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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장세정 논설위원이 간다]유튜브는 양날의 칼…민주주의 촉매? 살상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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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정 논설위원이 간다]

전직 사무관의 유튜브 동영상 폭로

누구나 동영상 올려 문제 제기 가능

홍준표 전 대표 홍카콜가 인기 끌자

유시민 이사장 알릴레오로 맞대응

공중파TV 편파방송에 실망한 보수

유튜브에서 하고 싶은 주장 쏟아내

백화제방·백가쟁명 유튜브 민주주의

"표현의 자유, 쌍방향 소통확산" 불구

과도한 편식과 여론 쏠림현상 우려

정치 희화화, 대의정치 무시될수도

[알릴레오와 홍카콜라가 불붙인 ‘유튜브 혈전’ 좌우충돌]
한국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신재민(34)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폭로는 신문이나 방송 등 기존 미디어의 특종 보도로 시작되지 않았다. 청와대가 민간기업인 KT&G 사장 인사 개입과 적자 국채 발생을 강요했다는 신씨의 폭로는 그가 개인적으로 개설해 지난달 29일 올린 유튜브 채널 영상 한 편이 촉발했다. 과거에 이문옥·윤석양·이지문씨 등이 정권의 비리를 폭로할 때의 비장미는 없었고 경쾌하고 담담하게 자기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불과 12분 33초 분량의 영상이 일으킨 파장은 엄청났다. 급기야 야당 의원의 인신 공격성 발언 와중에 신씨 자살 기도 소동까지 벌어지면서 후폭풍이 거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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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내가 기획재정부를 나온 이유』라는 제목의 폭로 동영상을 유튜브에 두 차례 올려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유튜브 1인 방송' 시대를 절감하게 했다. [유튜브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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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개인이 제작해 인터넷에 올린 유튜브 영상 한 편이 이제는 세상을 들었다 놨다 하는 시대가 됐다. 이미 유튜브는 뷰티·게임·음식·키즈·음악·엔터테인먼트·실버 등 다양한 분야에서 1인 크리에이터를 배출하면서 시대의 트렌드를 긍정적으로 이끌고 있다. 그런데 최근 유명 정치인들이 가세하면서 유튜브 공간이 과열되고 있다. '백가쟁명(百家爭鳴) 유튜브 민주주의(Youtube Democracy)'라는 긍정적 평가도 있지만, 편 가르기 심화와 여론 편식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유튜브의 위력을 일찌감치 감지한 유력 정치인들이 요즘 여의도가 아닌 유튜브 방송에 하나씩 뛰어들고 있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달 18일 유튜브 채널 ‘TV홍카콜라’를 개국해 선풍적 반응을 얻었다. 유튜브 여론 시장은 이미 '고성국TV' '조갑제TV' 등 보수우파가 선점해왔다. 이에 위기를 느낀 듯 진보좌파가 뒤늦게 도전장을 냈다. 가장 최근 진보좌파 진영에서 대항마로 나선 사람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다. 그는 지난달 22일 "(보수우파의) 혹세무민 보도 일주일에 한 번 정리하겠다"며 사실상 선전포고를 했다. 이 발언 이후 실시한 중앙일보 여론조사(1월 2일 보도)에서 유 이사장은 여권의 차기 대선 주자 2위로 급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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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5일부터 유튜브에 올린 '유시민의 알릴레오'의 장면. [연합뉴스]


유 이사장은 지난 5일 0시에 팟캐스트 영상 '유시민의 알릴레오'를 유튜브에 올린 데 이어 8일에는 가짜뉴스를 바로잡겠다면서 ‘유시민의 고칠레오’를 추가로 공개할 예정이다. 알릴레오 방송에 때맞춰 유 이사장이 유튜브 활동에 나선 배경을 전화로 들어봤다.

-보수우파가 장악한 유튜브 시장을 본격 정복하기 위해 나섰다고 보면 되나.

"허허. (22일 강연 중에) 농담한 것인데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아 달라."
-이미 보수우파가 유튜브를 선점하다시피 했다.

"나는 그런 (좌우 경쟁) 문제는 관심이 없다. JTBC '썰전'에서 돈 받고 하던 일을 돈 안 받고 하는 것밖에 없다. "
-거대 미디어를 따돌리고 유튜브 1인 방송이 인기다.

"솔직히 유튜브 시장은 잘 모른다. 우리는 노무현재단에서 제작해 내보내는 방송이다. 수많은 팟캐스트 중 하나를 유튜브에 올리는 것이다. "
-유튜브가 보수우파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보나.

"언론에서 (진영 논리로) 잘못 생각하는 것 같다. (알릴레오는) 누구를 욕하고 비난하고 공격하고 선전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 정책에 관해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 초점을 두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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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자유한국당 전 대표가 TV홍카콜라 제작 사무실에서 유튜브 방송 동기를 말하고 있다. 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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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릴레오 첫 방송에 맞춰 홍준표 전 대표를 TV홍카콜라 제작 사무실에서 직접 만났다. 그는 유 이사장의 유튜브 방송을 혹평했다.

"(유 이사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홍보처장밖에 안 된다. 그의 유튜브 방송은 좌파 정부의 반상회에 불과하다. 아무래도 정권 호위 방송을 해야 할 텐데 시청자가 계속 보겠나. (정권을 비판하는 야당의 '공격수'가 주도하는) 정치판에서 '수비수'는 절대로 뜰 수 없다. 문재인 정부가 저지른 문제를 유 이사장이 주워 담겠다는데 그는 문재인의 괴벨스(히틀러의 선전장관) 같다. "

홍 전 대표가 혹평했지만 유 이사장의 유튜브 방송은 일단 출발이 쾌조를 보였다. 알릴레오 구독자는 7일 기준 50만명(기존 노무현재단 9만명 포함)을 넘어 홍카콜라(22만명)를 크게 앞질렀다. 이에 대해 홍 전 대표 측 관계자는 "(유 이사장이) 팟캐스트를 제작해 유튜브에 올렸던데 우리말도 모르는 아랍권에서 조회가 많다니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기자에게 자신을 '1인 미디어 유튜브 방송사 회장'이라고 소개한 홍 전 대표는 유 이사장을 겨냥해 "조선중앙TV 같은 좌파 유튜브는 한 달 내로 소재가 고갈될 거다. 조회 수가 점점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 전 대표는 "내가 만든 유튜브 방송의 평균 조회 수가 35만이라서 KBS(37만)·MBC(18만)를 이미 넘어섰다. 누적 조회 수는 816만을 넘었다. 수천억 들인 공중파 방송들이 문재인 정부를 홍보하지만, 전파력은 나의 1인 유튜브 방송이 훨씬 크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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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자유한국당 전 대표는 자신을 유튜브 1인 미디어인 TV홍카콜라 회장이라고 소개했다. 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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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는 가짜뉴스가 많다는 비판을 받는다.

"유튜브가 검정 안 됐다고 하는데, 나는 사건이 터진 직후에 방송하지 않고 4~5일 냉정하게 지켜본 뒤에 차분히 분석해 방송한다. 사회가 흥분했을 때 같이 설치면 휩쓸리게 된다."
-여의도 정치인이 유튜브 방송을 시작한 계기는.

"기존 공중파 방송들은 좌파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서 국민과 직접 소통하기 위해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다. 한국사회가 무너지니 바로잡으려는 거다. 좌파 광풍 시대에 '네이션 리빌딩(Nation rebuilding·재건국) 운동'을 하려는 거다. 6월에 지방선거 끝나고 미국 가기 전에 이미 유튜브를 준비했다. 1인 미디어 시대가 오고 있다고 봤다."
-유튜브 방송 전략이 있다면.

"작가도 시나리오도 없다. 정리된 내 생각을 압축된 나의 언어로 표현한다. 5분 이내로 짧게 한다. 내 말은 편집도 안 한다. 복잡한 시대에 강의하듯 길고 어려우면 안 본다. 거대 언론도 이제는 함부로 사건을 단정 짓고 결론 내리고 국민을 끌고 가는 시대가 아니다. 다양한 의견이 분출하고 그 정보를 토대로 국민이 판단하게 해줘야 한다."
유시민의 알릴레오와 홍준표의 홍카콜라가 한 판 혈전을 벌이면서 가뜩이나 전통 미디어들을 잠식해온 유튜브 방송에 힘이 더 실리고 있다. 이를 둘러싼 논란도 가열될 것 같다. 다양한 각도에서 세상을 향해 자유롭게 화두를 던지는 유튜버들의 경쟁이 나쁘지 않겠지만, 자칫 상대를 적으로 배척하고 진영 논리만 강화되면 사회·정치적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 여론의 쏠림을 초래하고 여의도 대의정치를 희화할 거란 지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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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시사 방송인 '고성국TV'를 진행하는 방송인 고성국씨는 "공중파는 좌파에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유튜브가 쌍방향 소통을 구현한 진정한 민주주의 매체"라고 평가했다. 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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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향력을 급속도로 키우는 유튜브 방송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해서 KBS2TV '추적 60분' 등 30년 방송 경험을 가진 고성국 박사가 진행하는 유튜브 방송 고성국TV 제작 현장을 지난 1일 찾아가 봤다. 불과 3~4평 공간에서 우파 진영의 대선 주자 7명을 상대로 SWOT 분석을 생방송으로 진행했다. 고 박사는 수시로 올라오는 댓글을 봐가면서 쌍방향 방송을 박진감 넘치게 진행했다.

그는 "요즘 KBS는 물론이고 심지어 TV조선에도 자유 우파의 목소리가 제대로 안 나온다"면서 "유튜브 방송은 쌍방향 소통을 실질적으로 구현한 가장 민주적인 매체"라고 평가했다. 유시민 이사장의 유튜브 도전장에 대해 "좌파는 문재인 정부 들어 공중파 방송을 장악하면서 '문화 권력'이 됐지만, 우파는 밀리고 밀려 이제 유튜브밖에 발언할 공간이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손영준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기존 방송 매체들이 제 기능을 못하면서 실망한 시청자들이 유튜브 방송을 대체재로 선택한 것은 사실"이라고 분석했다.

보수우파 유튜버 중에는 풀뿌리 소신파들도 적지 않다. 유튜브 방송 '서초동 법원 이야기'를 제작하는 염순태(59)씨가 그런 예다. 지난 2일 서울 서초동 법원 앞마당에서 만난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국정농단 재판 소식을 집중적으로 전하는 특화된 유튜버다. 그는 "구독자가 비록 4300명뿐이지만 주 5~6회 시청자들과 소통한다. 누군가 내 목소리를 경청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구글 ID가 있다면 누구나 스마트폰에 유튜브 플랫폼 앱(카메라 파이 라이브)을 다운받아서 새로운 소식을 유튜브 영상으로 제작해 전 세계로 자신의 주장을 발신할 수 있다"며 "한번 도전해보라"고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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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언론이 방송하지 않는 탄핵 관련 재판을 특화해 보도해온 '서초동 법원 이야기'의 유튜버 염순태(59)씨는 "수천명의 시청자에게라도 숨겨진 진실을 전할 때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낀다"고 말했다. 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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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을 벗어나면 유튜브의 순기능은 많다. 유튜버들은 최신 유행의 선도자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구독자가 62만명(누적 조회 수 8700만회)인 유튜브 채널 '코리안 그랜마'를 운영하는 박막례(73) 할머니가 좋은 사례다. 촬영·편집을 맡은 손녀 김유라(29)씨는 "시장에서 파는 1000원짜리 립스틱으로 할머니가 화장하는 영상을 찍어 올리면 젊은 친구들이 '박막례 할머니 립스틱'이라며 많이 사는 것을 보고 유튜브의 영향력을 실감한다"며 "유튜브는 소소한 일상을 살던 우리 할머니의 표현대로 '70대 노인의 삶이 빈대떡 뒤집어지듯'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례"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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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 유튜버 박막례(73) 할머니는 스위스에서 패러글라이딩에 도전해 화제가 됐다. [사진 박막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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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구독자가 160만명을 넘은 뷰티 크리에이터 씬님(본명 박수혜·29)은 동영상에 영어 자막을 붙여 지구촌 곳곳에 팬을 확보한 경우다. 그는 "내가 처음 시작한 뷰티 유튜버가 새로운 직업이 됐다. 지난 5년간 뷰티 유튜버가 많이 늘어난 것을 보면서 내가 새로운 직업을 하나 만들었다는 자부심이 든다"고 말했다.

CJ ENM은 2013년부터 유튜브 크리에이터들과 제휴해 마케팅과 저작권 관리 등을 지원해오고 있다. CJ ENM 다이아TV 오진세 국장은 유튜브 현상에 대해 "과거에는 영상의 제작 영역과 유통 영역이 명확히 분리됐는데 이제는 정보통신기술(ICT) 덕분에 보는 사람이 만들 수도 있고 만든 사람이 볼 수도 있게 됐다"며 "방송 제작의 기득권 영역이 무너지고 진정한 백화제방(百花齊放)·백가쟁명(百家爭鳴)이 가능한 쌍방향 소통 시대가 활짝 열렸다"고 말했다.

김은미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인터넷 카페는 글발이 되는 블로거들의 매체인 데 비해 유튜브는 눈으로 보는 영상이라 식자층이 아니라도 거부감이 없어 사용자 저변을 획기적으로 넓혔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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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 유튜버 씬님(박수혜)은 "뷰티 유튜버라는 직업을 내가 만들어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사진 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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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는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활력소와 민주주의를 확산하는 촉매가 될 수도 있고, 공동체를 갈라놓는 살상 무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칼을 셰프가 들면 맛난 요리가 만들어질 테고, 강도가 들면 사람을 다치게 할 것이다. 유튜브는 우리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극명하게 갈린다. 유튜브라는 문명의 이기(利器)를 선용(善用)하느냐는 결국 사람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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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정 논설위원이 간다 장세정의 사사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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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이정원 인턴기자가 이 기사의 디지털 영상 편집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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