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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재판 청탁’엔 원팀?…서영교 의혹 감싸는 여야 정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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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탁 의혹 서영교에…민주당 “관행”

한국당도 손혜원만 징계 요구

서 의원엔 비판조차 거의 없어

“지난 정권서 여야 불문 청탁 많아”



한겨레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국회의원의 ‘재판 청탁’ 의혹이 검찰 수사로 드러났지만 여야 모두 이번 사태에 대한 ‘온정주의’가 감지되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는 이를 “관행”으로 치부하며 서 의원 징계를 유보해 안일한 대처라는 비판을 사고 있다. 자유한국당도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는 손혜원 민주당 의원에 대한 징계요구서를 국회에 낸 것과 달리 서 의원에 대해선 징계 요구를 하지 않았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상고법원 설치 관철을 위해 의원들의 재판 민원을 수단으로 한 ‘입법 로비’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이뤄진 점이 그 배경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손혜원·서영교 의원에 대한 한국당의 대응에선 온도차가 확연히 느껴진다. 한국당은 지난 17일 국회 윤리위원회에 손 의원에 대한 징계요구서를 제출하며 “의원의 직분과 직무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 재판 청탁 의혹이 제기된 서 의원에 대해선 징계를 요구하지 않았다. ‘손 의원 징계요구서’를 대표로 제출했던 김순례 한국당 의원은 서 의원을 뺀 데 대해 “동료 의원을 보호하려는 것은 아니다”라며 “사법부의 독립적인 판단을 지켜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서 의원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이던 2015년, 강제추행미수죄로 재판받는 지인의 아들이 실형을 면할 수 있게 해달라며 사법부에 영향력을 넣은 혐의를 받고 있다. 그해 5월18일 국회 파견 판사를 의원실로 불러 “서울북부지법에서 재판받는 (지인의 아들) ㄱ씨의 선고가 (3일 뒤인) 5월21일인데 벌금형의 선처를 받게 해달라”고 요청한 혐의다. 이런 내용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을 수사하는 검찰이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을 기소하며 공소장을 통해 드러났다. 청탁을 보고받은 임 전 차장은 법사위에 있던 서 의원이 상고법원 법안에 유보적이란 점을 고려해 서울북부지법원장에게 전화해 ㄱ씨의 선처를 요구한 혐의로 기소됐다.

손 의원의 경우 본인이 의혹을 적극 반박하며 논쟁 중이지만, 서 의원의 재판 거래 의혹과 관련해선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도 “큰 쟁점이 없고 사실관계가 명확하다”고 밝히고 있다. 서 의원도 당에 해명하는 과정에서 행위 자체를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지인의 아들이) 불쌍해서 도와준 것이라고 한다”고 전했다.

이를 두고 ‘의원과 법원의 추악한 거래’라는 비판이 나오지만 한국당은 서 의원에 대한 공격을 자제하고 있다. 한국당은 18일 ‘손혜원 랜드 게이트 진상조사 태스크포스(TF)’까지 출범시키며 대대적 공세를 예고했지만 서 의원에 대한 대응 조처는 없었다. 이날 한국당 원내대책회의는 ‘손혜원 성토대회’를 방불케 했지만 서 의원에 대한 비판은 실종됐다.

서 의원에 대해 칼날이 무딘 것은 한국당도 재판 민원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 때문이다. 판사 출신의 3선 홍일표 한국당 의원도 사법부의 입법 로비에 연루된 정황이 지난해 법원행정처 문건을 통해 드러났다. ‘양승태 행정처’는 상고법원 설치 법안을 대표 발의한 홍 의원을 위해 2014년과 2016년 각각 홍 의원의 민사 사건과 정치자금법 위반 형사 사건의 전략을 검토한 의혹을 받고 있다. 한국당이 서 의원의 징계를 요구하면 같은 당 홍 의원에게도 적용해야 하는 ‘자승자박’의 상황에 놓인 것이다.

이번에 임 전 차장 공소장을 통해 드러난 재판 거래에도 여야 구분이 없었다. 여권에선 서 의원 외에도 전병헌 전 의원이 로비의 대상이 됐으며 한국당 쪽에선 이군현·노철래 전 의원 등이 이름을 올렸다.

정치권 전반의 온정주의는 서 의원에 대해 민주당이 징계하지 않기로 한 결정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은 원내수석부대표였던 서 의원의 당내 보직 사퇴 의사를 수용하면서 당 윤리심판원 회부 등 징계 절차를 밟지 않기로 했다. 2016년 서 의원의 가족 채용 문제가 불거졌을 때 윤리심판원으로 넘긴 전례와도 대조될 뿐만 아니라 사법개혁을 주창하는 여당이 자신의 흠결에 대해선 ‘이중 잣대’를 들이댄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원들 사이에선 여야의 이런 태도가 “예견됐던 것”이라는 반응이 적잖다. 법사위 경험이 있는 한 의원은 “솔직히 지난 정권까지 여야 가릴 것 없이 의원들의 재판 청탁이 엄청나게 많았다”며 “(법조인 출신이 아닌) 서 의원은 법조 인맥이 적어 국회 파견 판사한테 했지만, 법조인 출신들은 법원장이나 고등법원 부장들, 검사장들에게 (바로) 전화하곤 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서 의원은 법사위원으로서 민원을 받아서 관행적으로 좀 문제가 있었던 것”이라며 사안을 가벼이 넘기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전날 민주당은 “서 의원이 언론으로부터 집중 언급되고 있으나 공소장에는 한국당 소속도 적시돼 있으니 균형 있는 보도를 해달라”는 적반하장식 논평까지 냈다.

정치권의 미온적 태도 속에 국회발 사법부 개혁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 판사는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쏘아 올린 양승태 시절 사법농단 연루 법관에 대한 탄핵 논의가 국회로 건너간 뒤 깜깜무소식인데 여당이 미적거린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판사는 “처음에는 야당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여야 막론하고 행정처와의 유착관계 때문에 소극적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민주당에서 법관 탄핵소추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속도를 내지 못하는 배경에 ‘의원과 법원의 거래’가 자리잡고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한 것이다.

국회의 더딘 움직임 탓에 탄핵 대상으로 거론되는 법관들이 ‘혜택’을 입을 전망이다. 재임용에서 탈락하며 다음달 28일로 법관 임기가 끝나는 이규진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사상 첫 법관 탄핵이라는 불명예를 피하는 것은 물론 경제적 손해도 보지 않고 법원을 나가게 될 것으로 보인다. 탄핵당한 법관의 경우 5년 동안 변호사 개업이 금지된다.

송경화 최우리 기자 freehw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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