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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마저…‘치킨의 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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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불황에 손님 뚝 끊기고

최저임금 부담 알바 줄이고

물가 상승에 비용은 치솟고

프랜차이즈 오늘도 문닫다

헤럴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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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너무 심각해요 지금. 이렇게 닭만 팔아가지고는 어느날 어떻게 될지 모르죠.”

지난 8일, 서울 명동의 한 치킨전문점에서 만난 가게 주인 김모 씨(51)는 기자의 질문에 무거운 탄식부터 터져 나왔다. 출입문 너머 거리를 초조한 얼굴로 살필 뿐이었다. 김 씨는 “손님이 없다고 앉아있을 수만 없지 않느냐”며 문가에 섰다. 지나가는 무리를 보면 혹시 가게로 들어오는 손님인가 싶다가도, 이내 사라지는 모습에 거듭 한숨만 내쉬었다.

이날 명동 일대에서 만난 치킨집 점주들은 하나같이 ‘최악의 시기’라고 입을 모았다. 지속되는 경기 불황과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 치솟는 물가에 시름만 깊어가고 있었다.

“오전 11시부터 문을 열어 새벽 3시까지 일 하는데, 저녁 8~10시 사이 손님이 반짝 들어오는 듯하다가 싹 끊겨요. 그런데 임대료, 아르바이트비 나가고 말도 못 하죠. 본사에서는 물가 오른다고 해서 치킨값을 올려주진 않는단 말이에요. 치킨값은 10년 전 가격이랑 똑같아요.”

인근 가게에서 20년 째 치킨집을 운영 중인 박모 씨(60)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하루에 나가는 닭이 몇 마리쯤 되냐고 묻자 “창피해서 말 못 한다”며 손사래를 쳤다. 박 씨는 “아르바이트생도 이젠 더 못쓰겠다”며 “내가 두세몫 해야지”라고만 했다. 야채, 쌀 등 들어오는 재료는 단돈 100원이라도 안 오른 게 없지만 경기가 안 좋다 보니 치킨값은 쉽게 못 올리는 것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혹한기보다 매서운 치킨집 불황=은퇴자들의 대표적인 창업 아이템인 치킨집 불황은 각종 통계로도 드러난다. 통계청의 ‘도ㆍ소매업, 서비스업 조사 잠정결과’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치킨 프랜차이즈 가맹점 수는 2만4654개로 전년보다 2.8% 줄었다. 2013년(2만2529개) 이후 꾸준히 늘어나다가 처음으로 증가세가 꺾였다. 종사자 수도 6만536명으로 5년 만에 처음으로 전년 대비 3.7% 감소했다. 한국외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외식업 프랜차이즈 가맹점은 약 10만6003개(2016년 기준)이며, 그 중 치킨이 2만4453개로 약 23%를 차지할 정도로 자영업 비중이 높다. 치킨집 불황이 자영업 전반의 위기와 맞물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서울 은평구에서 홀이 있는 치킨집을 운영하던 이모 씨(37)는 작년 말 결국 가게를 접었다. 30평 남짓한 공간에 저가형 프랜차이즈로 문을 연 지 1년여 만이었다. 운영 비용은 임대료ㆍ관리비 등을 합쳐 약 370만원, 인건비가 약 360만원으로 한 달 730만원에 달했다. 각종 부자재와 인건비 상승, 임대료 부담과 매출 감소를 견디다 못해 백기를 던졌다는 게 그의 말이다.

이 씨는 “프랜차이즈는 대략 매출의 30%를 점주가 가져가는데 하루 80~90마리는 팔면서 한 달 내내 일해야 겨우 이윤이 남는 수준”이라면서도 “고정비가 답답해도 장사만 잘됐으면 (가게를) 접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치킨집의 가맹점당 매출액은 주요 비교 대상 업종 가운데서도 최하위권이다. 2017년 기준, 연평균 1억4950만원으로 편의점 연 매출액(4억8730만원)의 3분의 1에도 못미친다. 치킨 업종의 3년 이내 폐업률은 38%에 달한다.

주 52시간 근무제로 저녁 술자리 모임이 많이 사라지며 단체 손님들의 발길이 끊긴 탓이 크다. 한 치킨전문점의 매니저인 김모 씨(29)는 “하루에 평균 3~4팀 정도는 와야 하는데 이젠 한 팀도 어렵다”며 “당장 지난달부터도 연말 회식 예약이 없었다”고 고개를 저었다.

▶가파른 최저임금인상, 아르바이트생 줄이며 근근 버텨=장사라도 계속하려면 아르바이트생을 줄이고 한 테이블이라도 손님을 더 받는 것 외에 선택지가 별로 없다. 그나마 사정이 낫다는 대형 치킨 프랜차이즈 점주도 올해 들어 아르바이트생을 절반 가까이 줄였다고 했다. 많을 땐 6~7명도 있지만 지금은 4명 안팎에 불과하다. 올해 시간당 최저임금은 2년 만에 29%가 오른 8350원. 명동에서 치킨점을 운영하는 박모 씨(43)는 “200~300원도 아니고 작년에 이어 올해도 800원 이상 뛰는 시급을 어떻게 감당하라는 건지 모르겠다”며 “그게 뭐 얼마나 되냐고 할 수 있지만 남은 아르바이트생마저 더 줄여야 할지 고민인 가게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바로 옆에서 한참을 서 있던 다른 가게 점주 김 씨는 외국인 무리가 가게 앞을 지나자 “어서오세요. 치킨 히어, 히어!”라고 외치며 문 밖을 뛰쳐나갔다. 잠시 망설이던 이들이 가게로 들자 그는 반색을 했다.

“가게를 내놓은 곳도 많지만 잘 나가지 않아요. 그만큼 힘들다고 봐야죠. 자리 잡느라 3년 간 엄청 고생했는데 정말 여기서 오래 하고 싶어요.”

이유정 기자/kul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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