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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후암동의 오래된 집 역사 기록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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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후암가록’의 이준형 도시공감협동조합 건축사사무소 실장

50·100년 된 집의 주인 신청을 받아

현장 방문해 인터뷰하고 집 치수 재

디지털 도면 작업 뒤 명패 만들어 전달

3년간 13곳 기록…30~40대가 많아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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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서남쪽 아래 첫 동네, 후암동 꼭대기에는 동네를 지나가다가 누구나 한번쯤 눈길을 줄 법한 집이 있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아담한 초록색 지붕의 2층 목조주택이다. 대문에 붙은 가로세로 30㎝ 금속 명패도 눈길을 끈다. ‘후암가록(家錄) 녹옥루’란 이름과 함께, 집 그림(평면도와 입면도)도 있고, 이야기(구조, 규모, 면적, 연도, 기록에 나선 이유 등)도 네댓 줄 담겨 있다. 끝줄에는 ‘도시공감협동조합 건축사사무소가 주민들의 신청을 받아 기록하고 마을과 공유하기 위한 명패’라고 쓰여 있다.

‘후암가록’은 동네의 오래된 집과 사람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프로젝트다. 도시공감협동조합은 이 프로젝트를 3년째 이어왔다. 이준형(34) 실장을 비롯한 청년 5명은 지역재생, 마을 만들기 등을 배우고 연구하며 실행해보고 싶었다. 대학원 선후배들인 이들은 2014년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이 실장은 건축을 기반으로 지역재생을 하는 회사의 취지에 맞는 동네를 찾으려 2016년 봄, 답사에 나섰다. 팀원들과 함께 종로구 충신동, 성북구 삼선동 등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우연히 후암동을 만났고 바로 마음을 정했다. “동네 어디서든 남산이 보이고, 여기저기 기록하고 싶은 오래된 주택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팀원 모두 매력을 느꼈어요.”

후암동에 터를 정하며 이 실장은 두 가지를 꿈꿨다. 하나는 사무실을 1층의 단독주택에 마련하는 것이었다. 운 좋게 오토바이 보관소로 쓰던 집을 싸게 빌릴 수 있었다. 또 하나는 동네의 오래된 집과 사람들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었다. 집은 자의든 타의든 언젠가는 사라지고 변한다. 누군가가 기록하고 쌓아가면 마을의 이야기이자 역사가 될 수 있다.

마침 서울시협동조합지원센터의 공모 사업이 그해 여름에 시작됐다. 머리에만 담고 있던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계기가 되었다. 공모 사업에 뽑혀 220만원의 지원금을 받았다. 동네 구석구석을 누볐다. ‘당신의 후암동 이야기를 들려주세요’라는 포스터를 만들어 주민들이 자주 지나가는 곳에 붙였다. 마음이 가는 집에는 찾아가 설명도 했다.

처음 신청한 집은 50년쯤 된 2층 목조주택이었다. 상가주택 신축 공사를 앞둔 빈집이었다. 지은 지 100년 가까이 되는 다른 목조주택의 집주인도 기록을 원했다. 신청이 들어오면 3명이 한 팀이 되어 집을 방문한다. 한 명은 인터뷰하고, 두 명은 집 안팎의 치수를 잰다. 사무실에 들어와서 컴퓨터로 디지털 도면 작업을 반나절가량 한다. 결과물로 집의 외양을 담은 액자와 집 평면도와 입면도를 넣은 명패를 만들어 열흘 뒤 재방문해 전한다.

신청자 가운데는 30~40대가 많다. 세입자가 신청하는 경우도 반 정도 된다. “기록의 과정과 의미를 아는 젊은 층이 쉽게 다가서는 것 같아요. 어르신들은 용어부터 어려워하고 낯선 사람들이 집을 찾아와 실측하고 기록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해요.”

이 실장과 팀원들은 3년 동안 13곳의 가록을 만들었다. 지난 2년간은 지원 없이 자체 비용으로 해왔다. “본업을 하면서 시간을 쪼개 해야 하는 게 어려운 점”이라 하면서도 그는 후암가록 작업에 더 많은 시간을 쏟지 못해 아쉬워한다. “건축사, 주거사 등 학문적으로 깊이 연구하면 더 좋은 자료가 될 수 있을 텐데….” 올해부터는 좀더 체계를 잡아 기록해보려 한단다.

봄이 오면 후암가록 전시 공간이 동네에 문을 연다. 도시공감협동조합은 공간을 이미 빌려놓고 리모델링 계획을 세워 공사를 앞두고 있다. 이미 동네에 2개의 공유 공간(후암서재와 후암주방)을 열어 실비를 받고 빌려준다. 가록 전시 공간은 세 번째 공유 공간이다. 지역 예술가들, 주민들이 전시할 수 있게 대관도 할 계획이다. “동네에서 공유 공간을 더 늘려가고 싶어요. 임대해 운영하는 것 외에 주민들과 함께 투자해 사는 방식 등도 고민하고 있어요.”

이 실장과 팀원들은 가록에 참여하고 공유 공간을 이용하는 주민들에게서 참 좋다는 얘기를 들을 때 최고의 보람을 느낀다. ‘짓고 나면 그만’의 건축이 아닌 보통 사람들이 오래오래 함께 누리는 건축을 하며 마을 활동을 이어가려 한다. “동네에 선한 영향력을 주는 청년 건축가들이라는 평판을 듣고 싶어요.”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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