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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동행 취재] "수갑 채워라"···윤창호법 첫날, 음주 측정 현장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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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18일 오후 서울 강남의 한 도로에서 음주운전 측정을 준비하는 경찰관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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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

18일 오후 11시10분, 서울 강남의 리베라호텔 앞 음주단속 현장에서 음주감지기의 신호음이 울렸다. 교통경찰관들이 차선을 줄이고 지나가는 차 운전자들에게 감지기를 대기 시작한 지 40분 만이었다.

운전자는 경찰관의 지시대로 차를 갓길에 세우고 음주측정기를 입에 댔다. 하지만 몇 번의 시도에도 실패했다. “숨을 들이마시지 말고 내쉬어라” “아이들도 풍선 불면 이 정도는 다 한다”는 경찰의 재촉 끝에 그가 힘껏 숨을 내뱉었다. 결과는 혈중알코올농도 0.035%. 처벌 대상은 아니었다. 운전자는 자신도 결과가 의외라는 듯 기뻐하며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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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중알코올농도 0.035%가 나왔다. 현재는 처벌받지 않지만 내년 6~7월 '윤창호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면허 정지 처분을 받게 된다. 이가영 기자


지난 9월 부산에서 음주 운전자가 몰던 차량에 치여 사경을 헤매다 결국 세상을 떠난 고 윤창호씨를 계기로 제정된 일명 ‘윤창호법’이 18일 시행됐다.

윤창호법은 음주운전 사망사고를 내면 처벌을 강화하는 개정 특정범죄 가중처벌법과 운전면허 정지ㆍ취소 기준을 강화한 개정 도로교통법을 합쳐 부르는 말이다. 개정된 특가법은 음주운전 사망사고를 낸 운전자의 처벌 수준을 현행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서 ‘최고 무기징역 또는 최저 3년 이상의 징역’으로 상향 조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이날 시행됐다.

음주운전 기준을 강화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은 내년 6월 시행될 예정이다. 음주운전 면허정지 기준은 현행 혈중알코올농도 0.05% 이상에서 0.03% 이상으로, 면허 취소 기준은 0.1% 이상에서 0.08% 이상으로 강화됐다. 이 개정안 시행 이후였다면 해당 운전자도 면허 정지 처분을 받게 되는 상황이었다.

기자가 동행한 리베라호텔 앞 단속지점을 지나는 차량은 많았지만 단속 분위기는 순조로웠다. 운전자들은 거리낌 없이 단속에 응했다. 다수의 대리운전 기사들이 눈에 띄었다. 40분이 지나도록 음주운전 적발이 한 건도 없자 경찰관은 “윤창호법 홍보가 잘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강남경찰서 관계자는 “윤창호법 시행 예고 기사들이 나오면서 음주운전 적발 건수는 줄었다. 이전 1시간에 5건 정도였다면 현재는 2~3건”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순간, 이내 또 다른 운전자가 정밀 음주측정을 위해 차량에서 내렸다. 어찌 된 일인지 이 운전자 역시 1초 이상 음주측정기를 불지 못했다. 처음에는 입술이 아파서 오래 불지 못한다고 했고, 이후에는 심장 통증을 호소했다. 나중에는 폐 질환이 있다고 말을 바꾸었다. 30여 분간 이어진 실랑이 끝에 3회 이상 음주측정 거부로 경찰서 동행을 요구하자 이 운전자는 오히려 “나를 체포하라”며 수갑을 채울 것을 요구했다. 결국 운전자는 순찰차를 타고 경찰서로 이동했다.

강남경찰서 관계자는 “처벌이 강해진 만큼 음주 측정 자제를 거부하는 등 일부 부작용에 대한 추가 입법 조치 등도 고려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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