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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러시아, 美 대선개입 공작' 보고서 5가지 시사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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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상원 정보위원회가 러시아가 각종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2016년 미국 대선을 포함한 정치적 사안에 영향을 미쳤다는 내용의 보고서 2건을 17일(현지 시각) 공개했다.

보고서는 영국 옥스퍼드대와 네트워크 분석회사 ‘그래피카’가 공동 작성한 것과 사이버보안업체 ‘뉴 날리지(New Knowledge)’가 각각 작성했다. 보고서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인 예브게니 프리고친이 소유한 ‘인터넷 리서치 에이전시(IRA)’와 여러 자회사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미국 여론을 움직여 미국 대선에 영향을 주려고 했던 작전 과정이 담겼다.

뉴욕타임스(NYT)는 2건의 보고서를 분석해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러시아가 벌인 여론 공작이 낳은 시사점 5가지를 정리했다.

조선일보

2018년 11월 7일 중간선거가 끝난 직후 열린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 스캔들과 관련해 질문한 CNN 기자와 언쟁을 벌이고 있다. /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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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흑인층을 겨냥하다

뉴 날리지 보고서에 따르면, IRA는 소셜미디어에서 미국 흑인층을 주요 표적으로 삼았다. 보고서에는 "다른 인종 및 종교 집단은 페이스북 페이지나 인스타그램에서 표적이었으며, 특히 흑인 커뮤니티는 광범위한 전략의 대상이었다"고 나와있다.

흑인층은 대표적인 민주당의 지지층이기 때문이다. IRA는 미국 흑인의 역사와 급진적 흑인 운동단체 ‘흑표당’, 흑인 인권 운동가 말콤 엑스 등의 콘텐츠에 관심을 가진 이용자를 겨냥해 투표를 만류하는 내용의 게시물을 올렸다. 유튜브에서 IRA는 경찰이 비무장 흑인들을 총으로 쏘는 장면을 보여주는 영상 채널 ‘쏘지마(Don’t Shoot)’, ‘흑인으로 사는 것(BlackToLive)’ 등을 운영하기도 했다.

IRA가 관리한 이스타그램 계정 중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계정의 아이디는 ‘블랙스타그램(blackstagram)’으로 팔로워수가 30만명이 넘는다. IRA가 만든 페이스북 페이지 81개 중 30개는 흑인층을 겨냥한 것이었다. 흑인 인구 약 120만명이 이 페이지들을 팔로우한 것으로 확인됐다.

17일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와 연방의회 흑인의원 모임인 ‘블랙 코커스’는 공식 성명을 내고 러시아가 흑인 유권자를 표적으로 삼았다는 점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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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정보당국은 러시아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을 돕기 위해 힐러리 클린턴 2016년 대선 민주당 후보 측근의 이메일을 해킹했다고 결론내렸다. /조선DB


② 목표 하나, 민주당 투표율을 낮출 것

IRA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대선에서 당선시키기 위해선 민주당 유권자들이 투표장으로 향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옥스퍼드 보고서에 따르면 IRA가 만든 소셜미디어 계정들은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자 대신 버니 샌더스 민주당 경선 후보를 지지한 사람들에게 투표를 하지 말라고 하거나 녹색당 후보를 지지하라고 부추겼다.

흑인 유권자들에게는 ‘힐러리가 KKK로부터 2만달러를 선거 자금으로 받았다"고 헛소문을 퍼트렸다. KKK는 미국 극단적 백인우월주의단체다. 뉴 날리지는 보고서에서 이 같은 게시물을 "악의적인 지시", "투표 규칙을 혼동하게 만드는 게시물"이라고 비난했다.

③ 페이스북에 가려진 인스타그램 공작

대부분의 언론은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과 관련해 페이스북을 그들의 주요 공격 무대로서 주목했다. 그러나 뉴 날리지 보고서는 IRA가 인스타그램에서 더 많은 영향력을 발휘했다고 지적했다. 인스타그램 이용자들이 IRA가 만든 계정에 ‘좋아요’를 누르거나 게시물을 공유하는 등의 활동이 1억8700만건으로 집계됐다. 페이스북에서는 7650만건에 그쳤다.

뉴 날리지는 "우리는 인스타그램이 러시아 개입 활동의 주요 무대라고 평가한다"고 했다. IRA는 구글 플러스, 핀터레스트, 텀블러 등의 소셜미디어에서는 활동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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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10일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가 워싱턴 DC 의사당에서 열린 미국 상원 법사위원회와 상무위원회의 합동 청문회에 출석해 무단 유출된 페이스북 이용자 개인정보가 2016년 대선에 이용됐다는 의혹과 관련해 증언하며 사과의 뜻을 밝히고 있다. /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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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2016년 대선 2년 후, 사그라들지 않는 러시아 스캔들 여파

인터넷 여론 조작으로 타국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그동안 러시아가 외교전에서 자주 활용해 온 수법이다. 러시아는 에스토니아, 조지아, 우크라이나 등 주변 인접국에 대해서도 비슷한 수법을 사용했다.

그러나 2016년 미국에서 벌인 러시아의 개입 활동은 여러가지 역사적인 기록을 남긴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번 러시아 개입은 △최초로 미국 대선을 노린 외세의 대규모 공작 △해외 국가가 미국 국민을 겨냥해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공작 △냉전 이후 물리적인 무기를 사용하지 않은 가장 큰 규모의 공격이라고 NYT는 분석했다. 이번 사건은 앞으로 수년간 연구될 만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의 정치 공작원들은 인터넷을 통한 여론 조작술을 시험하는 등 이번 러시아 사례를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⑤ 러시아는 멈추지 않는다

미국 정부와 소셜미디어 기업들이 러시아가 벌인 일들을 공개한 이후 러시아는 공작을 중단했을까. 대답은 ‘그렇지 않다’다. 러시아는 이후 기업명을 변경하고 근거지를 옮기는 등 전략을 바꿨다.

실제로 IRA가 활동을 가장 활발하게 벌인 시기는 대선이 끝난 후 약 5개월 후인 2017년 4월이었다. 당시 시리아가 미사일 공습을 벌이고,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동부에서 수니파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 근거지에 ‘폭탄의 어머니’라 불리는 GBU-43을 투하했으며, 미국 세제개혁이 발표됐다.

2017년에는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IRA 게시물은 5956건으로 2016년 2611건 대비 약 2배 넘게 늘었다. 소셜미디어 기업들은 러시아의 활동을 막기 위해 시스템을 강화했지만 IRA는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뉴 날리지 보고서는 "지난 5년간 허위 정보 유포 행위가 작은 소란에서 정보 전쟁으로 번지고 있다"며 "미국인들은 정부와 소셜미디어 플랫폼이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느라 안보 문제에 신경을 덜 쓰고 있다는 데 우려하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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