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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삭막한 포로수용소가 시끌벅쩍 댄스 배틀로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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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한동원의 영화감별사

<스윙키즈>

수용소에 펼쳐진 ‘만화적 상상력'

남북한인, 중공군, 위안부, 미군

말은 안 통해도 댄스로 소통

영화 3분의 1이 화려한 춤 장면

춤의 시각과 음악의 청각 돋보여

생략된 춤 천재들의 성장 과정

춤 자체의 극적 즐거움은 반감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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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4년, 적잖은 풋풋함과 유쾌함을 안겼던 지방 고교생들의 재즈 빅밴드 만들기 분투기 <스윙걸즈>와 제목과 한 글자만 다른 제목을 채택함으로써 음악-재즈영화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십상인 <스윙키즈>는, 일단 분류하자면 춤-탭댄스영화다.

사실 <스윙키즈>에는 스윙과 키즈 빼고는 웬만한 건 다 있다. 아 물론, 스윙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영화 막판의 피날레 탭댄스 공연의 배경음악은 빅밴드 스윙의 거의 애국가라 할 베니 굿맨 밴드의 ‘싱, 싱, 싱’(Sing, Sing, Sing)이다.(이 곡은 <스윙걸즈>의 피날레 곡이기도 했다) 점프 블루스의 제왕 루이스 조던의 ‘칼도니아’ 또한 등장해주고 있다.

하지만 그런 스윙 곡들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스윙키즈>의 춤 배경곡들은 데이비드 보위의 ‘모던 러브’, 정수라의 ‘환희’, 모타운 전성시대의 아르앤비(R&B), 1980년대풍 힙합, 심지어 비틀스까지 아우르는 화려하고도 다채로운 면면을 보여준다.

요컨대 <스윙키즈>에서의 스윙 함유량은 게맛살의 게살 함유량을 크게 넘지 않는데, 뭐 제목에 스윙이 함유되었다 하여 스윙 음악만을 사용해야 한다는 법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더구나 이 영화가 스윙곡만을 고집했다면 상당한 단조로움을 감수해야 했을 테고, 동시에 대부분의 한국 관객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곡들로만 플레이리스트를 채워야 하는 문제에 봉착했을 것이다. <스윙키즈>는 이런 문제를 피하면서, 춤의 시각적인 이점과 음악의 청각적인 이점을 동시에 취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다국적 댄스 천재들의 열정

하지만 아무리 다채롭더라도 춤과 음악만으로는 장장 2시간13분짜리 상업영화 한편을 아우르기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짐작 가능한 사실인바, <스윙키즈>는 그것을 얹어놓는 이야기 골격으로서 한국전쟁 당시의 거제도 포로수용소라는 역사적 공간을 채택한다.

이는 탭댄스와는 극적으로 튐으로써 주목성과 신선미를 높이는 설정이라 하겠는데, 이런 공간 설정은 이곳 전체를 통제하는 미군을 기본으로 북한 사람(인민군), 남한 사람(민간인), 중공군, 그리고 수용소 출입 미군 위안부까지, 4개 집단의 사람들이 모이고 만나고 부딪치고 얽힐 알리바이를 제공한다.

그곳에서 탭댄스에 능한 미군 하사 ‘잭슨’(재러드 그라임스)은 출세지향적인 신임 수용소장으로부터 탭댄스 공연팀을 만들라는 명령을 받는데, 매우 우연히도 4인조 탭댄스 팀 ‘스윙키즈’는 위 네 집단 출신의 사람 한명씩으로 골고루 구성된다. 또한 더욱 우연히도, 이 사람들 모두는 출신과 성별에 관계없이 전원 댄스에 능한 춤 천재들이다. 인민군 포로이자 주인공인 ‘로기수’(도경수)는 러시아춤과 특공무술이 짬뽕으로 어우러지는 ‘인민군춤’, 남한 민간인인 ‘강병삼’(오정세)은 스스로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능한 상모 돌리기, 살집 풍부한 댄스 요정인 중공군 포로 ‘샤오팡’(김민호)은 브레이크댄스로 추정되는 현대식 춤, 그리고 이 또한 놀랍게도 어쩌다 보니 4개 국어에 능통한 미군 위안부 ‘양판래’(박혜수)는 춤뿐이 아닌 노래에도 능수능란하다.

하여 이 네명의 춤 천재들은 매우 간소한 입문과정(‘이 세상에는 탭댄스라는 것이 있고, 그건 대략 이런 거다’ 정도의 잭슨의 설명 및 시범)을 거친 뒤 곧장 유통가능한 수준의 춤을 선보이기 시작한다. 심지어 주인공 로기수는 댄스팀이 결성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팀의 매니저이자 코치인 잭슨과 댄스 배틀을 벌일 정도의 춤 실력을 보인다.(춤 장면들을 통해 엿보이는 배우들과 안무·음악 팀의 노력은 가히 놀랍다.)

더구나 이들은 춤을 단순한 춤이 아닌, 제2의 언어로서 구사하는 놀라운 경지까지 보여준다. 남한 사람 강병삼은 중공군 포로 샤오팡과 철책을 사이에 두고 춤 동작만으로 대화를 나누는가 하면(내용은 자막 처리), 스윙키즈 멤버들은 의견 충돌이 생길 때 말보다는 춤으로 싸움을 벌이는 쪽을 더 편하게 여긴다.

이뿐인가. 춤 언어에 능한 것은 이 댄스팀 멤버들뿐만이 아니어서, 이들과 흑인인 잭슨을 싸잡아서 미워한 나머지 이들에게 린치를 가하는 백인우월 인종주의자 미군들마저도 이들과 댄스를 통한 배틀을 벌인다. 더구나 어찌된 일인지, 수용소 사람들의 관심사는 어떤 식으로든 댄스팀에 관한 이야기로 수렴되고, 그들의 이야기는 온통 춤에 대한 이야기뿐이다.

물론 이것은 <스윙걸즈>가 그러했듯, <스윙키즈>가 만화적 상상력과 연출을 그 기반으로 삼고 있기에 가능한 설정이다. 아닌 게 아니라 영화에서는 <스윙걸즈>의 멧돼지 습격 장면이나 신호등 알람음의 스윙재즈화 장면처럼 만화적인 연출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세계는 한국인과 중국인이 각자 자기 말로만 해도 저절로 의사소통이 되는 세계이고, 북한의 혁명의식 고취용 선전그림 앞에서 인민군이 데이비드 보위의 ‘모던 러브’에 맞춰 춤을 추는 세계다. 이곳에서는 발이 안 보일 만큼의 빠른 코사크 댄스도, 헬리콥터 로터를 능가하는 고속 상모 돌리기도 모두 현실이다. 왜냐. 원래 그런 세계이므로.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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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배틀 기교에 가려진 영화의 울림

그런데 그러는 동안 한가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과정과 즐거움이다.

앞서 말했듯, 스윙키즈 멤버들은 단지 탭댄스라는 특정 장르의 춤을 못 출 뿐, 오디션부터 춤에 타고난 자질을 가지고 있는 춤 천재들이다. 하여 그들은 무려 영화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하는 춤 장면들을 곧장 매끄럽게 소화해낼 능력을 처음부터 갖추고 들어간다. 하지만 덕분에, 문외한이 좌충우돌하며 춤을 익혀가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난관들, 그리고 그것을 점차 조금씩 극복해나가면서 얻게 되는 기쁨 같은 정서가 끼어들 여지는 처음부터 사라지게 된다.

간단한 예로 <빌리 엘리어트>를 떠올려보자. 만일 빌리 엘리어트가 처음부터 피루엣에 능하고, 아라베스크에서 조금도 흔들리지 않으며, 사람 키에 필적하는 도약 능력을 보이는 완성된(!) 춤 천재였다면, 백조가 되어 무대 한가운데로 도약하는 마지막 모습에 그리 큰 무게가 실릴 수 있었겠는가.

<스윙키즈>의 ‘과정 패스’는 이런 식으로 영화가 얼마든지 파고들고, 또 보여줄 수 있었던 춤의 즐거움에 대한 패스로 이어진다. <스윙키즈>의 춤은 기본적으로 모두 배틀이다. 본토박이 탭댄스 고수인 스승과 자존심만 센 춤 천재 제자 사이의 배틀이든, 댄스팀을 야심 실현을 위한 일회용품으로 여기는 관료에 대항해 반전평화 메시지를 알리려는 배틀이든, 이 영화의 거의 모든 춤은 배틀(!)의 형태로 제시된다. 그리고 이 배틀은 모든 배틀이 그렇듯이 승리라는 목적지를 전제한다. 결국 승리는 이 영화의 춤의 존재 이유다. 춤 자체의 즐거움이 아니라.

물론 영화는 로기수의 꿈 장면이나, 로기수와 양판래의 동시교차 댄스 장면 등에서 춤의 즐거움을 묘사하고자 하는 의도를 내비친다. 하지만 그 역시 화려한 기교에 가려 어떤 울림을 남기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한다. 이러한 과정과 즐거움의 생략, 그리고 기교의 치우침이 다국적 댄스 팀 멤버들 간의 감정교감에서의 설득력 공백으로 이어지는 것은 물론이다.

영화는 이에 대한 아드레날린 처방인 듯, 중반 이후 거제도 포로수용소 내 폭동과 반공과 공산포로의 충돌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급히 끌어들인다. 그리고 그 투약의 강도는 급한 만큼 강하다. 하지만 효과는 못내 겉돈다.

사실 그런 인위적인 부양은 처음부터 필요치 않았다. 어딘가는 조금씩 모자라는, 어쩌면 우리 모두를 닮은 인물들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예술적으로나 인간적으로 조금은 성장해 있는 모습을 보는 것, 그 기적 같은 순간이 주는 응축된 뿌듯함이야말로 우리가 이런 영화에 대해 거는 가장 큰 기대일 것이다. <스윙키즈>는 그 가능성을 처음부터 버리고 들어갔고, 그 결과는 결국 화려하지만 감흥 없는 기예의 반복과, 걸개그림 선전문구만큼이나 음량은 크지만 플래카드 정치구호 이상의 설득력은 가지지 못하는 반전·평화 메시지의 나열이다.(대사로 예를 들면 “자본주의? 공산주의? F×××ing 이데올로기…”라든가, “사상에 미쳐서리 서로 죽이는 거, 그거이 진짜 미친 거이다”라든가.)

이것이 이 영화가 후반에 다소 뜬금없기까지 한 돌출 설정을 도입하는 무리수를 두면서 강조 또 강조하려 했던 마지막 장면의 메시지가 자연스러운 울림으로 다가오지 못하고, 처음부터 결정돼 있던 목표지점 경착륙으로 느껴지는 이유다. 또 두시간 넘도록 이어지는 화려한 춤과 음악, 그리고 역사적 사건과 스펙터클에도 스윙 한번 되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한동원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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