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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이 올랐는데 왜 월급이 그대로죠. 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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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법적으로 국내에 들어와 근무하는 이주민 노동자들은 대한민국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는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이들의 임금도 동일하게 오른다. 그러나 고용주들은 갖가지 편법을 이용, 이주노동자들에게 지급해야 할 임금을 주지 않고 있다.

이주와 인권연구소(MIHU)는 지난 1월 7일 이주노동자의 노동조건 및 주거환경에 대한 실태조사 최종보고서를 발간했다. 2018년 4~8월 전국 22개 이주인권단체 및 노동조합과 함께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 1461명을 상대로 조사했다. 유효응답자는 1215명이다. 이 자료는 지난해 10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표한 내용을 보강한 것이다.



2018년 최저임금은 2017년보다 16.4% 오른 7530원이었다. 그러나 이주와 인권연구소가 취합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7년 한국에서 일하지 않은 응답자를 제외한 1132명 중 절반(52.5%)만이 “2017년에 비해 2018년에 임금이 늘어났다”고 답했다. 나머지는 비슷하거나(36.1%) 오히려 적어졌다(11.4%)고 답했다. 사업주는 최저임금 인상과 함께 각종 공제를 신설하거나 기존 공제액을 늘리는 방식으로 이주노동자에게 돌아가야 할 추가급여를 주지 않았다.

이주노동자들은 그러나 최저임금 상승 대비 각종 공제비 상승이 어떻게 이뤄졌는지를 명확하게 확인하기 어렵다. 애초 이주노동자들에게 제공되는 월급명세서가 없거나, 있어도 요식행위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태국에서 온 제조업분야 노동자 A씨는 “월급은 올랐는데 회사의 비용을 줄이기 위해 숙소비와 식비를 올렸다”고 답했다. 한 달에 공제한 숙소비와 식비가 5만원이었는데 2018년부터 공제비가 한 달에 20만원으로 4배나 늘어났다.

2017년과 비교해 2018년 작업장의 노동조건도 달라졌다. 사업주는 근무시간을 줄이는 방식으로 임금상승을 최소화했다. 2017년에도 일을 한 노동자 중 유효응답자 1102명의 45.2%는 최저임금 상승 후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고 답했다. 연장근무와 야간근무를 최소화하는 식으로 임금을 동결한 것이다. 기존에 지급해온 상여금(보너스)이 줄어들거나 없어졌다고 답한 노동자도 36.3%로 뒤를 이었다. 2017년에는 내지 않았던 숙식비를 내기 시작했다고 응답한 노동자도 18%나 됐다. 임금이 오르지 않았다고 답한 이주노동자도 12.7% 있었다. 임금이 인상됐으나 7530원이 아니었다고 답한 노동자는 9.7%였다. 숙식비를 올리는 방법(5.4%)으로 총지급액을 낮춘 경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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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 이상이 임시주거용 숙소서 지내

문제는 일하는 시간은 줄어들었는데 전체 작업량은 동일하다는 데 있다. 당연히 노동강도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네팔에서 온 제조업 노동자 B씨는 “기계보다 빨리 일해도 이 나라 사람들이 빨리빨리 해라 할 때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미얀마에서 온 제조업분야 노동자 C씨는 “사장님 말로는 2018년에 최저임금이 인상돼서 2017년보다 생산물량이 더 많이 나오게 해야 된다고 했다”고 답했다.

휴식시간을 단축해 노동시간을 늘리는 편법도 사용됐다. 캄보디아에서 온 제조업 노동자 D씨는 “하루 8시간 일하면 1시간 쉬는 시간 준다고 했는데 쉬는 시간은 점심시간 20분밖에 없다”고 했다.

각종 공제비용이 늘어난 점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여기에는 통신비, 식비, 기숙사비 등이 해당된다. 농어촌지역을 제외한 제조업분야 노동자 대부분은 2017년까지는 ‘기숙사비’가 공제항목에 포함돼 있지 않았다. 각자 알아서 자취를 하는 경우도 있고, 사업주로부터 숙소를 제공받아도 작업창고 한쪽에 마련된 숙소에 거주할 경우 이전까지는 기숙사비를 별도로 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숙소에 머무는 것이 곧 공장을 지키는 일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조업분야에서도 고용주들이 ‘기숙사비’를 공제항목에 넣기 시작했다. 이한숙 이주와 인권연구소 소장은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2018년부터 제조업분야 노동자들 사이에 새롭게 등장한 공제비가 바로 이 ‘기숙사비’”라고 말했다.

기존에 받던 기숙사비를 올리는 경우도 있다. 이주민 지원 공익센터 ‘감사와 동행’의 고지운 변호사는 “기존에 농어촌지역 이주노동자들이 고용주로부터 최대 월 30만원 정도의 숙식비를 공제한 월급을 받아왔다면 2018년에는 고용주가 40만원에서 많게는 50만원까지 기숙사비 명목으로 월급에서 제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상승에 따른 월급 상승분을 각종 공제비를 올리는 방식으로 상계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어떤 곳에서 사느냐’이다. 전체 응답자 가운데 ‘주거용 독립건물’, 즉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에 거주하고 있는 노동자는 절반도 되지 않았다(43.9%). 나머지는 작업장 부속 공간 또는 가건물처럼 임시주거용으로 꾸며놓은 곳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었다(55.4%). 특히 농·축산업 종사자는 조립식 패널이나 컨테이너로 지은 임시가건물, 그 중에서도 비닐하우스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다. 법적으로 비닐하우스에는 사람이 거주할 수 없다. 공장 등 제조업분야 종사자들은 주로 작업장 부속공간(40.3%)에서 숙식을 해결한다.

숙소의 상태 역시 열악할 수밖에 없다. 사용이 가능한 에어컨이 없거나(42.6%), 실내화장실이 없고(39%), 소음이나 분진, 악취가 나는 경우(37.9%)가 많았다. 화재 대비시설이 없다고 응답한 이주노동자도 34.9%에 달했다. 일부 이주노동자들은 화장실이 없어 대야에 소변을 받아 밖으로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이한숙 소장은 “이주노동자들은 ‘집 아닌 집’, 그 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공간에서 살고 있고, 그 비중은 해마다 늘어가고 있다”면서 “이주노동자 역시 주거권이 있는 주체로서 주거복지의 대상자로 편입될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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