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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시가격 현실화에 또 터진 세금 ‘공포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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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2월 경실련 회원이 토지 보유세 강화와 부동산 투기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경향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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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부터 부동산 세금 폭탄 논쟁에 불이 붙었다. 논쟁의 대상은 공시가격 현실화에 따른 ‘보유세 인상’이다. 보유세는 종합부동산세(종부세)를 포함해 보유 주택이나 토지에 대해 내는 세금이다. 정부가 추진 중인 공시가격 현실화로 주택 공시가격이 오르면 보유세 부담이 ‘폭탄’처럼 커진다는 게 ‘보유세 폭탄론’의 요지다.

물론 이번 보유세 폭탄론의 화력은 노무현 정부 시절 ‘종부세 폭탄 논쟁’ 때만 못하다. 지나고 보니 종부세는 폭탄이 아니었고, 내 주머니에서 돈이 빠져나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시장이 ‘학습’한 것이다. 그런데도 지난해 정부가 종부세 개편안과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자 세금 폭탄론이 쏟아졌다. 세금 폭탄론은 왜 자꾸 불거지는 것일까.

누더기 종부세를 만든 ‘세금 폭탄론’의 위력

노무현 정부는 집권 내내 ‘세금 폭탄론’에 시달렸다. 2005년 노무현 정부 시절 재정경제부는 5·4 대책을 발표했다. 당시 0.13~0.15%였던 보유세 실효세율(납세자가 실제 내는 세금이 과세대상 소득이나 재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2017년까지 1%로 강화하겠다는 것이 이 대책의 핵심이다. 과세대상 주택의 가격을 모두 합친 금액이 예컨대 1000조원이라면 1%인 10조원 정도를 보유세로 걷는다는 의미다.

5·4 대책은 그동안 구호에 그친 보유세 강화를 정부 차원에서 시기별로 구체적인 로드맵까지 제시해 수면 위로 끌어올린 첫 정책이었다.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저서 <부동산 투기의 종말>에서 “5·4 대책은 우리나라 부동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방안을 담고 있다”며 “보유세 강화와 개발이익 환수장치의 확대 강화는 부동산 투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가장 좋은 정책수단”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5·4 대책은 나오자마자 보수언론을 비롯한 ‘부동산 기득권 세력’으로부터 세금 폭탄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자유기업원 김정호 원장은 한 언론기고문에서 “5·4 대책은 사실상 토지국유제로 가려는 정책”이라고까지 주장했다.

결국 참여정부는 2005년 8월에 발표한 ‘서민 주거안정과 부동산 투기억제를 위한 부동산 제도 개혁방안’, 이른바 8·31 대책에서 2017년까지 보유세 실효세율 1%를 달성한다는 계획을 빼버렸다. 한덕수 당시 경제부총리는 8·31 대책을 발표하면서 “부동산 투기는 끝났다”고 선언했지만, 정작 보유세 강화 정책은 이전보다 약화됐다. 8·31 대책은 보유세 실효세율을 2005년 0.20%에서 2006년 0.27%, 2017년 0.61%로 올리는 것으로 로드맵을 짰다. 대신 노무현 정부는 2009년까지 종부세 대상자에 한해 보유세 평균 실효세율을 1%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며 보유세 강화 대상을 좁혔다. 세금 폭탄론을 등에 업은 비판여론에 밀려 과세 표적을 ‘부자’로 한정한 것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가진 자를 죄인’으로 몰아 ‘징벌적 과세’를 한다는 새누리당과 보수언론의 공격이 이어졌다. 이후 2006년 하반기 ‘단군 이래 최대 폭등세’라고 불린 투기 광풍이 불었고 부동산 대책은 힘을 쓰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참여정부 5년 동안 토지와 주택 가격은 각각 23.7%, 23.9% 올랐다. 8·31 대책에서 나온 종부세 강화 정책도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무력화됐다. 이 과정에서 투기세력은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세금 폭탄론으로 맞받아치며 버티면 된다’는 사실을 익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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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한덕수 경제부총리가 부동산종합대책 관계부처합동기자회견에서 정부정책을 발표하고 있다./권호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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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통하는 세금 ‘공포탄’

“어떤 경우에든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가격 문제에 대해서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2017년 8월 2일 발표한 문재인 정부의 첫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현 정책실장)은 이렇게 밝혔다. “이듬해 4월까지 집을 팔 기회를 주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김 수석의 ‘센’ 발언과 달리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첫 부동산 정책인 이른바 ‘8·2 대책’의 강도는 세지 않았다. 무엇보다 부동산 정책의 한 축인 조세정책(보유세)이 통째로 빠졌다. 김 수석은 “보유세는 소득이 발생하지 않았는데도 부과하는 세금이라서 조세저항이 더 심하다”는 말로 보유세 강화에 선을 그었다. 노무현 정부에서도 부동산 정책의 밑그림을 그렸던 김 수석은 당시 보유세 ‘뇌관’을 건드렸다가 정권의 지지율 하락을 직접 겪은 당사자이기도 하다.

진보학자들은 정부의 첫 부동산 정책에서 보유세 강화가 누락된 것을 우려했다. 참여정부 초대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냈던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는 8·2 대책과 관련한 언론 인터뷰에서 “참여정부 시절 보유세 강화를 예고했는데도 다주택자들이 집을 안 팔고 기다렸다”며 “보유세 강화가 빠진 상태에서는 주택을 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부동산 세력은 버티기를 택했고 예상보다 낮은 강도의 대책이 나오자 되레 집값이 오르기 시작했다. 8·2 대책 이후 1년 동안 서울 25개구의 아파트값 상승률은 지난 5년간 연간상승률보다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서울지역 아파트값은 가구당 평균 2억원 이상 올라 30% 가까이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7월 정부는 보유세 강화의 칼을 빼들었다. 종부세를 강화하는 종부세 개편안을 내놓은 것이다. 하지만 개편안에서 책정된 종부세 최고세율은 노무현 정부 종부세 세율 상한선 3%보다 낮았다. 재정개혁특별위원회가 권고한 종부세 개편안(세수 1조1000억원 증가)에도 못미치는 수준(세수 7400억 증가)이다. 솜방망이 개편안임에도 불구하고 종부세 폭탄론은 어김없이 등장했다.

두 달 뒤 널뛰는 집값을 잡기 위해 정부는 또다시 주택시장 안정대책(9·13 대책)을 발표했다. 종부세 최고세율을 올려 보유세를 강화하는 한편, 주택자의 대출규제 강화와 수도권 30만호 공급방안을 담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보유세 강화는 ‘시늉’을 내는 데 그쳤다는 지적을 받았다. 종부세 최고세율을 3.2%까지 올리고 과표 3억원부터 6억원 구간(시가 18억~23억원)을 만들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종부세 대상자는 늘지 않았다. 종부세 최고세율 3.2%는 주택 3채 이상을 보유한 다주택자에게만 해당되는 수치다. 9·13 대책으로 당초 정부안보다 추가 발생하는 종부세 세입은 2700억원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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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동산 보유세 강화를 촉구하고 있다./촬영 강윤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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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더기’ 종부세를 제외하고 남은 보유세 강화방안은 ‘공시가격 현실화’다. 정부가 토지·주택의 공시가격 인상 방침을 밝히자마자 자유한국당과 보수언론은 공시가격을 향해 세금 폭탄론을 쏟아내고 있다. 1월 8일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정부의 공시가격이 세금폭탄으로 가시화되고 있다”며 “공시가격이 오르면 상당수 서민에게 세금이 무차별적으로 적용된다”고 비판했다.

세금 폭탄론과 함께 조세저항이 거세질 조짐이 보이자 국토교통부는 연일 공시가격 조정의 대상은 ‘고가의 단독주택일 뿐’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공시가격 조정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부작용을 줄이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보유세 역풍으로 자칫 내년 총선에서 질 수 있다는 정치적 셈법에 따른 행보다. 하지만 정부가 공시가격 조정의 대상을 좁히고 완화할수록 세금 폭탄론의 화력은 더 커진다. 세금 폭탄론이 여전히 정부 정책을 흔들 만한 힘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태경 헨리조지포럼 사무처장은 “정부가 보유세 강화방안을 뺐다가 집값이 오르자 별 고민 없이 (보유세 강화방안을 다시) 허겁지겁 넣은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시장에서는 정부가 부동산 잡을 의지가 없는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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