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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백영옥의 말과 글] [81] 빛과 어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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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백영옥 소설가


물리학자 김상욱의 책 ‘울림과 떨림’에서 우주의 98%가 암흑 물질로 덮여 있다는 걸 알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우주는 어둠에 덮여 있고 주위에 빛이 충만하다고 느끼는 건 지구가 태양이라는 작은 별 가까이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빛을 당연히 여기지만 우주에서 빛은 매우 예외적인 것이다.

지금은 '당연해 보이는 것' 중 이런 일이 의외로 많다. 우리와 달리 100년 전 세대만 해도 평화를 '일시적 전쟁 부재 상태'로 생각했다. 한 조명 전문가는 빛이 너무 많으면 생기는 부정적 효과를 지적하면서, 빛이 가득한 곳을 바라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빛이 나는 쪽 뒤편을 전혀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사진을 뜻하는 영어 photograph의 어원은 photo(빛)와 graph(그리다)로 이루어졌다. 즉 빛으로 그린 그림을 뜻한다. 카메라의 어원은 카메라옵스큐라(cameraobscura·라틴어로 어두운 방)이다. 어두운 방 한쪽 작은 구멍으로 빛을 통과시키면 반대쪽 벽에 바깥의 풍경이 맺히는 현상을 말한다. 사진은 '빛으로 그린 그림'이지만 필름 카메라의 사진을 인화하기 위해선 암실 작업이 필요하다. 현상과 인화에 어둠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신년 인사로 "꽃길만 걸으세요"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사는 게 어려우니 던지는 덕담일 것이다. 세월이 지나 생각해보니 타인의 기준으로 '꽃길'이었을지 모를 한때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때 나는 그리 행복하지 못했다. 부르는 곳도, 가야 할 곳도 많았지만 혼란스럽고 힘들었다.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는 말했다. “물체는 심하게 흔들리면 그만큼 마찰이 커진다. 인간도 심하게 움직이면 열이 난다. 옆에서 보면 분명 빛나고 있는 인간이 부러울 것이다. 하지만 빛나고 있는 본인은 뜨거워서 견딜 수 없다.” 내게 남겨진 길이 있다면, 이제 화려한 꽃길보다 소박한 숲길이나 들길이었으면 좋겠다. 가끔 멈춰서, 활짝 핀 야생화를 만날 수 있는 그런 길….

[백영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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