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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단독] 故 김용균 발견 뒤 잃어버린 1시간 “119 신고보다 윗선 보고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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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스토리 - 이상한 보고체계①] 인명사고는 대내보고, 재난사고는 대외보고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 숨진 김용균씨(24)가 11일 동료에 의해 발견된 시각은 오전 3시23분. 반면 김씨의 사고가 경찰에 신고된 시간은 같은 날 오전 4시25분이었다. 그 사이 1시간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최초 발견자는 왜 경찰, 소방에 바로 신고하지 않았나. 세계일보 취재결과 김씨가 소속된 하청업체 한국발전기술은 대외기관보다 당직자, 안전관리부서 등 대내부서 보고를 먼저 하라고 지시하고 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일각에서는 사고를 은폐하기 위해 만들어진 체계가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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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 숨진 김용균씨(24). 故김용균 시민대책위제공


◆ 인명사고 최초발견→대내보고→관계기관 사고보고

17일 세계일보가 입수한 한국발전기술의 ‘재난안전 비상보고 절차’에 따르면 발전소 내 한국발전기술 직원이나 협력사원에 대한 인명사고가 났을 때 ‘즉각 대응 후 구두(서식) 보고’를 하라고 돼 있다. 함께 명시된 유선(전화)보고 설명에는 사업소장, 본사 재난안전(팀), 발전본부장으로 연결되는 재난 연락 체계가 담겨있었다. 즉 응급처치 후 경찰 신고보다 ‘윗선’에 먼저 보고하라는 것이다.

한국발전기술의 사고 대처 순서는 ‘비상보고 체계도’에 더 자세하게 나와 있다. 긴급 상황 발견자는 주간에는 안전담당자, 야간 및 휴일에는 당직 교대 근무자에게 ‘대내보고’를 하도록 돼있었다. 안전담당자에는 사내 ‘공무팀장’, ‘운영팀장’ 등이 속해있었으며 이들은 발전소별 책임자인 ‘사업소장’에게 다시 연락을 취했다. 연락을 받은 소장은 고용노동부, 경찰 종합상황실, 소방서, 재난방제센터, 안전보건공단 등 대외 관계기관에게 사고를 보고했다. 3단계를 거치는 사이 내부에선 환자에 대한 1차 응급처치와 병원이송 등 2차 응급처치가 이뤄지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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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가 입수한 한국발전기술 한 사업소의 ‘재난안전 비상보고 체계도’. 인명사고 때 선(先) 대내보고, 후(後) 대외보고 체계가 명시돼 있다.


반면 재난, 화재 사고는 인명사고와 달랐다. 초기 화재 발생 때 경찰, 소방 등 유관기관 연락 후 구두(서식)보고를 하라고 명시돼 있었다. 인명피해는 대내보고를 먼저 하지만 재난, 화재사고는 유관기관에 대외보고를 우선 하라는 것이다.

◆ 직원들의 증언 “2~3년쯤 한 직원이 119 먼저 신고했다가 질책”

이 같은 보고체계에 대한 직원들의 증언도 나왔다. 한국발전기술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 A씨는 17일 세계일보와 만나 “사고를 당하면 팀장, 파트장에게 연락하고 차장에 연락하는 단계가 있다”며 “사고가 나면 보통 119 신고가 먼저인데 여기는 순서가 바뀌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사무실, 원청 등 본인들 판단하고 그다음에 신고하도록 돼 있다”며 “저희는 체계가 그렇게 잡혀있다. 실제 교육도 그렇게 받는다”고 했다.

실제 사고 발견 후 119에 먼저 신고를 했다가 질책을 당한 사례가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국발전기술의 직원 B씨는 “2~3년 전쯤 발전소에서 일하다 손가락이 잘린 직원이 있었다”며 “이때 한 직원이 당직자에 알리기 전 119에 신고를 먼저 했다가 (보고체계 문제로) 윗선에 질책을 당했다”고 했다. 그는 “이런 사례는 많다”며 “이런 보고체계를 통해 사고 은폐도 가능하다고 본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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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화력발전소 컨베이어 벨트. 故김용균 시민대책위 제공


◆ 김씨 신고 늦어진 이유는? “상대방이 신고하겠거니…잘 못 알아들어서”

발전소를 운영하는 한국서부발전 측은 “방재센터에 사고 신고가 들어왔고 경찰에 신고했다”며 김씨의 사고 신고가 대내적으로 먼저 이뤄 것을 인정했다. 대내보고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문제점도 드러났다. 그는 신고가 늦어진 이유에 대해 “그때 한분이 현장으로 가면서 다른 한분에 ‘경찰 모시고 현장으로 와’라고 말했는데 그분이 잘못 듣고 상대방이 신고하겠거니 하고 기다렸다고 하더라”면서 “정문에 기다렸는데 경찰이 안 와 확인해보니 신고를 안 한 것을 알고 (그제야) 경찰에 신고를 했다”고 했다.

협력업체의 주장은 서부발전과 엇갈리고 있다. 한국발전기술 측은 18일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보고체계가) 가이드라인일 뿐 실제와 다르다”라고 항변했다.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모를 발견자를 위해 만들어놓은 ‘연락망’일 뿐으로 119가 뒷전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외부 신고와 (대내보고를) 동시에 하고 있다”며 “(피해자를) 발견하면 119에 신고하는 게 있을 수 있고, 본사나 본부 내에서 정확하게 전화할 때가 있다”고 했다. 김씨 최초발견자의 대내보고 시간을 묻는 질문에는 “잘 모른다”는 답변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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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씨가 발전소에서 일하며 사용한 메모장과 작업복. 故김용균 시민대책위 제공


◆ 전문가 “대내보고 먼저 하면 골든타임 놓쳐…비정상적”

전문가들은 이처럼 112, 119 신고보다 내부보고가 먼저 이뤄지면 자칫 ‘골든타임’을 놓쳐 사고를 더욱 키울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하성 우석대 교수(소방방재학)는 18일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소방차나 다른 외부기관의 긴급출동은 기본적으로 5~8분정도가 소요되기 때문에 대내보고를 먼저 하다보면 골든타임을 놓칠 가능성이 커진다”며 “먼저 신고를 하고 내부적으로 처리하는 게 정상적인 대응”이라고 꼬집었다.

공 교수는 이어 “(한국발전기술의 보고 체계는) 혹시나 문제가 없다고 하면 회사 이미지를 고려해 자체적으로 해결하려 하는 의도로 비춰진다”며 “선진국 같은 경우 사소한 거라도 모두 관계기관에 보고해 데이터로 남기고 사고 예방에 활용하는데, 이런 것은 차후 재발 방지차원에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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