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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파인텍 노동자 병상 인터뷰 “김용균 어머니가 버텨주셔서 세상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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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 위 최저기온 영하 21도에서 하루 2시간씩 운동하며 버텨

박준호 사무장 72살 홀어머니는 426일 동안 굴뚝 농성 몰라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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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6일이었다.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 75m 굴뚝 위에서 두 해를 넘긴 박준호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사무장의 굴뚝 농성을, 경북 예천에 사는 박 사무장의 72살 홀어머니는 알지 못했다. 굴뚝에서 어머니와 통화할 때, 박 사무장은 능청맞게 “서울에서 지금 바쁘니까 집에 못 내려가. 나 바빠. 사람이 없다 보니까”라고 말했다. 1년 넘게 아들의 얼굴을 보지 못한 어머니는 아쉬운 목소리로 “그 투쟁은 맨날 우예하길래 이래 바쁘노”라고 말했다. 극적으로 교섭이 타결되고 굴뚝에서 내려오던 지난 11일, 마침내 아들의 극한 싸움을 알게 된 어머니는 “엄마는 그것도 오르고 따순 방에서… 그래도 어떻게 건강하게 내려왔다니까 다행”이라고 말했다.

‘하늘감옥’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긴 싸움을 마친 홍기탁 전 지회장과 박 사무장을 16일 서울 중랑구 녹색병원 병상에서 만났다. 이들은 굴뚝 아래서 단식하면서 함께 싸운 차광호 지회장과 함께 나란히 6인실 병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뼈가 드러날 듯 앙상한 몸은 굴뚝에서 내려온 지 닷새 만에 살이 조금 붙긴 했지만, 여전히 메말라 보였다. 하지만 표정에서는 온기가 느껴졌다.

표정에 온기를 되찾기까지, 이들은 오랫동안 외롭게 싸웠다. 최저 온도 영하 21도까지 내려간 굴뚝 위 폭 80㎝ 좁은 공간에서 두 사람은 매일 아침과 오후에 2번, 1시간 정도씩 스트레칭과 제자리 뛰기, 스쿼트와 팔굽혀펴기 등을 하면서 몸을 건사했다. “아프지 말아야 하니까, 그러지 않으면 못 버티니까” 운동을 해야 했다. 추위를 견디기 위해서는 하루 두 번 올라오는 식사도 거르지 않아야 했다. 몸에서 추위를 가장 극심하게 느끼는 곳을 두 사람은 입을 모아 “손끝과 발끝”이라고 했다. 단열재로 쓰인 비닐 사이에 뽁뽁이를 넣어 보온하고, 비가 새면 방수 작업도 했다.

겨울에는 씻는다는 건 생각하지도 못했다. “2ℓ 생수가 올라오는데요. 겨울에는 물도 다 얼어버려서 양치도 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 되죠. 여름에는 그 생수로 땀만 닦아낼 정도로 씻고, (비누칠 해서) 머리를 감고 헹구죠.” 박 사무장의 말이다.

하지만 그들의 이런 생활은 그야말로 ‘하늘감옥’ 위에서 벌어진 남의 일일 뿐이었다. 최소한 ‘세계 최장기 굴뚝 농성’이라는 기록이 거론되기 전까지, 75m 굴뚝 위를 쳐다본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사람들이 고공 농성을 하는 건 진짜 절실해서, 마지막 단계에서 하는 거죠. 사실 하루나 이틀 있더라도 뭐 때문에 싸우는지 (세상이) 알아야 하는데, 400일 됐다, 500일 됐다, 이런 날짜만 얘기하지 그 전에 과정이 없는 거예요. 왜 절실히 싸우는지. 그러다 사람이 죽어야 뒷북을 치는 거죠. 우리는 날짜 싸움을 하려고 올라간 것이 아니었어요. 노사 합의를 이행하라고 올라간 거지.” 홍 전 지회장의 말이다.

파인텍 사쪽에서 기자회견을 자처해 “노조가 들어오면 회사가 망한다”고 발언한 것도 이들을 힘들게 했다. “어느 자본가도 그렇게 기자회견 안 합니다. 예를 들어, ‘공장 돌렸는데 도저히 적자 나서 못 돌렸다. 빨리 내려왔으면 좋겠다’ 이런 말은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노동조합 때문에 공장 망한다는 건 노조를 전면 부정하는 겁니다.” (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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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좁은 창으로 마주한 세상에 좌절하던 그들에게 희망을 준 사람은 또 다른 어머니였다. “우리 싸움의 돌파구는 김용균 동지가 그렇게 되고 나서 어머니가 완강하게 버텨주셔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열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어머니가 ‘어떻게 돈이 우선이냐, 사람 목숨이 우선인 거 아니냐. 문재인 대통령 당신은 뭐했냐’ 이렇게 말씀하셨고, 이게 사람들의 공감을 형성한 거죠. 노동자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관심이 많아졌어요. 그게 없었으면 쉽지 않았을 겁니다. 어머니가 오셔서 얘기 나누면서 ‘진짜 고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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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들에게 중요한 건 일상을 살아가는 일이다. 홍 전 지회장은 아직 얼굴조차 보지 못한 고등학교 2학년이 될 첫째 딸에게 “오리털 파카를 사주고 싶다”고 했다. 딸이 최근 엄마에게 “친구들이 겨울에 파카를 입고 다닌다”는 말을, 에둘러서 했기 때문이다. 아빠가 사준 8만원짜리 축구화가 아까워 제대로 신지도 못하는 둘째 아들과도 페널티킥 내기 축구를 하고, 곧 중학교에 입학하는 막내딸의 얼굴도 빨리 보고 싶다. “장모님이 끓여준 된장국이 먹고 싶다”고도 했다. 박 사무장은 설 명절에 어머니를 뵈러 가려고 한다. 그는 굴뚝 위에서 평소엔 잘 먹지도 않던 떡볶이와 피자, 햄버거가 유독 먹고 싶었다고 했다. 그렇게 일상에 적응하면, 다음달 중순께 업무방해 혐의에 대한 조사를 받기 위해 경찰에 자진 출석하고, 회사와 합의한 대로 오는 7월1일부터 파인텍 공장으로 돌아간다.

두 사람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파인텍의 모습은 무엇일까.

“500명이 일하든 5명이 일하든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노동조합이 확실히 지켜지고,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거 지키면서 일하기 정말 좋은 노동자의 회사가 아닐까요. 노동조합에서 노동자의 인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조건이 되는 회사와 아닌 곳은 천지 차이죠.”

이정규 기자 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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