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트의 비트코인 선물은 ‘실물 인수도(Physical Delivery)’으로 결제일이 정산한다. 2017년 12월 선보인 시카고상품거래소(CME)나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의 비트코인 선물 계약을 현금(달러)로 정산하는 것과는 다르다. 백트의 비트코인 선물 상품을 매매하는 기관 투자자들에게는 실제 비트코인이 필요하다. 이 상품의 거래 규모가 카진다는 건, 실제 비트코인 수요가 늘어난다는 의미다. 계약 기간은 하루에 불과하기 때문에 선물 시장의 외피를 쓴 현물 시장이라고 볼 수 있다. 크립토 버전의 뉴욕증권거래소(NYSE)가 출현하는 셈이다.
<참고 기사: [고란의 어쩌다 투자]2019년 크립토 시장, 뭣이 중한디…비트코인ETF 보다 ‘백트’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283377
출처: 비트코인머그닷컴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백트의 주인은 월가가 믿는 ICE
백트라는 이름은 일종의 말 장난에서 나왔다. 지난해 8월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백트의 최고경영자(CEO) 캘리 뢰플러(Kelly Leoffler, 제프리 스프레처 ICE 대표의 부인이다)는 “백트(Bakkt)라는 이름은 ‘backed’라는 단어에서 따왔다”며 “backed는 ‘자산담보부증권(asset-backed securities)’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제프리 스프레처 ICE 대표, 캘리 뢰플러 백트 CEO. 출처: 포춘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백트가 꿈꾸는 모델은 퇴직연금을 구성하는 투자 상품의 하나로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관련 상품을 넣는 것이다. 뢰플러 CEO는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2015년 코인베이스(블록체인 관련 유니콘 기업)에 소액이긴 하지만 지분 투자를 했다”며 “찰스슈왑(미국의 증권사) 이용자보다 코인베이스를 이용하는 밀레니얼 고객층이 더 두텁다”고 말했다. 밀레니얼 세대에 적합한 투자 상품은 오히려 비트코인이라고 강조했다. 규제 틀 밖에 있는 바이낸스ㆍ비트멕스 등의 암호화폐 거래소보다는, 기관 투자자 입장에서는 백트를 훨씬 믿을 만 하다.
백트의 존재감은 첫 번째 투자만으로 1억8250만 달러를 모은 것으로 입증된다. 백트 측은 지난해 말, 보스턴컨설팅그룹ㆍ갤럭시디지털ㆍ호라이즌벤처스ㆍ판테라캐피털 등 12곳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했다고 밝혔다. 세계 23번째 부자인 홍콩의 리카싱 청쿵그룹 회장도 호라이즌벤처스를 통해 백트에 투자했다.
스타벅스가 파트너로 들어온 까닭은
ICE가 백트를 설립하면서 제휴를 맺은 기업이 스타벅스와 마이크로소프트(MS)다. 포춘은 이를 “기술 기업과 리테일 기업의 조화”라고 표현했다. MS는 결제와 관련한 크라우드 컴퓨팅 및 빅데이터 기술을 제공한다.
출처: 올비트코인스토리즈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시장조사업체 S&P글로벌마켓인텔리전스에 따르면, 2016년 기준으로 스타벅스가 선불카드와 모바일 앱으로 보유한 현금 보유량이 12억 달러(약 1조4000억 원)에 이른다. 같은 기간 캘리포니아리퍼블릭뱅코프(10억1000만 달러), 머천타일뱅크(6억8000만 달러) 등 웬만한 미국 지방은행 현금보유량을 뛰어넘는다. 미국에서는 보통 예금계좌에 일정액 이상이 없으면, 은행이 이자를 주는 게 아니라 되레 계좌유지 명목으로 고객에게서 수수료를 거둬간다. 통장에 평소 돈이 별로 없는 사람이라면 수수료 없는 스타벅스가 은행 계좌보다 더 나을 수 있다.
미국 IT 전문 잡지 와이어드는 “스타벅스는 바리스타가 일종의 은행 영업점 창구직원과 같은 역할을 하며 지속적으로 은행 기능을 확대하고 있다”며 “카드 사용자들이 카드에 넣어둔 현금을 뽑아 쓸 수 있게 하는 예금인출 기능까지 추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국 하버드대가 발간하는 경영전문지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는 구글ㆍ알리바바와 함께 스타벅스가 은행의 새로운 경쟁자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곧, 암호화폐 기반으로 결제 서비스를 선보이는 스타트업보다는 오히려 백트가 전통 결제 시장의 틈바구니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는 의미다. 암호화폐 업계가 그렇게 바라던 ‘유스 케이스(Use Case)’가 출현하는 셈이다.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