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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멀리 가긴 추워, 가게 앞에서 뻐끔뻐끔~퉤"…상인들 "장사 접을까요?" [김기자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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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는 껌처럼 눌러 붙은 담배꽁초와 가래침이 뒤섞여 / '상습흡연 민원다발지역' 경고 문구 앞에서 뻐끔뻐끔…'무용지물' / 차가운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아 / 밥마다 쌓이는 꽁초·쓰레기…치우기도 버거워 / 찬바람이 불 때마다 담배 연기는 가게로 들어와 / "멀리 가긴 추워" 입구에서만 피워…상인들은 속앓이만

세계일보

지난 9일 오전 1시쯤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 한 상가 입구에서 흡연자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날씨가 춥다 보니 가게 입구에서 담배를 많이 피웁니다. 그렇다고 담배를 못 피우게 할 수 없잖아요. 속으로는 욕도 하고 언제 치우나 하죠. 차라리 침이라도 좀 들 뱉으면 좋겠는데, 담배 피우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게 쉽나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서울 동작구 노량진에서 거주하고 있는 이모씨 늦은 밤 찬바람에 잠도 깰 겸 밖으로 나온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내려온 이씨는 잠시 둘러보고 깊은 한숨을 쉬고는 다시 방으로 다시 들어갔다. 담배 냄새를 싫어하는 이씨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내려올 때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조심스럽다고 했다. 유독 겨울철만 되면 가까운 건물이나 가게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일이 많아진 탓이다.

이씨는 같은 고시생 입장에서 그 심정을 이해한다고 했다. 하지만 담배 냄새가 옷에 배면 좁은 방 온통 담배 냄새로 진동한다고 했다. 이씨는 짧게는 머무른 곳에서 굳이 나설 필요는 없다고 했다. 작년 11월에 같은 층을 쓰는 한 고시생이 '여기서 담배 피우지 마세요'라고 사소한 지적에도 큰 싸움으로 번질 뻔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봐도 늘 조심스럽다고 했다. 이씨는 "불안한 미래와 좁은 공간에서의 공부만 한 탓에 스트레스가 엄청나 잠시 쉬고 싶은 마음에 담배를 피우는 것 같다"며 "사소한 문제도 큰 싸움으로 번질 수 있어 보고도 모른 척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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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 입구 빗물받이에는 담배꽁초로 가득 차 있다. 눈에 띄는 곳에는 '상습흡연으로 인한 민원 다발지역입니다. 간접흡연의 피해가 없도록 금연하여 주시길 바랍니다.'라는 경고문이 선명하게 붙어있지만, 경고문 주변에는 담배꽁초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음식 장사를 하는 최씨는 담배 피우는 사람도 싫지만, 담배를 피우면서 떨어지는 담뱃재가 겨울 찬바람에 날려 안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최씨는 "노량진 특성상 고시생들이 많고 버리고 가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식사를 마친 일부 손님은 가게 문을 나서자마자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이고 있었다. 가게 주변 곳곳에는 '금연' 문구는 붙어있었지만, 별 소용이 없어 보였다.

◆'담배꽁초 무단투기'…치워도 '꽁초 천지'

지난 9일 오전 1시 쯤 늦은 시간에도 PC방 입구와 노래방 입구에는 담배를 피우기 위해 밖으로 나온 사람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주점 앞에는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기 위해 잠시 나온 사람들도 있었다. 일부 흡연자들은 어두운 골목길로 들어가 흡연을 하면서 소변을 보기도 했다. 골목길이 좁다 보니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손을 흔들며 담배 연기를 피하거나 코를 막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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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 옆 골몰길. '상습흡연으로 인한 민원 다발지역입니다. 간접흡연의 피해가 없도록 금연하여 주시길 바랍니다.'라는 경고문이 선명하게 붙어있지만, 경고문 아래에는 버려진 각종 쓰레기와 담배꽁초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보건당국이 흡연율을 낮추고자 보다 강도 높은 금연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노량진은 다른 세상 이였다. 노량진 학원가 골목길을 걷다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문구가 있다. '가게 앞 금연','흡연 금지','금연 구역'이다. 그뿐만 아니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는 '상습흡연으로 인한 민원 다발지역입니다. 간접흡연의 피해가 없도록 금연하여 주시길 바랍니다'라는 동작구 보건소에서 설치한 경고 현수막도 큼지막하게 눈에 띈다.

강한 경고 문구에도 불구하고 '금연' 푯말 아래에는 담배꽁초와 각종 쓰레기로 넘쳐났다. 푯말이 버젓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담배 연기를 내뿜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흡연자들은 당연하듯 담배를 피우고, 바닥에는 껌처럼 눌러 붙은 담배꽁초와 가래침이 뒤섞여있었다. 주변 배수구에는 담배꽁초가 수북이 쌓여 한눈에 봐도 위생상태가 엉망이었다. 담배 연기가 가게나 건물까지 유입되면서 간접흡연에 무방비로 노출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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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한 상가 입구에는 버려진 담배꽁초·일회용 컵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여기뿐만 아니었다. 어둡고 인적이 뜸한 외진 골목길은 더 심각했다. 담배꽁초가 무더기로 쌓여있었다. '담배꽁초 무단투기 이제 그만!!, 적발 시 과태료 5만원'이라 라는 경고문이 선명하게 붙어있지만, 경고문 아래에는 버려진 담뱃갑과 담배꽁초가 수북했다. 담배꽁초 투기 장면을 자연스럽기까지 했다. 남의 시선을 아랑곳 하지 않은 채 담배를 피우면서 빗물받이에 버리는 모습은 익숙한 듯 보였다. 담배 피우면서 걷는 사람도 쉽게 눈에 띌 뿐만 아니라 반복된 헛기침을 하며 침을 뱉기도 했다. 곳곳에 있는 빗물받이는 재떨이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담배꽁초로 가득 차 있었다. 한 빗물받이에는 불이 완전히 꺼지지 않은 담배꽁초 탓에 흰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상가 앞 청소는 대부분 주민이나 상인의 몫. 담배꽁초가 벽돌 틈이나 건물 사이에서 끼거나 가래침에 잦으면 청소하기가 여간 고생이 아니다. 미관을 해칠 뿐만 아니라 길바닥에 붙어 빗자루로 쓸어도 잘 쓸리지도 않아 일일이 집게로 집어내야 한다.

노량진에서 길거리 카페를 운영하는 김씨는 출근하지 마자 담배꽁초와 흡연자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를 치운다. 담배꽁초가 쌓여있으면 손님이 준다는 것. 일부 손님 중에는 담배를 피우면서 커피를 주문하지만, 딱히 제재할 방법이 없다며 속앓이만 한다고 하소연 했다.

인근 주민 김모씨는 "버려진 담배꽁초가 어마어마합니다. 서울 시내 돌아봐도 여기만 한 곳이 없을 겁니다"고 말했다. 고시생들이 외지인이다 보니 사소한 지적에 큰 소리 난다 했다. 김씨는 "민감한 고시생들이고, 젊은 사람들이라 말도 못하고 있다. 누가 담배꽁초에 가래침을 보면 좋아하겠어요"라며 인상을 찌푸렸다.

◆ 가게 앞 쓰레기 더미 주변에는 담배꽁초가 가득…화재 우려

쓰레기 수거가 쉽게 가게 옆에 내놓은 생활 쓰레기 주변에는 밤이 깊어 갈수록 담배꽁초는 쌓여갔다. 더욱 심각한 것은 꺼지지 않은 채 버려진 담배꽁초도 있었다. 자칫 담뱃불이 쓰레기 더미에 옮겨 붙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건물에 옆에 둔 쓰레기에서 화재 발생한다면, 자칫 대형화재로 이어질 수 있었다. 최근 3년간 서울시 화재사고 중 47.4%가 주거지역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가 골목은 소방차 통행이 어렵기 때문에 신속한 초기진압을 놓칠 경우 대형 사고나 인명피해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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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점이 밀집된 노량진 골목길. 한 흡연자가 걸으면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2017년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상반기 서울 25개 자치구의 흡연 단속 건수는 모두 2만8723건이었다. 과태료는 총 22억294만 원이 부과됐다. 자치구별로 보면 서초구의 단속 건수가 1만3658건으로 가장 많았다. 전체 단속 건수의 57.6%를 차지한다.

단속 건수가 가장 낮은 구는 강북구로 올 상반기 151건을 적발해 과태료 1510만 원을 부과했다. 중랑구(152건), 관악구(167건), 용산구(220건), 도봉구(227건)도 단속 건수가 낮았다. 실적에 차이가 큰 것은 흡연 단속은 구청 재량이 크기 때문이다.

동작구 보건소 한 관계자는 "학원가이고 고시생들이 많은 지역이다. 흡연문제에 있어 구에서 제일 심각한 곳이다"며 "이동 클리닉을 통해 지속적으로 상담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개방형 흡연 부스를 만들었지만, 거리가 멀다 보니 거기까지 가서 담배를 피우는 분들이 많지 않다"고 덧붙였다.

글·사진=김경호 기자 stillcu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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