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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여성들 놀이판 직접 만드는 ‘과학계 송은이’ 기대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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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여성 과학 기획자’ 이진주·이미영·최진영씨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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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다큐멘터리 <코스모스>의 대본과 책을, 부인 앤 드루얀이 함께 썼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올해 55년 만에 여성 노벨물리학상 수상자가 탄생했지만, 120년 가까운 역사에 여성 수상자는 단 3명 뿐이다. 과학은 으레 ‘남성의 영역’으로 여겨져온 탓이다. 당장 국내 인력 비율만 봐도 그렇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의 발표를 보면, 여성 과학기술인력은 전체의 19.3%(2016년 기준)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이공계 대학과 공공·민간연구기관 관리직으로 한정하면 여성 비율은 8.6%로 떨어진다.

이진주 ‘걸스로봇’ 대표, 이미영 과학전문서점 ‘갈다’ 매니저, 최진영 ‘과학과사람들’ 팀장처럼 과학과 대중을 연결하는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활동하는 여성들의 행보가 반가운 건, 이처럼 오랫동안 남성중심적인 시각으로 굳어진 과학의 지층에 균열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세 사람을 지난 13일 한 자리에서 만났다. 그날도 <알쓸신잡> 출연으로 인기몰이중인 김상욱 교수(경희대)의 북토크에 함께 가던 길이었다.

소셜벤처 ‘걸스로봇’ 이진주 대표
“문화공간 통해 평등한 과학교육 시도”


과학전문서점 ‘갈다’ 이미영 매니저
“북토크 강연자 최소 40% 여성으로”


콘텐츠개발 ‘과학과사람들’ 최진영 팀장
“팟캐스트 통해 여성과학자 소개”


이진주 대표는 최근 제주도에 과학문화공간 ‘별곶’을 만들고 과학 강연 프로그램 등을 꾸리고 있다. 오는 22일에는 가수 요조와 김상욱 교수가 함께하는 토크 캠프를 연다. ‘별곶’은 여성도, 소외계층 어린이도 함께하는 평등한 과학교육을 지향한다. 소셜벤처 걸스로봇을 통해 여성 과학인재를 발굴하고 지원해오다 교육으로 눈을 돌린 건, 모든 연령과 젠더를 대상으로 한 교육만이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킨다는 판단 때문이다.

“여성과학자를 연사로 모시고 그들의 삶을 들려주면, 굳이 ‘페미니즘’이란 말이 들어가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거든요. 남성과학자가 절대적으로 많다 보니 강연자 비율을 50대 50으로 맞추긴 어렵지만, 최소한 3대 1 정도는 유지하려고 노력하죠. 내년엔 ‘수학계 대모’ 여성 4명을 모실 예정이예요.”

이미영 매니저는 지난 6월 서울 삼청동에 문을 연 과학전문서점 ‘갈다’의 운영을 맡고 있다. 50명 중에 단 5명이 여학생이던 시절 공대를 다닌 그는 “지금 생각해보면 (공대에서) 살아남은 여성들은 ‘기가 세다’, ‘튄다’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유리천장을 뚫은 훌륭한 여성과학자도 있지만 사실 독보적으로 잘 하지 않더라도, 계속 성장하는 연구자들도 있어야 하는데 정말 ‘센 여자’들만 남게 된다”고 했다. 그가 책꽂이 한 편에 여성과학·공학자들만의 책을 따로 진열하는 코너를 만든 이유다. 강연의 연사도 최소 40%는 여성으로 구성하려고 노력한다. 그는 “롤모델이 없어 포기하던 (이공계) 여성들의 삶이 계속될 순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원종우 대표와 함께 ‘과학과사람들’을 만든 최진영 팀장 역시 “주목받지 못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발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과학과사람들’은 6년 전부터 팟캐스트 ‘과학하고 앉아 있네’를 만들며 과학 대중화에 앞장서 왔다. 한 회당 평균 청취자가 50만명에 이른다. 최 팀장은 “과학사를 다루는 팟캐스트 코너를 통해서 여성과 남성 과학자를 번갈아 소개한다든지, 폄하된 여성들의 업적을 알리고자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코스모스’를 쓸 때 앤 드루얀의 비중이 결코 작지 않았을 거예요. 다양한 관점이 과학과 만날 때 지평이 넓어지고 또 다른 감동과 성찰을 줄 수 있는 것 아닐까요?”

과학자의 언어를 새로운 시선으로 해석하는 이들의 활동이 결국 과학의 매력을 더 풍성하게 만드는 셈이다. 적어도 ‘남성이 지배하고 여성은 배제되는’ 과학이 지속되지 않도록 미약하나마 제동장치가 될 수도 있다. 이 매니저는 “기울어진 운동장 반대 편에 추 하나를 더 매달거나 수평이 맞는 안경을 제공하는 의미”라고 했다.

이 대표는 ‘과학계의 송은이가 필요하다’고 비유했다. ‘개그맨 송은이’는 최근 수년간 지상파는 물론 종편 방송에서도 소외된 여성 예능인들을 모아 팟캐스트와 유튜브 콘텐츠를 직접 만들었다. 이들 콘텐츠가 인기를 끌면서 여성 예능인들은 역으로 지상파 예능 진행자로 줄줄이 진출했다. 이처럼 과학을 즐길 수 있는 판을 여성이 주체적으로 짜는 것이 이 대표의 목표다.

“과학기술이 언어가 되는 세상이 오고 있는데 여성만 계속 소외될 순 없잖아요. 여성과학자뿐 아니라 과학을 즐기고 향유하는 여성도 늘었으면 해요.”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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