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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해경 눈만 속이면 돼" 구명조끼 벗고 소주 17병...낚싯배는 무법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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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낚싯배’ 타보니 ‘무법천지'
술자리 권하며 "안 걸리면 된다"
"구명조끼 불편" 벗어 던져
‘포인트’두고 낚싯배끼리 충돌직전까지

지난 11일 통영 앞바다에서 낚싯배 ‘무적호’가 뒤집혀서 3명이 숨졌다. 실종자 2명은 하루가 지나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은 사고가 난 당일 오후 경남 통영항에서 낚싯배를 탔다. 선장은 "해경에 안 걸리면 된다"는 식이었고, 낚시꾼들은 배에 올라 술 25병을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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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경남 통영시에 낚싯배들이 정박해 있다. 배가 항구를 떠나자 술판이 벌어졌다. /독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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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진창 승선원 명부
이날 오후 2시 통영시내 낚싯배 사무실에 도착했다. 절차는 간단했다. 직원이 ‘승선원 명부’를 내밀었다. 여기에는 이름, 전화번호, 비상연락처, 집주소를 쓰게 되어 있다. 그러나 가짜로 쓰더라도 ‘본인확인’을 따로 하지는 않는 듯했다. 직원은 승선원 명부를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카드로 (결제)하세요? 아니면 현금?"이라고 물었다.

다른 낚시꾼들은 승선원 명부를 제멋대로 썼다. 비상연락처를 비워두거나, 주소를 ‘통영시’ 정도로만 대충 써냈다. 승선원 명부 모든 항목에 다 적어낸 낚시꾼은 없다시피 했다. 실제 무적호 사망자 3명도 승선원 명부에 엉뚱한 전화번호를 적어낸 것으로 전해졌다.

일단 결제하면 장비를 빌려줬다. 낚싯대, 낚싯바늘, 목장갑을 받았다. 직원 안내에 따라 선박으로 옮겼다. 9.77톤(t)급 선박으로 22인승이었다. 현행법(낚시관리 및 육성법)에 따르면 승선할 때는 반드시 신분증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아무도 신분증을 내놓지 않았다. 선장도 따로 "보여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배에는 21명(선원 3명·낚시꾼 18명)이 올라탔다. 이 배에 ‘만일의 사태’가 생기더라도 뭍에서 탑승자 신원을 확인하기 난망해 보였다. 걱정이 머리를 스치는 것도 잠시, 배는 "통통통" 소리를 내면서 항구와 멀어지고 있었다.

◇소주 17병, 막걸리 2통, 맥주 6병
이윽고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선실 밖으로 나가실 때 구명조끼 입어주세요. 해경이 단속할 수도 있거든요. 저녁에는 뭐 (안 입어도)상관없습니다." 해경에만 안 걸리면 된다는 뜻이었다. 같은 포인트로 서너 척의 다른 낚싯배가 몰렸다. 건너편 낚시꾼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가 됐지만 선장은 스마트폰에 두 눈을 고정하고 있었다. 기자가 "어어" 소리를 내자 선장은 그제서야 조종간에 한 손을 올려서 비켰다. 반대편 손에는 여전히 스마트폰을 쥔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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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경남 통영 한 낚시어선에서 낚시꾼 5명이 출항 10분 만에 선미에 모여 술판을 벌였다. /독자 제공

출항한 지 10분이 지났을까. 배 위에서 술판이 벌어졌다. 낚시꾼들이 선미(船尾)로 일사불란 모였다. ‘즐기는 수준’이 아니었다. 소주 17병, 막걸리 2통, 맥주 6캔이 등장했다. 미처 술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은 "초짜 티가 난다"는 핀잔을 들어야만 했다.

선원이 술판을 조장했다. "누가 뭐라 하겠어! 종이컵에 따라서 조용히 마셔!" 술자리는 90분이나 이어졌다. 얼굴이 붉어진 낚시꾼들은 "내가 전에 뭘 낚았는지 아느냐"면서 다투기 시작했다. 자기가 과거에 잡은 물고기가 더 대단하다는 것이었다.

배에는 경고문이 적혀 있었다. "선내(船內)에서 술을 마시거나 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행위는 금지한다"는 내용이었다.

◇구명조끼를 벗어 던졌다
드디어 뽈락(볼락)이 많이 잡힌다는 포인트에 도착했다. 낚시꾼들은 남은 안주를 우르르 바닷속에 던지더니, 일제히 낚싯대를 빼 들었다. 과연 포인트는 포인트였다. 한 시간 만에 낚싯배 위로 올라온 뽈락은 100여마리에 가까웠다. 주변이 어두워지자 낚시꾼들이 ‘선장의 조언’대로 구명조끼를 벗어 던졌다. 낚싯대를 올리기가 어렵다, 겨울 점퍼가 두꺼워서 덧입기 불편하다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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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경남 통영 한 낚싯배에서 낚시꾼들이 구명조끼를 입지 않고 있다. /독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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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관리육성법에 따르면 선장은 승객이 구명조끼를 입도록 해야 하고, 구명조끼를 입지 않는 승객을 승선 거부할 수 있다.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을 경우 선원 300만원 이하, 낚시꾼에게는 100만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된다.

해경 관계자는 "한번 출항하면 5~6시간 이상 낚시를 하기 때문에, 불편하다는 이유로 구명조끼를 벗고 있는 승객이 많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단속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번 무적호 사고에서도 숨진 3명은 모두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았다.

◇포인트가 뭐길래… 충돌 직전까지 바짝 붙인 낚싯배
포인트는 정해져 있었고, 낚싯배들은 많았다. 입질이 잘 오지 않는 곳에서는 어김없이 선장을 향한 질타가 터져 나왔다. "고기 많은 데로 안 가고 뭐하노?" "이렇게 돌아다니기만 할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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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경남 통영 바다에서 낚싯배 두 대가 ‘낚시 포인트’를 두고 다투고 있다. /독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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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에 못 이긴 선장이 다른 낚싯배가 이미 정박한 포인트로 근접했다. 상대편 낚싯배에서 "뿌우"하고 경적을 울렸다. 기자가 탄 낚싯배도 똑같이 경적 울리면서 대거리했다. 누구도 물러서지 않았다. 바다 한가운데서 양쪽 낚싯배 선장들은 확성기로 설전(舌戰)을 벌어졌다.

"비키라!(비켜라)"
"니가 비키라!"
"바다가 전부 니 거가?(너의 것이냐)"
"개XX야 어디서 반말이고?"

낚시꾼들도 상대 낚싯배를 향해 삿대질하면서 욕설을 퍼부었다. 낚싯배 두 대가 충돌할 정도로 가까워졌다. 결국 한 포인트에서 두 대의 낚싯배가 바짝 붙은 채 정박했다. 큰 파도가 밀려올까 봐 걱정됐다. 사무장이 "뽈락은 돌 많은 곳에 모인 채로 잘 안 움직여서 ‘포인트’ 잡기가 생명"이라면서 "(낚싯배끼리)이 정도 가까운 건 문제도 아니야"라고 말했다.

◇다시 술판…구명조끼 없이 귀항
저녁 식사 시간이 되자 ‘2차 술판’이 시작됐다. 낚시로 잡은 뽈락회가 안주였다. 이번에는 소주만 등장했다. 이날 새벽에 있었던 낚싯배 무적호 사고가 잠깐 화제에 올랐다. "그냥 재수가 없었던 거지." 구명조끼 입지 않은 한 낚시꾼이 사고 원인을 이렇게 분석했다. 곧바로 오늘 조과(釣果)로 이야기가 옮겨졌다.

해양경찰청에 따르면 2014년 87건이었던 낚싯배 사고건수는 2017년 263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같은 기간 인명 피해도 43명에서 105명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낚시는 자정이 넘어서까지 계속됐다. 돌연 장대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해풍이 거세게 불었다. 배가 좌우로 출렁거렸다. 선장이 귀항을 결정했다. 낚시꾼들은 선실에 들어가 눈을 붙였다. 18명 낚시꾼 가운데 구명 조끼를 입은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다.

12일 새벽 1시 수온은 섭씨 9.6도로 떨어졌다. 국립수산과학원 연구에 따르면 인간이 섭씨 4~10도 정도의 수온에서는 10분간 잠기면 저체온 증상이 나타난다. 30~60분이면 의식을 잃는다. 최대 생존시간은 3시간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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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경남 통영에서 한 낚시꾼이 낚은 열기(불뽈락). /독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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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시쯤 통영항으로 돌아왔다. 낚시꾼들은 "오후부터는 이제 고등어잡이에 나설 것"이라고 말한 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통영=고성민·권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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