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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두 제압한 백신, 독감엔 고전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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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천종식의 미생물 오디세이

④독감과 천연두, 두 바이러스 이야기

바이러스의 공격과 숙주의 방어

서로 맞서면서 숨바꼭질 공진화

독감 바이러스 쉽게 유전자 변이

사람과 동물 몸 건너다니면서

백신 방어망 빠져나가는 데 능해

독감 퇴치 ‘꿈의 백신’ 오랜 숙제

변화할 줄 모르는 천연두 바이러스

WHO 백신 포위접종 전략에 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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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겨울에도 어김없이 독감이 유행이다. 늦장을 피우던 필자도 수험생인 딸과 함께 지난달에야 뒤늦게 백신을 맞았다. 하지만 백신을 맞았다고 독감에 걸리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바로 독감을 일으키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 숙주인 우리가 치열한 숨바꼭질 게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러스는 엄밀하게 말하면 완전한 생명체가 아니다. 유전자와 그것을 둘러싼 껍질이 전부이고 생명 유지를 위한 필수 단백질은 가지지 않는다. 그래서 반드시 완전한 생명체인 숙주 세포 안으로 들어가야 비로소 활동을 시작할 수 있다. 바이러스의 증식은 숙주에게는 질병을 의미한다. 바이러스는 숙주를 공격하기 위해 진화하고, 숙주는 반대로 방어를 위해 진화한다. 공생이 아닌 기생 관계이지만 서로 상대를 바라보며 공진화라는 숨바꼭질 놀이를 하는 것이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전형적으로 빨리 진화하는 미생물이다. 숙주인 우리도 그만큼 재빠르게 대처하고 있는 것일까?

독감 백신 반드시 필요하지만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새로운 숙주로 옮겨오면 그곳에서 수비군인 면역세포의 공격을 받게 된다. 우리 몸 안의 다양한 면역세포는 바이러스의 껍질에 있는 항원(면역반응을 일으키는 물질)의 겉모양을 보고 침입자를 인식한다. 만약 바이러스의 외모가 면역세포에 익숙하다면 면역세포는 바로 바이러스를 죽일 수 있다. 반대로 낯설다면 면역세포는 바이러스와의 전투에서 고전하게 된다.

우리 면역계는 기억력이 좋다. 그래서 한번 감염된 적이 있는 바이러스는 기억했다가 같은 항원을 가진 바이러스가 다시 들어오면 바로 대응을 할 수 있다. 이 원리를 이용해서 특정 항원을 가진 바이러스가 공격하기 전에 나의 면역계를 미리 훈련시킬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백신의 원리이다. 백신에는 훈련에 사용할 바이러스의 항원이 들어 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크게 A와 B형으로 나뉜다. 가장 흔한 A형은 면역반응을 일으키는 중요한 항원인 H(헤마글루티닌)와 N(뉴라미니다아제)의 종류에 따라 세부적으로 더 나뉜다. 지금까지 발견된 H와 N 항원의 종류가 각각 18개와 11개이기 때문에(H1~H18, N1~N11), 서로 다른 H와 N을 조합으로 갖춘 바이러스가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다.(예컨대 H1N1 바이러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사람만 감염시키는 건 아니다. 돼지나 말, 개와 같은 우리 주변의 동물이나, 기침 소리를 들어본 적은 없지만 심지어 바다에 사는 고래도 독감에 걸릴 수 있다.

동물 중에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가장 선호하는 숙주는 새다. 육종으로 가축이 된 닭, 오리뿐만 아니라 야생의 거의 모든 새가 이 바이러스의 숙주이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철새를 타고 대륙 간 이동도 쉽게 한다. 수많은 야생 동물의 몸 안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다양한 조합의 항원을 가진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만들어지고 있고 숙주에 붙어 여행하고 있다.

새로운 조합으로 구성된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사람의 면역계에는 완전히 새로운 존재일 수 있고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수도 있다. 과학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치사율이 60%에 이르는 H5N1 항원을 가진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이다. 지금까지 주로 아시아 지역에서 발생한 수백건의 H5N1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을 살펴보면 대부분 닭이나 오리 같은 조류에서 사람으로 직접 전염된 것으로 보인다.

천만다행인 것은 이 조류 바이러스가 쉽게 사람에서 사람으로는 전염이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이 바이러스가 낯설 듯이 H5N1 바이러스도 인간 몸 안에서의 생활에 적응이 안 된 것으로 보인다. 조류에서 인간으로 숙주를 옮기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과 운도 필요하다. H5N1 같은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인간에 적응하게 된다면 100년 전 5천만명을 희생시킨 스페인 독감과 같은 대재앙이 올 수도 있다. 이 때문에 타미플루 같은 치료제도 추가로 개발돼야 하고 좀 더 효과 있는 독감 백신에 관한 연구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 실제 사태가 터지고 나서 연구 개발을 하면 이미 늦는다. 그래서 치료제와 백신에 관한 연구는 국가적으로도 꼭 필요한 보험이다.

유행할 독감 예측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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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감은 겨울에 집중적으로 유행하는 계절형 감염병이다. 우리 면역계가 백신 주사를 맞고 전투 태세를 갖추는 데 최소 2주가 걸린다. 그래서 유행이 시작되기 수개월 전에 백신을 맞아야 한다. 수많은 조합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중에 어떤 것이 다가올 겨울에 유행할 것인지는 누구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수많은 종류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인간 사회와 동물 생태계에서 순환하고 있고, 같은 인간이라고 해서 각자의 면역계가 다 같은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그래서 세계보건기구(WHO)와 세계 각국의 전문가가 모여 나름대로 최선의 예측을 한다. 여기에 사용되는 데이터는 지구 북반구에서 그동안 유행했던 바이러스와 6개월 전에 먼저 겨울을 맞은 오스트레일리아 같은 남반구 국가에서 유행했던 바이러스의 유전자 정보다. 우리나라의 백신 회사들은 이 예측 결과에 따라 독감 백신을 급히 만들기 시작한다. 이번 겨울에 우리가 맞은 백신에는 A형 바이러스는 H1N1과 H3N2의 두 가지 항원형이 들어 있고, B형으로 빅토리아(Victoria)와 야마가타(Yamagata) 항원형이 들어 있다. 네 가지를 한꺼번에 넣었기 때문에 ‘4가 백신’이라고 부른다. 백신을 만들기 시작하면 이미 화살은 시위를 떠난 것이다. 명중했을까?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지금 한국에서 주로 유행하고 있는 바이러스는 A형 중에 H1N1 항원형이다. 이번엔 세계보건기구가 항원형까지 잘 맞혔다. 그런데도 백신을 맞은 사람 중에서도 독감에 걸리는 경우가 있다. 왜 그런 것일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같은 항원형이어도 그 세부적인 유전자의 염기서열에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이를 변이라고 부른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빠른 진화로 발생한 변이는 방향성도 없고 무작위로 일어난다.

지금 유행하는 바이러스 유전자를 1년 전에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백신 바이러스와 1년 뒤쯤 유행할 바이러스의 유전자가 완전히 같을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 면역계를 돕는 일을 하므로 백신의 효과는 작지 않다. 특히 독감에 취약한 노약자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

B형 간염이나 수두 백신과 달리 독감 백신은 이렇듯이 해마다 전문가들의 예측을 따라서 새로운 백신을 만들어야 한다. 계속 진화하는 바이러스의 특징 때문에 남은 백신은 폐기할 수밖에 없다. 변신의 달인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제압할 좀 더 나은 백신의 개발은 불가능할까?

지금 생산되는 독감 백신이 주로 조준하는 항원은 H와 N인데 이 항원에는 변이가 쉽게 일어난다. 만약 바이러스 껍질의 여러 항원 중에 변이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 있고 그것을 표적으로 우리 면역세포를 훈련시킬 수 있다면 매년 새로 백신을 만들지 않고 평생 한번만 맞을 수도 있는 꿈의 백신이 만들어질 것이다. 게다가 이런 백신은 모든 종류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게 효과적일 가능성이 커서 H5N1 조류 바이러스처럼 아직은 인간에게 옮겨오지 않은 신종 바이러스에게도 효과가 있을 것이다. 아쉽게도 지난 수십년간 이어온 학계와 산업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꿈의 독감 백신 개발은 아직 이뤄지지 못한 채 현재도 진행형이다. 현대 미생물학의 여러 난제 중의 하나이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완전히 퇴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수 있다. 두가지 이유인데, 첫째는 바이러스의 빠른 진화로 인해 한번 개발된 치료제나 백신을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없고, 둘째는 인간 이외에도 다른 숙주가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세상의 모든 새를 없앨 수도 없고, 더군다나 모든 새에게 백신을 놔줄 수도 없다. 2015년에 우리나라를 강타한 메르스 바이러스도 비슷한 경우이다. 유전자의 변이가 지속해서 일어나고, 사람 이외에도 낙타에게 감염이 되어 있다. 백신도 없고 치료제도 없는 이 바이러스에 대해서는 자기도 모르게 바이러스를 몸에 지니고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여행자를 막는 검역이 지금으로서는 최선의 대책이다.

천연두 바이러스의 멸종

모든 바이러스가 변신에 능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많은 숙주를 감염시킨 성공적인 바이러스라면 좀 더 보수적인 방식을 택하는 것도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을 살상한 미생물로 꼽는 천연두 바이러스가 바로 이런 종류이다. 이 바이러스도 인플루엔자처럼 쉽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전파되고 치사율은 더 높은 30%에 이른다. 천연두는 조선 시대엔 ‘마마’라고 불렀는데, “호환 마마보다 무섭다”라는 말이 지금도 남아 있듯이 호랑이와 함께 당시 우리 민족이 가장 두려워한 존재였다. 이토록 성공적인 바이러스가 숙주인 우리에 의해서 지금은 완전히 멸종했다. 무엇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여전히 창궐하고 천연두 바이러스는 전멸의 막다른 길로 몰아넣은 것일까?

천연두 바이러스는 치사율이 높기는 하지만 천연두에 걸리고도 살아남은 사람의 몸은 면역을 기억하여 평생 같은 질병에 걸리지 않는다. 생존자는 자식을 낳을 것이고 면역의 기억이 없는 그 자식들은 모두 이 바이러스의 숙주가 될 것이기 때문에 일정 수의 인구가 유지되면서 바이러스도 자손을 지속해서 퍼뜨릴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균형은 그 유명한 제너의 종두법이라는 백신이 개발되면서 인간 쪽으로 기울어졌다. 인플루엔자와 달리 변화할 줄 모르던 천연두 바이러스는 단 하나의 백신에 속수무책으로 밀리기 시작했다.

천연두 바이러스의 실책은 감염된 사람에게 발진과 수포와 같은 표지를 드러내게 한다는 점이다. 바로 얼굴에 “나 천연두에 걸렸어요”라고 표시가 나타난다. 세계보건기구의 천연두 박멸부대는 감염된 사람을 중심으로 주변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백신 주사를 놓는 ‘포위 접종’(ring vaccination) 전략을 구사했다. 천연두 바이러스의 또 다른 패착은 숙주가 인간뿐이고, 2주마다 새로운 숙주를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만약 감염자 주변의 사람이 모두 이미 천연두를 앓았거나 백신을 맞았다면, 바이러스는 2주 뒤에 사망한 감염자와 함께 땅에 묻히거나, 감염자가 치료되면서 그의 면역계에 의해서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다. 이런 백신 접종 전략은 제대로 먹혔고, 소말리아의 한 요리사에게 감염된 바이러스를 마지막으로 수천년 동안 인간을 괴롭혀온 천연두 바이러스는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인플루엔자와 천연두 바이러스의 서로 다른 생존 전략은 우리 인간사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하나의 숙주에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끊임없이 변신하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추구하는 것은 다양성의 확보이다. 요즘같이 복잡하고 급변하는 세상에서 기업과 개인의 생존 전략을 가장 단순한 형태의 미생물로부터 배울 수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천종식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 천종식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벤처기업 ‘천랩’ 대표. 미생물 분류학을 전공하고 25년 동안 흙, 물, 남극, 인간과 동물의 몸 등 여러 환경에 적응해 사는 미생물을 연구해왔다. 최근에는 대용량의 미생물 유전자 데이터를 컴퓨터로 분석하는 한국인의 미생물 시민과학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우리 건강과 자연환경에 큰 영향을 끼치는 ‘보이지 않는 지배자’, 미생물의 이야기를 격주로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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