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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의원님 유튜브 좀 하지 마세요" 한 국회보좌관의 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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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인싸]
‘여의도 인싸’는 국회 안(inside)에서 발생한 각종 이슈와 쏟아지는 법안들을 중앙일보 정치팀 2030 기자들의 시각으로 정리합니다. ‘여의도 인싸’와 함께 ‘정치 아싸’에서 탈출하세요.



“인지도 없는 국회의원은 유튜브 한다고 인력ㆍ세금 낭비하지 맙시다. 8ㆍ9급 인턴비서들 유튜버 지망생 되려고 국회 들어온 건 아닙니다.”

지난 14일 페이스북 페이지 ‘여의도 옆 대나무숲’에 올라온 익명 게시글의 일부입니다. 어느 당, 어느 의원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국회직원 인증 절차를 거쳤고, 이틀만에 ‘좋아요’ 300여 개를 받는 등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이준석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은 여기에 “우리 당에서 유튜브 하고 싶다고 몸 달아오르시던 의원 몇 분 뜯어말린 내가 여러 방(의원실) 살린 거였군”이라는 댓글을 달아 호응을 얻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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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 알릴레오, TV 홍카콜라 배너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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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글쓴이는 “유튜브 제작 때문에 야근에 주말근무에 혹사를 당하는 직원들이 많다”고 폭로했습니다. “유튜브 영상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갈까요? 일단 기획서 만들어야 하죠. 의원님이 카메라 앞에서 그냥 말하십니까? 대본 만들어야죠. 찍고 자막 만들고 편집해야죠. 썸네일(대표적 이미지 파일) 만들어야죠. 뿌려야죠. 정말 할 게 많답니다”라면서요.

고참 보좌관들에게도 한마디 덧붙였습니다. “‘허허 우리 의원실도 유튜브 한번 해볼까’ 이런 생각이 든다면 유튜브의 ‘유’자 먼저 꺼내기 전에 다만 몇 시간이라도 영상 편집 과외 회당 5~10만원 하는거 한 번만 들어보세요. 부풀려진 ‘유튜브 드림’ 믿지 마시고 기초 지식이라도 좀 알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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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페이스북페이지 '여의도 옆 대나무숲'에 올라온 국회 보좌진의 익명글. 일부 의원들의 '유튜브 드림' 때문에 직원들이 혹사 당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사진 페이스북 캡쳐]




민주당은 2020년 총선 공천심사에 '유튜브 성적' 반영…과열 경쟁 양상


대다수 국회 관계자들은 비록 거칠게 쓴 글이지만 핵심을 콕콕 짚었다고 입을 모읍니다. 한 박자 늦게 여의도 정가를 뒤덮은 ‘유튜브 열풍’이 빚어낸 ‘웃픈(웃기고 슬픈)’ 풍경입니다.

특히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2020년 총선 공천심사 때 유튜브 실적을 반영한다고 나섰고, 다른 정당들도 모방할 조짐을 보이면서 더더욱 과열되는 분위기인데요. 문제는 국회의원 300명 모두가 유튜브 스타가 될 수는 없다는 데 있습니다.

인기 있고 인지도가 높은 의원실은 상대적으로 투자 대비 효과가 크지만, 그렇지 않은 의원실 직원들은 화제가 될만한 영상을 만들어내느라 그야말로 맷돌처럼 갈리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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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후 4시 기준 20대 국회의원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 TOP10. 중앙일보 자체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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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후 4시 기준 20대 국회의원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 TOP10. 중앙일보 자체 조사




민주당 보좌진이라고만 밝혀달라고 요구한 A씨는 16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하소연했습니다. “유튜브에 얼마나 품이 많이 들어가고 힘든 건지 하나도 모르면서 성과를 뽑아내라니 답답하죠. 추가로 전문인력을 고용하지는 않으려고 하면서 보통 8급ㆍ9급 인턴이 막내라인인데 여기다 무조건 시키는 거예요. 조회수 안나오면 혼나니까 보좌진들이 다 동원되서 클릭수 올리고 이게 대체 뭐하는 건지…”

국회 홈페이지에 올라온 의원실 채용공고 현황을 살펴보면 최근들어 부쩍 “동영상 및 PPT 활용 능력, 페이스북ㆍ유튜브ㆍ블로그ㆍ카카오톡 등 SNS 활용 능력 우대”라는 문구가 자주 보입니다. 유튜브 관리를 전담할 8ㆍ9급 인턴비서를 찾는 경우도 있지만 몇개월짜리 단기 계약직 인턴을 뽑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한 20대 인턴비서 B씨의 말입니다. “보좌관, 비서관님들은 젊은 20대면 당연히 유튜브 홍보 잘해야 하는 줄 알아요. 그런거 잘 하는 애들 많다는 식으로 말하니까 내 자리 없어질까봐 불안해서 꾹 참고 시키는대로 하는거죠. 당에서 유튜브 전용 스튜디오 만든다고 쏟아붓는 돈 저 주시면 배워서라도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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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해 11월 11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유튜브(씀) 스튜디오 오픈식에서 케이크 촛불을 끄고 있다. 이날 이해찬 대표는 오픈 행사의 미니콘서트에서 "우리 유튜브는 진짜"라며, "진짜만 다루고 진정성 있는 내용만 다루겠다"고 말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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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홍준표 유튜브 흥행 요인 "개인기가 8할 이상"


물론 모든 의원실이 이런 건 아닙니다. ‘부익부’에 해당하는 의원실은 크게 어려움이 없다고 합니다. 의원의 인기나 인지도에 힘입어 평소 의정활동을 중심으로 간단히 제작한 영상만 올려도 쉽게 화제가 되기 때문이죠. 현역은 아니지만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의 ‘TV홍카콜라‘나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알릴레오’ 같은 유튜브 채널이 인기를 끄는 것만 보더라도 메신저의 역량과 개인기가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유튜브는 사실상 개인기가 8할 이상 차지한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여의도 정가에서 유튜브 활용의 모범 케이스로 평가받는 한 의원실 보좌진 C씨에 따르면 2분짜리 유튜브 영상을 제작하는데 평균 7시간 정도가 소요된다고 합니다. 전문가라면 2~3시간이면 만들 수도 있지만, 여러가지 정무적 판단도 해야되기 때문에 품이 더 든다는 거죠. 무엇보다 이런 영상은 ‘타이밍’이 중요하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야근을 불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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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해 10월 11일 오전 서울 영등포 중앙당사에서 열린 ‘영등포 프리덤’ 오픈 스튜디오 오프닝에 참석해 있다. 자유한국당은 ‘오른 소리’라는 자체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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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총선을 거치면서 수년간 노하우를 쌓아온 C씨는 이렇게 제안합니다. “정치인이 유튜브를 시작했다고 말하려면 최소한 일주일에 하나 정도는 업로드해야 의미가 있을텐데, 그 정도 주기를 맞추려면 몇명의 팀원으로 ‘피똥’ 쌀만큼 노력해도 조회수 10이 채 안나오는 ‘좀비 영상’들이 속출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걸 다 전문 업체에 맡긴다면 적게 잡아도 월 수백만원이 들겁니다. 영상 전문가가 아닌 국회 보좌진들이 똑같은 퀄리티를 내기는 어렵기 때문에 적정선을 찾는게 중요할 것 같아요.”

물론 ‘화제성’을 지향점으로 삼지 않는다면 또 얘기가 달라집니다. 민주당의 한 의원실은 의정보고서 제작 비용을 유튜브 제작에 투입해서 외주업체에 맡기고 있다고 합니다. 해당 의원실 관계자 D씨는 “사실 유튜브가 이렇게 중요해지기 전부터 의정활동 기록용으로 영상제작의 필요성을 느껴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일찍이 유튜브에 방점을 찍고 거기에 맞게 예산을 운용해온 거죠.

이런 저간의 사정과 내막을 다 무시하고 “왜 우리 의원실에서는 이런 퀄리티가 안 나오는 거냐”며 보좌진만 닦달하는 의원이 있다면 애꿎은 보좌진을 대신해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의원님, 유튜브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닙니다.”

김경희ㆍ이우림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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