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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돈을 댄 사람 먼저' 한국영화 크레디트 관행 바뀔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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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위 보고서, '창작자 중심' 크레디트 표기 가이드 제시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영화가 시작되기 전과 후에는 영화 창작에 참여한 사람과 단체 이름이 크레디트에 올라온다.

크레디트에 이름 한줄 올리는 것은 그들의 경력이 되고, 장래의 일·수입과도 직결된다. 또 작품 내 위상을 드러낸다. 멀티 캐스팅된 주연급 배우들이 서로 자기 이름을 맨 앞줄에 올리려 신경전을 벌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영화 오프닝 크레디트에는 독특한 '서열'이 있다. 투자배급사 대표와 투자자 이름이 프로듀서 앞에 나온다. 창작자가 아니라 '돈을 댄 사람' 이름이 먼저 나오는 것은 한국영화가 유일하다.

2000년대 초 충무로에 대기업 자본이 본격적으로 들어오면서 투자배급사 중심으로 영화계 구조가 바뀌었고, 이런 관행도 시작됐다는 게 정설이다.

최근 영화계에선 오랫동안 굳어진 크레디트 표기 관행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류승완 감독은 2년 전 '군함도' 개봉 때 '창작자보다 투자자를 더 중시하는 관행을 고쳐보겠다'며 공동 투자사들을 오프닝 크레디트에 넣지 않고 엔딩 크레디트로 돌리기도 했다.

연합뉴스

'군함도'
[CJ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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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 오프닝 크레디트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진흥위원회도 얼마 전 한국영화 크레디트에 대한 전수 조사를 한 뒤 '한국영화 크레디트 개선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내놨다.

이에 따르면 최근 3년간 한국영화 개봉작(22편)과 미국(22편), 멕시코(5편), 프랑스(5편), 일본영화(5편) 개봉작의 크레디트를 분석한 결과, 투자배급사 대표와 직원 이름이 프로듀서 보다 먼저 나오는 국가는 한국밖에 없었다.

메이저 투자배급사가 투자·배급한 한국영화 크레디트의 경우 투자배급사 직원이 많게는 100여명, 적어도 40여명이 등재됐다.

보고서는 "투자배급사의 대다수 직원이 등장하는 크레디트는 한국밖에 없다"며 "외국 영화에는 투자배급사 관계자가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아울러 "투자배급사 직원들의 크레디트 남용은 자본이 창작에 대해 힘의 우위를 점한 한국영화산업이 만들어낸 잘못된 관행의 결과물"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영화는 철저히 창작자 중심으로 등재됐다. 작품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배우, 캐스팅 감독, 음악 감독, 의상 디자이너, 협력 프로듀서, 촬영 감독, 작가, 감독 등 순이다.

보고서는 또 2001∼2017년 개봉한 한국영화 2천543편의 크레디트를 전수 조사한 결과, 영화인 이외 다른 분야 전문가와 투자배급사 직원, 배우 관계자의 등재가 해가 갈수록 는다고 밝혔다.

이 중 투자배급사와 배우 관계자의 합은 '전문가 직군'의 73%에 달했다. 배우 관계자는 매니지먼트 관련자 및 배우 개인 스타일리스트, 코디네이터 등을 말한다.

두 분야 등재가 느는 현상은 영화산업 내 힘의 균형 부재, 제작사·창작군의 권한 축소와 제작기반 약화를 의미한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직무 표기도 혼재돼 있었다. 프로듀서·제작·기획, 미술감독·아트디렉터 등 비슷한 역할인데도 표기는 달랐다.

보고서는 이에 따라 영화 제작에 참여한 이들의 전문적인 업무가 잘 표현될 수 있고 직무와 직군을 정확히 분류하는 한편, 오프닝 크레디트에 감독과 프로듀서, 각본을 우선 배치하도록 하는 등 구체적인 표기 가이드를 제시했다.

fusion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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