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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게임의 결말이 궁금한 미로 탐험, ‘블랙 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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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미국 드라마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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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미국, 젊은 프로그래머 스테펀 버틀러(피온 화이트헤드)는 밴더스내치라는 게임을 개발하고 있다. 광기의 천재 소설가 제롬 에프 데이비스의 인터랙티브 북에 기반한 밴더스내치는 사용자들이 전개를 직접 선택하는 게임이다. 유명 게임사 터커소프트에 밴더스내치의 시험판을 가져간 버틀러는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기뻐한다. 하지만 버틀러는 완성판 작업 중 자꾸 누군가가 자신을 감시하고 조종하고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대체 이유가 뭘까.

지난 12월28일, 넷플릭스가 <블랙 미러> 시리즈의 특별판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이하 <밴더스내치>)를 깜짝 공개했다. 2011년 영국 채널4가 처음 방영해 큰 반향을 일으킨 뒤 시즌3부터 넷플릭스로 옮겨간 <블랙 미러>는 디지털 시대의 그늘을 혁신적인 상상력으로 풀어내면서 에스에프 장르 팬을 넘어 폭넓은 대중적 사랑을 받는 시리즈다. 이번에 선보인 특별판 <밴더스내치>는 내용뿐 아니라 형식 면에서도 실험적 시도를 가해 더 열광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인터랙티브라는 형식 자체가 새로워서라기보다 이야기와 유기적으로 결합하면서 시청의 즐거움을 극대화하기 때문이다.

제작진에 따르면 <밴더스내치>의 엔딩은 대략 다섯가지로 정리된다. ‘버틀러가 밴더스내치 게임을 어떻게 완성할까’를 핵심 줄기로 하면서, 그의 가족사에 얽힌 트라우마, 음모론 등이 작용한 몇개의 결말이 이미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이 외에도 각자 찾아낸 새로운 단서들과 엔딩을 공유하면서 수많은 해석을 쏟아내는 중이다. 흔히 드라마는 집에서 편한 자세로 간식을 먹으며 즐기는 것이라 여겼던 시청 방식은 이를 통해 능동적인 체험의 영역으로 끌어올려진다. 때론 드라마 중간에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하지만, 기꺼이 탐험하고 싶은 매력적인 미로다. 그 설계자가, ‘집에서 넷플릭스 할까?’라는 말처럼 편안한 콘텐츠 감상의 대명사와도 같은 넷플릭스라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무수하게 갈라지는 결말에도 불구하고 <밴더스내치>의 궁극적인 결론은 <블랙 미러> 시리즈를 관통하는 주제와 맞아떨어진다. 밴더스내치 게임에 영감을 제공한 제롬 에프 데이비스는 운명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믿었고, 버틀러의 우상이자 천재 게임개발자인 콜린 리트먼(윌 폴터)도 “우리 세계와 연결된 외부의 영혼이 우리의 행동을 결정한다”고 주장한다. 누군가가 자신을 조종하고 있다는 버틀러의 말을 비롯해 작품 안에서 반복적으로 얘기되는 ‘외부의 힘’은 언뜻 이 작품의 엔딩을 직접 선택하는 시청자들을 겨냥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시청자들도 역시 미리 설계된 이야기를 따라가고 있다는 사실을 환기해야 한다. 우리도 그들처럼 <블랙 미러> 세계관 속의 폐쇄 공간을 떠도는 존재들일 뿐이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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