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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행의 소비자시대] 잠자는 '금융소비자보호법', 국회 통과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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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소비자보호법이 문재인 정부의 주요 정책과제로 선정됐지만 20대 국회에서도 계류 중이다. /더팩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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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회사 '소비자보호' 자발적 이행 어려워…소비자 권익 법적 보호 필요

[더팩트ㅣ조연행 칼럼니스트] 자동차 운전자는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의 적절한 조작으로 운행을 한다. 브레이크가 없는 차량은 생각할 수 없다. 또한, 보행자와 운전자를 위한 촘촘한 교통법규는 안전운전을 유도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금융시장은 액셀(영업행위)만 있지, 안전을 위한 법규(금융소비자보호법)도 브레이크(소비자보호)도 없다. 이것이 없으면 소비자권익증진은 말뿐인 '공염불'에 불과하다.

금융회사의 경영자는 이익목표나 성과달성을 위해 인사· 인센티브·성과보수·KPI 관리·시책 등 가용한 모든 자원과 수단을 활용해 필사의 노력을 한다. 하지만 여기에 '소비자보호' 의무는 보이지 않는다. 목표를 달성해야만 하는 금융회사는 과장광고나 불완전판매도 불사한다. 강력히 액셀을 밟아 돌진해 나가는 CEO에게는 소비자보호를 위한 미약한 사전규제와 솜방망이 사후제재라는 브레이크 장치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비용과 시간만 낭비하는 '소비자보호'는 거추장스러운 짐일 뿐이다. 스스로 소비자보호의 브레이크를 밟을 이유가 없다.

금융감독원도 영업행위감독과 소비자보호 두 가지 업무를 동시에 수행하지만 소비자보호 업무는 2선에 불과하다. 금융소비자보호를 위한 촘촘한 법도 없고, 산업육성을 위해 사전규제와 사후제재도 느슨하게 만든 상황에서 자발적으로 '소비자보호'를 외치는 행동은 금융사에게 '헛구호'이거나 '미친 짓' 둘 중에 하나 일 것이다. 과장광고나 불완전판매 행위로 얻는 이득이 엄청난데 이것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이것이 소비자피해로 문제가 된다 해도 그때 가서 적은 '코스트'로 해결하면 그뿐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키코(KIKO) 상품·재해사망특약·즉시연금이 그렇다.

키코는 환율이 상한선(Knock-In)과 하한선(Knock-Out)내에서 변동할 경우 미리 정한 환율에 외화를 팔 수 있는 파생금융상품이다. 중소 수출기업이은 2008년 금융위기당시 해당 상품에 가입했다 환율이 폭등해 상한선을 벗어나며 큰 피해를 입었다. 기업들은 은행들이 제한된 기대이익을 대가로 무제한의 위험에 처하게 하는 사기 상품을 판매했다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2013년 대법원은 은행측의 손을 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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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사들이 소비자보호에 소극적인만큼 법적으로 규제해야 소비자 권익 보호가 시현될 수 있다. /더팩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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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억500만 건의 카드사 정보유출 사건이 터졌다. 피해소비자들이 모여 공동으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해 5년여의 지리한 소송 끝에 지난 연말 대법원에서 10만 원의 배상판결을 받아냈다. 하지만 공동소송에 참여한 소비자들은 1~2만 명에 불과하다. 최대 2만 명이라고 해도 0.019%에 불과하고, 20억 원이면 보상이 끝난다. 만일 피해소비자 1억 명 전부에게 10만 원씩 일괄 보상한다면 10조 원이 필요하다. NH농협, 롯데, KB국민카드와 KCB는 '파산선고'를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 '정보유출사고'가 있었냐는 듯 카드사들은 소멸시효가 지나 손해배상의 의무에서 해방됐고, 여전히 영업활동 중이다. 소비자피해는 10조 원가량인데 20억 원의 미미한 금액으로 해결한 것이다.

삼성생명 등 생명보험사들이 즉시연금 약관에 만기보험금 지급재원을 공제한다는 명시·설명 없이, 연금액에서 소비자 몰래 이를 공제하여 축소 지급했다. 금융감독원에서 축소지급한 16만 명에게 최대 1조 원을 일괄 지급을 지시했으나, 보험사들은 법적 판단을 받아보겠다며 거부했다. 16만 명의 피해소비자 중 겨우 0.125%, 달랑 200여 명 만이 공동소송에 참여했다. 피해소비자들이 전부 승소한다고 해도 12억5000만 원이면 보상이 끝난다. 금감원 지시에 따라 가입자 전체를 일괄구제할 경우 1조 원이 소요되지만, 소송으로 끌고 갈 경우 12억 원이면 사태를 싸게 마무리 할 수 있기 때문에 생보사 입장에서는 욕을 먹더라도 '소송'을 피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공동소송이 끝날 때 쯤이면 소멸시효가 전부 완성돼 소송미참여자의 청구권리는 법적으로 자연히 사라져 버린다.

공동소송은 공급자가 법적으로 패한다 해도, 승자는 공급자다. 피해소비자 중 공동소송 참여자는 극히 미미할 뿐이고, 패소하더라도 얼마 안 되는 실제손해액만 보상하면 된다. 소송 미참여자들은 소멸시효 완성으로 청구권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공급자들은 소비자에게 피해를 입혀도, 소송을 당해도 두려워할 리가 없다. 그러기에 상품을 만들 때 소비자피해는 고려대상이 아니다. 오직 소비자의 관심을 끌 상품만 만들면 된다. 더구나 손해를 입힌 상품의 세세한 구성정보나 사업방법서등은 공급자만이 갖고 있어 입증책임을 가진 소비자들은 알 수가 없고, 피해증거로 법원에 제출할 수 없다. 그래서 대부분이 공동소송에서도 패하기 십상이다. BMW의 잘못된 엔진 설계도를 소비자가 입증해야만 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그래서 집단소송, 징벌배상, 입증책임의 전환등 소비자권익3법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금융거래시 사전정보제공, 판매행위 규제, 사후구제 강화 등 전과정을 포괄하는 금융소비자보호법이 문재인 정부의 중요 정책과제로 선정됐다. 하지만 20대 국회에서도 1년이 훌쩍 넘도록 정부의 조직 이기주의와 여야의 입장차이만을 내세우며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다. 금융소비자보호법은 2010년 6월 법안이 발의된 후 지난 8년 동안 14개 제정안이 발의되었으나 시한만료로 폐기된 바 있다. 현재 5개 법안이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전 세계가 금융소비자 권익보호를 위해 별도의 금융소비자 보호 기구를 설치하는 등 금융소비자보호를 강화하고 있다. 이번 국회에서도 금융소비자보호법이 제정되지 못한다면 이는 소비자 뿐 아니라 우리나라 금융 산업을 위해서도 비극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금융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산업이다. 액셀만 밟는 금융회사의 판매행위에 대한 사전규제의 틀을 마련하고 금융소비자의 사후구제 권리를 증진하는 등 최소한의 금융소비자보호 장치를 마련하지 않는다면 신뢰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정부와 국회는 조직이기주의와 여야의 당리당략을 떠나 오직 국민이 바라는 대로 금융소비자보호법을 조속한 시일 내에 반드시 제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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