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1919년 1월 제헌의회 선거를 거쳐 민주공화국헌법을 제정하고 연립정부를 구성하지만 혼란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극좌·극우 정당의 난립, 좌파 내 분열, 반란, 파업, 폭동 등 내전 상황을 방불케 했다. 한국 역시 임시정부를 구성하자마자 지역 갈등, 좌우 대립, 좌파 내 대립으로 내분에 휩싸였다. 한국과 독일 모두 낡은 질서를 거부하고 새로운 희망을 찾아 행진했지만, 정치의 실패로 길을 잃은 듯했다. 사회과학자이자 정치인이었던 막스 베버가 이런 현실에서 쓴 정치에 관한 고전적 저작이 <직업으로서의 정치>다. 제헌 총선 9일 뒤인 1월28일 뮌헨에서 진보적 학생단체의 초청으로 강연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그는 다음 해 사망, 이 책은 그의 정치적 유언이 됐다.
베버가 100년 전에 던진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는, 세계 차원에서는 혐오와 포퓰리즘의 기승으로 민주주의 사멸이 거론되고, 국내 차원에서는 대결은 있되 정치는 없는 현실에서 녹슬기는커녕 더욱 빛을 발한다. 그에 따르면 정치는 ‘악마적 힘’을 다루는 일이다. 잘 쓰지 못하면 나치즘, 유신체제처럼 폭력이 된다. 마키아벨리와 달리 정치인의 윤리를 중시, 신념윤리와 책임윤리의 조화를 강조했다. 카리스마적 지도자론은 지도력의 위기를 겪는 오늘날 더욱 절실하다.
한국이 지난 100년간 분열, 분단, 독재, 지역주의, 불평등에 시달렸다면 베버로부터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3·1운동과 임정 100년의 교훈을 ‘소명 혹은 직업으로서 정치를 어떻게 잘할 수 있는가’로 삼을 필요가 있다. 그러면, 앞으로 100년은 분명 나아질 것이다.
이대근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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