활동은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세먼지가 늘어나면서 때아닌 '호황'을 맞은 곳도 있다.

미세먼지를 빨아들이는 공기청정기 시장이 대표적이다. 공기청정기 시장은 2014년 5천억원 수준에서 지난해 3배 가까이 늘어난 1조4천억원 수준으로 급성장했다.

기능성 마스크 판매량도 크게 늘었다. 편의점 GS25에 따르면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린 지난 13일 기능성 마스크 매출은 전주 일요일과 비교해 8배가량 뛰었다.

◇ "미세먼지 너무 무섭다"

미세먼지 공포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서울 송파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김 모(34) 씨는 "미세먼지가 임산부에게 좋지 않다는 뉴스를 보고 최근 마스크를 대량 구매하고 공기청정기도 안방용으로 하나 더 샀다"며 "미세먼지가 혹여라도 아이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까 봐 걱정되는 게 사실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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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불안감은 설문조사에서도 드러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7년 조사 결과, 우리 국민을 가장 불안하게 하는 위험요소는 미세먼지였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미세먼지 상황은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과는 달리 악화일로다. 지난 25년간 OECD 국가들의 연평균 미세먼지 농도는 15㎛/m³로 낮아졌지만 한국은 29㎛/m³로 증가했다. OECD는 2060년 대기오염으로 인한 한국의 조기 사망률이 OECD 회원국 중 1위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강재헌 인제대 가정의학과 교수는 "미세먼지가 폐 질환을 일으킬 수 있고, 최근에는 폐암, 동맥 경화를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며 "알레르기성 비염을 가진 사람들은 미세먼지가 심한 날 비염이 심해지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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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렇다 보니 성인 10명 중 9명 이상은 미세먼지 때문에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으며 미세먼지에 대한 범국가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최근 성인남녀 731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다.

이필상 교수는 "경제발전을 하면서 우리 스스로 미세먼지를 만들어서 해치는 자해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며 "공해, 미세먼지를 유발하는 산업보다 지속가능한 산업 위주로 육성하는 것이 선순환 구조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세먼지 문제는 중국 등 주변 국가들과도 연계돼 있다"면서 "여러 나라와 협상을 통해 서로 줄여나가는 외교적인 노력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인포그래픽=이한나 인턴기자)

junep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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