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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음주 운전 의심된다며 붙잡는 경찰, 불법체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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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김용우의 갑을전쟁(4)
중앙일보

신년 모임이 많은 연초에는 음주운전도 기승을 부린다. 최근 윤창호 씨 사건을 계기로 경각심이 한층 높아졌지만 음주운전으로 적발됐다는 이야기는 여전히 들려온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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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모임이 많은 연초입니다. 음주운전도 기승을 부리는 때이지요. 최근 윤창호 씨 사건을 계기로 경각심이 한층 높아졌지만, 음주운전으로 적발됐다는 이야기는 여전히 들려옵니다.

음주 단속 현장의 경찰관과 운전자 간 실랑이는 흔히 연출되는 풍경이지요. 불시에 도로를 막고 일률적으로 단속하는 투망식 관행에 강요된 협조를 하는 게 맞느냐 하는 지적도 간혹 나옵니다. 그런데 외관이나 태도 등을 볼 때 충분히 음주한 것으로 의심되는 운전자를 잠시 붙잡아뒀다며 경찰이 과잉체포를 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떨까요.

‘음주운전 의심’운전자, 음주측정 거부하면 처벌
사례를 보겠습니다. A는 3년 전 새벽에 술을 마신 뒤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U턴하던 중 다른 차량과 충돌할 뻔했지요. 상대 차량 운전자인 B는 화가 나 창문을 열고 A에게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A도 맞받아쳤지요. 수 분간 서로 얼굴을 붉히다 결국 B가 A의 차량을 피해 갔습니다. 그런데 A가 B를 뒤따라 가며 보복운전을 하면서 또다시 시비가 붙었습니다. A는 급기야 B가 음주운전을 했다며 경찰에 허위신고까지 했지요.

출동한 경찰관은 A의 신고에 따라 B에게 음주감지기 시험을 했습니다. 참고로 경찰이 단속 때 ‘후~’ 하고 바람을 불라며 손에 든 도구가 음주감지기입니다. 술을 마셨는지 아닌지만을 테스트하는 일차적 검사인 것이지요. 그런데 B에게서 반응이 나타나지 않자 이번에는 A에게 음주감지기 시험을 했고, 알코올이 감지됐습니다.

경찰이 정확한 혈중알코올농도를 재려고 음주측정기가 있는 인근 지구대로 데려가려 하자 A는 자신의 무고함을 밝히겠다며 스스로 순찰자에 탑승했지요. 그런데 갑자기 A가 집에 가겠다며 하차를 요구합니다.

결국 경찰은 차를 세운 뒤 인근 지구대로 연락해 음주측정기를 가져오게 했고, 그러는 사이 현장을 벗어나려는 A를 5분가량 제지했습니다. 음주측정기가 도착해 10분 간격으로 4차례 측정을 요구하자 A는 이를 거부했고, 경찰은 음주측정거부로 A를 현행범으로 체포했습니다. 그런데 1심과 2심에서 A의 음주측정거부 혐의에 ‘무죄’가 나왔습니다. 어찌 된 일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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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8조의2(벌칙). 음주운전 의심 운전자가 음주측정을 거부하면 처벌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A의 음주측정거부 혐의에 '무죄'가 나왔다. [제작 유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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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는 자신이 음주측정을 하기도 전에 ‘불법체포’를 당했다며 항변했습니다. 음주감지기에 의한 반응만으로는 붙잡힐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실제 우리 도로교통법에는 혈중알코올농도가 0.05% 이상이면 운전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는데요. 술에 취한 상태의 객관적인 기준인 셈이지요.

음주감지기는 혈중알코올농도 0.02%인 상태에서부터 반응합니다. 다시 말해 음주감지기 시험에서 반응이 나왔다고 반드시 혈중알코올농도가 0.05% 이상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겁니다.

술을 마신 것으로 처벌을 받게 되는 ‘취한 상태’의 범주에 해당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경찰이 과잉 대응을 한 것이라고 A는 주장했습니다. 오히려 경찰관의 ‘갑질’에 피해를 봤다는 식으로 말이지요.

일방적으로 음주측정을 요구받은 것이므로 불응해도 음주측정거부죄가 될 수 없다는 게 A의 생각이었습니다. 반대로 술 냄새가 나고 행동이 의심스러운 데다 음주감지 반응까지 나온 상황에서 A를 그냥 보내주면 오히려 직무 유기라 판단한 경찰 입장에선 황당할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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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도로에서 경찰관들이 불시에 음주운전 단속을 실시하고 있는 모습. 1,2심에선 적합한 체포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봤지만 대법원은 측정 요구를 피해 현장을 이탈해 도주한다면 음주측정거부죄가 성립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김성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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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는 A에게 보호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라 경찰이 잡아뒀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1, 2심에선 음주 측정을 목적으로 A를 붙잡아 둔 것이고, 적법한 체포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봤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의 판단은 또 달랐습니다.

무죄를 선고한 하급심 판결을 다시 재판하라고 뒤집은 겁니다. A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차를 운전했다고 인정할 만한 이유가 타당한데 측정 요구를 피해 현장을 이탈해 도주한다면, 그 즉시 음주측정거부죄가 성립된다는 취지이지요. (대법원 2018. 12. 13. 선고 2017도12949).

참고로 대법원은 앞서 음주감지기 시험에 응하지 않는 경우도 음주측정거부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결한 적 있습니다. 이 사건은 음주감지기에 반응이 나왔을 뿐 아니라 A의 외관·태도·운전행태 등을 종합적으로 봤을 때 그가 술에 취한 상태라고 보기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입니다. 술을 먹고 음주운전까지 한 A가 오히려 ‘배 째라’고 나온 격이란 것이지요.

혈중알코올농도 최저치 기준 0.03%로 강화돼
중앙일보

음주운전의 심각한 피해 때문에 제재 및 처벌 강화 필요성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 올해 6월부터는 처벌받는 혈중알코올농도의 최저치가 0.03%로 내려간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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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의 심각한 피해 때문에 제재 및 처벌 강화 필요성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습니다. 올해 6월이면 처벌받는 혈중알코올농도의 최저치가 0.03%로 낮아집니다. 마찬가지로 음주측정거부죄의 술에 취한 상태 기준도 0.03%로 내려가지요. 그래서 음주 감지기에서 반응이 나오면 그 즉시 술에 취한 상태로 인정될 가능성이 큽니다. 반응이 나타났는데 음주측정을 거부한다면 거의 예외 없이 현행범으로 체포될 수 있다는 뜻이지요.

처벌 상한도 징역 3년 이하에서 5년 이하로, 벌금 1000만원 이하에서 2000만원 이하로 더 무겁게 매겨집니다. 특히 지난달 18일부터 윤창호 법(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술을 마시고 운전하다 사망 사고를 낼 경우 최대 무기징역형에 처할 수 있습니다.

보통 70kg 남성 기준으로 소주 한잔을 마시면 혈중알코올농도가 0.03% 이상 나온다고 하니 앞으로는 정말 한잔이라도 입에 대면 운전대를 절대 잡지 말아야 합니다.

한때 유명 연예인이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안 했다”라고 발언해 뭇매를 맞았지요. 운전대는 잡았지만, 음주운전으로 처벌되는 수준까지 마신 건 아니다는 의미로 얘기한 걸 텐데요. 앞으로는 이런 변명으로 어물쩍 넘기지 못할 겁니다.

게다가 6월부터는 음주운전으로 두 차례 이상 적발되면 가중 처벌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전에는 ‘삼진아웃제’였는데 이제는 ‘투스트라이크 아웃’으로 바뀌는 것이지요. 이는 판결이 아닌 적발 기준이기 때문에 ‘앞의 음주운전 건은 재판 중이라 유죄가 확정된 게 아니다. 단속 사실만으로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게 더는 통하지 않을 거란 얘깁니다.

김용우 법무법인(유한) 바른 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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