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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더 큰 강에서 더 많은 용이 나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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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신년사에서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개천에서 용이 나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개천을 큰 강으로 만들어 보다 많은 용이 나오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구성원 대부분이 용으로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강에서 나온 용은 말할 것도 없고 개천에서 나온 용 조차도 용이 되는 순간 적폐로 몰리는 문화 속에서 누가 용이 되려고 하겠는가. 그저 개천에서의 삶에 자족하면서 용이 되고자 하는 꿈만 꾸기를 부추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정부는 지난해 신설된 법인 수와 창업지원에 투입된 예산을 근거로 혁신성장의 성과를 홍보한다. 그리고 벤처 창업을 유도한다.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업의 절반은 월 100만원 이하의 수익을 내거나 손실을 보고 있다. 10곳 중 2곳은 대출 이자 만큼의 수익도 못 내는 한계기업이다. 그리고 창업된 기업 10곳 중 7곳은 5년 이내에 폐업한다. 창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창업된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기업 하면 삼성전자, 현대자동차와 같은 대기업을 떠올리고 부동산 하면 강남의 고가 아파트를 떠올린다. 하지만 99%의 사업체는 중소기업이고, 영리기업만을 기준으로 해도 중소기업 종사자 비중은 전체 고용의 70%를 넘게 차지한다. 집단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해단체들은 이러한 착시 현상을 악용해서 여론몰이를 통해 끊임없이 정부에 압력을 행사하고,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각종 규제는 새로운 사업을 통해 성장하고자 하는 기업에 높은 장벽이 되고 있다. 소수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며 만들어 낸 시장의 규제들은 오히려 영세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그리고 스타트업들을 옥죄고 있다. 대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노동시장의 규제들은 힘 없는 노동자들로부터 고용의 기회조차 잃어 가고 있다. 결국 계층 간의 이동을 위한 사다리를 걷어내고 성장을 위한 동기를 앗아가는 꼴이다.

하지만 시장의 규제보다 더 큰 문제는 기업인들을 죄인 취급하는 사회의 문화다. 용을 적폐 취급하는 문화 속에 용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 기업인들이 경험하는 자괴감은 역량있는 기업과 기업가들을 해외로 내몰고 있다. 기업의 투자가 없으면 고용 창출도 없고 기업이 실적을 만들어 내지 못하면 복지 재원도 없다. 그럼에도 양극화 해소라는 명분과 함께 정부가 표방하는 포용국가는 끊임없이 기업과 노동자 간, 기존 산업과 신 산업 간의 대결 구도를 만들어 내며 사회의 갈등을 부추긴다.

포용은 ‘남을 너그럽게 감싸주거나 받아들임’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담고있다. 기업인도 노동자도 기존 산업도 신 산업도 모두 국가가 포용해야 할 대상이다. 하지만 적폐 청산의 프레임 속에서 이분법적 접근을 통해 끊임없이 편가르기를 한다. 지난 수년간 치열한 법적 공방을 이어 가며 적대 관계에 놓여 있었던 삼성과 애플도 ‘CES 2019’ 개막 직전에 상반기부터 삼성 스마트 TV에 애플 ‘아이튠즈 무비&TV쇼’와 ‘에어플레이2’를 탑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협력 방안을 발표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전선은 사라진 지 오래다. 때로는 적과도 손을 잡지 않으면 시장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는 절박함에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합종연횡을 시도하고 있다.

기존 산업에서 중국 기업의 추격은 거세고 온갖 규제에 막혀 새로운 산업을 일으키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우리에겐 서로를 탓하며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때로는 손가락질 했던 대상과도 손을 잡고 함께 달려야 한다. 이념적인 논쟁 속에 정적을 제거하는 명분이 아니라, 개천을 넓혀 강을 만들고 넓은 강에서 더 많은 용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수단으로서의 혁신성장과 포용국가를 상상해 본다.

박희준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