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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박영환의 워싱턴 리포트] 트럼프, 거짓말 그리고 북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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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거짓말을 잘한다. 워싱턴포스트의 팩트체크에 따르면 그는 취임 후 지난 10월말까지 649일 동안 6420개의 거짓말이나 오해를 살 수 있는 주장을 했다. 하루 평균 10개의 거짓말을 한 셈이다. 지난 10월1일 한 정치 유세에서는 84가지 거짓말을 쏟아냈다. 중간선거 기간에는 하루에 평균 30건의 거짓말을 했다. 이 정도면 거의 입만 열면 ‘뻥’이다. 밥 우드워드와 함께 워터게이트 사건을 보도해 퓰리처상을 받은 칼 번스틴은 역대 미국 대통령들 중에서도 트럼프의 거짓말은 특별하다고 평가한다. “우리는 자신의 정책과 믿음을 실현하고 세계에 관여하는 데 있어 거짓말과 거짓을 기본 수단으로 활용하는 이런 대통령을 가진 적이 없다.”

숨쉬듯이 계속되는 트럼프의 거짓말이 국내 문제에만 국한될 리 없다. 일반적으로도 대통령의 거짓말은 대외 정책과 관련된 이슈에서 국내 유권자들을 상대로 자주 목격된다고 한다.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는 ‘왜 리더들은 거짓말을 하는가’라는 책에서 세계 정상들의 대외정책 관련 거짓말들을 분석한다. 그는 서로를 늘 의심하고 상대방의 말을 검증할 수 있는 정상들 간에는 거짓말을 할 동기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반면 권위주의 국가나 민주주의 국가 구분 없이 지도자들은 대외정책을 국내정치용으로 활용하기 위해 대중에게 거짓말을 할 동기가 충분하다고 결론내린다. 거짓말에는 여론을 관리하기 위한 정보 조작과 숨기기가 포함된다. 정부와 대중 사이의 정보 불균형은 대통령의 대외정책 관련 거짓말을 가능하게 하는 요인이다.

트럼프의 북한 관련 발언은 어떻게 봐야 하나. 그는 취임 첫해 유엔총회 연설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로켓맨’이라고 조롱하고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러던 그가 지난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김정은과 정상회담을 했고 입장을 180도 바꿨다. 공동성명에는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가 포함되지 않았다. 북한은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 등을 앞세우면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재확인했다. 트럼프는 이를 두고 “더 이상 북한의 핵 위협은 없다”고 선언했다. 미국 언론들은 그가 합의문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거짓말을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북·미는 합의문 이행을 두고 6개월이 넘도록 제자리 걸음만 하고 있다. 제재 문제가 걸림돌이 되면서 협상마저 중단됐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내년 1월이나 2월에 김정은과 2차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면서 “우리는 잘 하고 있다”고 자신한다. 북·미 간의 내밀한 사정을 속속들이 알 수 없으니 그의 말이 거짓말인지 확신하기는 어렵다. 다만 잘 되고 있다는 말이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비판은 점점 강해지고 있다. 미국 주류 언론과 리버럴 싱크탱크들은 북한의 미사일 개발 등을 소개하며 트럼프의 대북 낙관론이 근거 없음을 증명하려고 노력 중이다.

여기까지가 2018년 말, 집권 후반기에 들어서는 트럼프 정부의 대북 정책 현황이다. 트럼프의 북한 관련 발언이 현실과 거리가 있더라도 나름의 의도가 있을 수 있으니 무조건 비난할 필요는 없다. 국내적으로 외교 성과물을 내세우려는 정치적 의도일 수 있고, 북한을 협상에 묶어두고 상황 악화를 막으려는 전략일 수도 있다. 문제는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거짓말은 오래가기 어렵다는 점이다. 보스턴글로브는 지난해 트럼프 거짓말의 사이클을 분석한 적 있다. 거짓말, 허세, 현실 시인, 화제 전환의 4단계다. 이 분석이 맞다면 트럼프는 어느 순간 대북 낙관론은 허풍이었다고 시인하고 강경론으로 급선회할 수도 있다. 트럼프가 거짓말을 계속할 수 있을 정도의 최소한의 성과가 절실한 이유다. 하루 빨리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이 재개되고, 내년초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준비가 시작돼야 한다. 북한과 잘하고 있다는 트럼프의 ‘장려할 만한’ 허풍이 내년에도 계속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워싱턴|박영환 특파원 yh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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