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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15년째 의식 못 찾은 경찰관 ‘아빠’ 대신 막내 딸 졸업식 찾은 동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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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지난 11일 경기도 수원 동성중학교를 졸업한 장용석 전 경장의 막내딸 혜리(가운데)양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수원중부경찰서 남동학 여청계장, 김준배 경위, 혜리양, 동성중 김민지 담임교사, 장 전 경장 부인 황춘금씨. [사진 황춘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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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석(49) 전 수원 중부경찰서 경장은 지난 11일에도 의식을 찾지 못했다. 이날은 막내딸 혜리(16)양의 수원 동성중학교 졸업식 날이다. 그는 2004년 6월 경기도 수원의 한 식당 앞에서 난동을 부리던 취객에게 변호사 선임권리 등을 담은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던 중 갑작스러운 피습을 당했었다. 넘어지면서 인도 끝 경계석에 머리를 크게 부딪쳤고, 외상성 뇌출혈 진단을 받았다. 의식을 잃은 지 햇수로 15년째다.

딸 졸업식 앞두고 보인 고열 증상
근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번쩍 안으면 ‘까르르’ 웃던 마지막 기억 속 어린 막내딸의 졸업이다. 장 전 경장이 서울 중앙보훈병원의 장기요양 환자가 된 사이 어느새 이렇게 성장했다. 장 전 경장은 혜리양 졸업식 전에 고열 증상을 보였다. 체온이 39도를 오르락내리락했다. 항생제가 처방됐다.

장 전 경장의 부인 황춘금(45)씨는 “면역력이 크게 떨어진 상태라 고열이 나면 굉장히 위험하다”며 “다행히 지금은 (열이) 정상 체온을 유지 중이다. 아마 졸업식에 가지 못한 자신에게 화가 나 그랬는지 않았나 싶다”고 나지막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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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6월 취객검거 과정서 불의의 사고로 쓰러진 장용석(49) 전 수원중부경찰서 경장의 손을 부인 황춘금(45)씨가 잡고 있다. 김민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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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찍을게요. 하나둘 셋!”
혜리양은 아빠 동료들이 자신의 졸업식에 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에는 그리 반가워하지 않은 기색이었다고 한다. 3년 전 초등학교 졸업식 때도 함께 했지만 말이다. 혜리양은 엄마인 황씨에게 “그냥 평범하고 조용하게…친구들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하지만 황씨는 “아빠 덕분에 맺은 인연인데, 이를 이어가야 아빠도 안심하지 않겠니”라고 설득했다. 혜리양은 고개를 끄덕였다.

수원중부경찰서 남동학 여성청소년계장(경감), 김준배 경위, 박설현 경장이 졸업식이 열리는 동성중 교정을 찾았다. 요양 중인 장 전 경장을 대신해 혜리양을 축하해주기 위해 한걸음에 달려온 동료들이다. 남 계장은 번듯한 경찰 제복까지 갖춰 입었다. 이중 특히 김 경위는 과거 젊은 시절 함께 근무했다.

새초롬하던 혜리양의 얼굴에도 어느새 엷은 미소가 앉았다. “자, 찍을게요. 하나둘 셋!” 혜리양은 손가락으로 브이(V)를 그리며 포즈를 취했다. 한 손에는 화사한 분홍 꽃다발과 졸업장이 들렸다. 황씨는 “벌써 남편이 쓰러진 지 15년이나 됐는데, 잊지 않고 함께 해줘 감사드린다”고 거듭 마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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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의 사고 당시 어렸던 자녀들은 현재 청소년으로 무럭무럭 성장했다. [사진 황춘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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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만치 않은 현실 손잡아준 인연
황씨는 2017년 말 수원 권선동 동산아파트 인근에 작은 베트남 쌀국수 가게를 냈다. 그 전까지는 생계와 병간호, 양육을 병행하려 보험설계사로 일했었다. 무턱대고 도전한 자영업의 교훈은 잔인했다. 소규모 프랜차이즈 본사 측의 횡포에 경기까지 얼어붙으면서 최악이다. 황씨는 보험설계사로의 투잡을 준비하고 있다. 요양 중인 장 전 경장이 자신의 삶을 ‘연명’으로 느끼지 않도록 이를 악물었다. 동료들에게 더욱 고마움을 느끼는 요즘이다.

장 전 경장은 의식이 없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황씨 앞에서는 ‘반응’을 보인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았던 신혼 시절 김치볶음밥을 안주 삼아 반주를 곁들이던 두 부부만의 추억을 이야기할 때면 활짝 웃는 표정을 짓는다. 또 새로 부임하는 경기남부지방경찰청장이나 수원중부경찰서장 등 높은 상관이 병문안을 올 때면 다소 긴장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사고 후부터 지금까지 장 전 경장을 곁에서 돌본 윤성남(63) 간병인도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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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생활 전 건강한 모습의 장용석 전 경장. 순경 임용 후 촬영한 사진이다. [사진 황춘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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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씨는 올해 봄을 기다린다. 장 전 경장을 휠체어에 태워 근무했던 수원중부경찰서를 찾을 계획이다. 장 전 경장은 경찰의 날을 자신의 생일보다 더 챙겼던 열혈 경찰관이었다. 수원중부경찰서에는 현재 장 전 경장의 이름을 딴 구내 카페도 운영되고 있다. 황씨는 경찰서 방문을 통해 장 전 경장의 상태가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바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 장 전 경장은 공무수행 중 부상을 입었지만 업무에 복귀하지 못해 2006년 3월 병상서 면직처리됐다. 10년 넘은 ‘친정 나들이’다.

황씨는 “근무 중 불의의 사고를 당한 순직 또는 공상자 가족들은 힘겨운 고통을 감내하며 살고 있다”며 “시민들의 관심과 위로가 이들 가족에게 큰 힘이 된다. 지금까지 경찰가족이라는 사실을 잊고 산 적이 없다. 희망을 잃지 않도록 응원해달라”고 말했다.

수원=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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