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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대한항공·한진칼 첫 타깃…국민연금 '주주권' 파장은 [뉴스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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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경영 감시 역할이냐 경영 간섭이냐… ‘양날의 칼’ 논란 / 국민연금 ‘스튜어드십코드’ 적용 / 조양호 일가 잇단 일탈 행위에 ‘명분’ / 실질적 경영 참여 나서기에는 한계 / 기존 이사진 연임 반대 의결 등 가능 / 대기업 경영 행태에도 큰 변화 예고 / “주주 목소리 반영… 기업 가치 개선”

세계일보

국민연금은 ‘자본시장의 큰손’이지만 그동안 ‘주총 거수기’나 ‘종이호랑이’ 등으로 불리며 존재감이 없었다. 민감한 사안에 기권하거나 중립 의사를 밝히며 몸을 사렸다. 국민연금이 이번 주주권(스튜어드십코드)을 행사하기로 하면서 기업들의 경영행태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1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국민연금은 달라진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해 7월 찬반 논란에도 결국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했다. 이보다 앞서 지난해 상반기 주주총회 시즌에는 총 2561개 안건 중 524건에 대해 반대표를 던졌다. 반대의결권 비율이 20.5%다. 매년 10% 안팎에 머물렀던 것과 비교해 크게 높아진 수치다.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코드 첫 타깃을 대한항공과 한진칼로 정한 것도 이 같은 행보와 무관치 않다. 대한항공과 한진칼은 지난해 검찰 수사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던 기업이다.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갑질’과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의 ‘폭력 영상’이 드러났고, 검찰은 조양호 회장에 대해선 배임·사기·횡령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오너일가의 불미스러운 일로 대한항공 주가는 지난해 초 최고 3만9000원에서 10월 2만5050원까지 추락했다. 대한항공 지분을 가지고 있는 국민연금도 손실이 불가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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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은 지난해 대한항공에 경영진 일가의 일탈 행위와 해결 방안을 밝혀달라는 공개서한을 발송하고, 경영진 및 사외이사와의 비공개 면담을 진행했다. 그러나 대한항공 측은 “경영정상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만 답변했다. 대한항공 측이 그동안 소극적이었던 국민연금으로 하여금 적극적 행보로 돌아설 명분을 제공했다는 분석이다.

그렇다고 당장 국민연금이 3월 대한항공과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임원 선임·해임 또는 직무정지, 정관 변경 등 실질적 경영 참여에 해당하는 주주권 행사에 나서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렇게 하려면 지분이 1%포인트 이상 변동될 경우 5일 이내 신고해야 하고, 지분이 10%가 넘으면 6개월 내 발생한 수익을 반환해야 하는 규정을 적용받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행사하는 방안으로 기존 이사진 연임 반대나 사외이사 선임 등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관계자는 “조 회장 일가가 여러 가지 사건들로 인해 이사로서 역할을 상실한 상황에서 조 회장의 임기가 3월 끝이 난다”며 “스튜어드십코드가 도입된 만큼 국민연금은 조 회장의 연임 반대의결권 행사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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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적으로 기업가치 개선에 도움이 되고, 국민 노후자금 보장을 위해 필요한 조치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주주 목소리가 경영진에 반영되면 기업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라며 “기관투자자를 포함한 투자자의 주주권 행사는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려하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당장 시장과 경영계는 국민연금이 대기업에 대해 구체적인 행동에 나선 것에 따른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대한항공·한진칼을 넘어서 더 많은 기업을 향해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신호탄이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가 필요할 때마다 막대한 돈을 운용하는 국민연금을 활용해 합법적으로 기업 경영에 간섭할 경우 자칫 ‘연금사회주의’라는 논란까지 불러올 수 있다.

이진경 기자 l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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