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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자수성가 서정진, 소유와 경영 분리에서도 모범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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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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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진 셀트리온 회장(61)은 지난 1월 4일 사업전략 발표 간담회에서 “미련 없이 팔팔할 때 떠나겠다”며 2020년 말 은퇴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여태까지 죽어라고 달려왔던 이유는 여기까지 내가 완성시켜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중요한 것은 나갈 때를 아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 회장이 은퇴 시점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그 전에 몇 차례 전문경영인 체제에 대한 구상을 밝힌 적이 있다. 그는 2011년 언론 인터뷰에서 “올해부터 5년은 제가 실무를 맡지만 5년 후부터는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겠다”고 밝혔다. 실제 서 회장은 2015년 3월 소유와 경영의 분리, 전문경영인에 의한 합의경영과 글로벌 경영체제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이때도 직원들 앞에서 은퇴를 예고했다.

은퇴 선언, 순수성 의심받지 않으려면

전문경영인 체제로의 전환에 대해 셀트리온 측은 “성을 쌓는 시기에서 성을 지키는 시기로 전환하게 되면서 새로운 경영환경에 대응하자는 차원이었다”고 밝혔다. 과감한 결단과 신속한 의사결정이 중요했던 시기를 지나 거대해진 조직에 어울리는 시스템 경영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전문경영인 체제 전환의 첫 단계로 창업멤버였던 기우성·김형기 사장이 공동대표를 맡았다가 지난해부터는 기우성 부회장 단독대표 체제로 바뀌었다. 기 부회장은 창업멤버로 설립 초기부터 생산, 임상과 허가 부문을 담당하고 바이오시밀러 ‘램시마’의 유럽 허가를 진두지휘하면서 경영능력을 인정받았다. 서 회장은 이사회 회장으로 그룹의 미래비전과 중장기 전략을 구상하고, 지난해부터는 네덜란드 주재원도 맡아 해외유통망 구축에 나섰다. 그는 은퇴 전까지 해외 직판체제 구축과 인공지능 기반 원격진료 등 신사업의 기틀을 마련하는 일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지배구조 전문가들은 서 회장의 은퇴 선언을 일단 긍정적으로 보면서도 추가적인 행동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특히 실질적인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이뤄지려면 주식 매각 등 지배구조의 개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셀트리온은 20.04%의 지분을 보유한 셀트리온홀딩스가 최대주주다. 서 회장은 셀트리온홀딩스의 지분 95.51%를 가지고 있다.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는 “셀트리온을 지배하는 셀트리온홀딩스의 지분을 거의 대부분 서 회장이 갖고 있다”며 “그 상태에서는 아무리 전문경영인이 있더라도 서 회장이 뒤에서 ‘섭정’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국내 재벌 총수 중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분명히 말한 경우는 드물다. 지난해 11월 코오롱 이웅열 회장이 은퇴를 선언했지만 자식의 경영승계 가능성은 여전히 열어놨다. 게다가 검찰이 이 회장의 상속세 탈세 혐의를 수사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그 순수성에 대한 의구심은 증폭되고 있다. 서 회장이 은퇴시점을 밝힌 시기도 셀트리온헬스케어의 분식회계 논란이 불거진 즈음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사회적 물의가 있을 때 선제적으로 경영에서 물러나 전문경영인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았는데 셀트리온도 법적 책임 내지 사회적 비판에서 벗어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셀트리온 측은 “이미 우리는 전문경영인 체제로 바뀐 지 꽤 됐고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은퇴시점도 5년 전에 한 약속을 지키는 차원에서 밝힌 것”이라고 말했다.

칼스버그 재단이 대안될까

연강흠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소유와 경영을 분리한다고 하지만 미래에셋 창업자 박현주 회장처럼 등기이사로 등재가 안된 상태에서 이사회 의장이나 대주주로서 경영에 관여해도 이를 막기 어렵다”며 “실질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상인 교수도 실질적인 인사권을 누가 쥐고, 투자나 인수·합병 같은 주요 결정을 누가 하는지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실질 지분을 장악하거나 지분이 약해도 ‘창업자’라는 상징성 때문에 인적 네트워크를 장악해 실질적 지배를 할 수 있다”며 “그 경우 그 사람의 직함이 뭐든 실제 총수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네이버 창업자인 이해진 전 의장이나 카카오의 김범수 의장이 이런 사례에 해당한다.

이런 측면에서 의구심을 벗는 한 방법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주인 빌 게이츠처럼 주식을 매각해 그 돈으로 재단을 만든 후 자선사업을 하거나 페이팔의 창업자 일론 머스크처럼 벤처캐피털 활동을 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북유럽과 같은 재단 소유 기업 모델이다. 재단에 주식을 넘겨 재단이 회사를 지배하도록 하는 구조다. 국내 재벌들처럼 공익재단을 세금을 회피하면서 경영권 유지 수단으로 악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재단에 지분을 넘긴 후에는 총수 일가가 재단 활동에 관여를 못하도록 막고, 전문가나 명망가들로만 이사진을 구성한다.

대표적인 예로 덴마크의 칼스버그 재단을 들 수 있다. 덴마크의 대표 맥주인 칼스버그를 창업한 야콥 크리스찬 야콥센은 아들 칼 야콥센에게 회사를 물려주지 않고 모든 재산을 칼스버그 재단에 넘겼다. 아버지와 대립하며 자신의 맥주회사를 만든 아들도 죽은 뒤 자신의 재단을 아버지 칼스버그 재단과 합치도록 했다. 이 재단은 2011년 현재 칼스버그 주식 30.3%와 의결권의 74.2%를 소유해 회사를 지배하면서 동시에 과학·예술분야를 후원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박 교수는 “이런 덴마크식 재단 소유 모델이 유럽에서 확산되고 있다”면서 “소유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으면 전문경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셀트리온의 경우 2007년부터 셀트리온 복지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이사장은 서 회장의 부인인 박경옥씨다.

박주근 대표는 “최순실 사태는 견제장치가 없는 대통령과 재벌이라는 두 권력이 서로의 이익을 위해 만나 생긴 것”이라며 “중요한 건 견제장치가 있는 지배구조를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소액주주의 사외이사 추천과 소액주주 권리 보호를 위한 집단투표제 등을 담은 상법개정안을 속히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 회장은 지난 4일 간담회에서 “회사 주인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전문경영인이 경영을 하고, 아들은 이사회 멤버로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이상의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김진방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영세습은 누가 봐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아들에게 이사회 의장을 물려주는 것은 대주주로서 ‘경영’이 아닌 ‘규율’을 하는 차원으로 볼 수도 있다”며 “유한양행처럼 지분을 직원들에게 나눠주는 우리사주 방식과 같은 여러 시도들이 나오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셀트리온 관계자는 이런 방안들에 대해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겠다는 것이지 소유를 포기하겠다는 건 아니다”라며 “경영자와 오너가 할 일을 명확히 구분하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전문경영인이 섣불리 하지 못하는 투자에 대한 결단을 내리고, 기업의 미래를 위한 씨앗을 뿌리는 건 오너가 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서 회장은 은퇴 이후 ‘도시어부’로 유유자적하는 삶을 살겠다고 했다. 결국 은퇴 자체보다는 그 다음 행보가 중요하다. 박상인 교수는 “자식들에게 회사를 물려주겠다는 전근대적 욕망과 관행을 끊는 계기가 될지는 향후 진행과정을 봐야 한다”며 “지나치게 나쁘게 볼 필요는 없지만 지나치게 미화할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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