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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밀렵과 안식처의 공존…동남아 곰 생츄어리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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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기고-곰 보금자리: Project Moon Bear

베트남-캄보디아 곰 ‘생츄어리’ 답사기 ①

베트남 사육곰은 한국과 비슷…쓸개즙 상업화로 개체 수 급증

캄보디아는 애완 목적 말레이곰 밀렵 성행…처벌 미비로 방치

탐다오 생츄어리는 세계 최대, 최고 수준…인공시설물 매일 점검

주로 NGO가 주도…지속적 캠페인 덕에 정부 인식도 ‘긍정적’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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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연합이 세 마리 사육곰을 농장에서 구조했다. 곰들은 임시로 동물원에서 보호하지만, 앞으로 남은 500여마리의 곰을 생각하면 장기적으로 곰들이 남은 생을 보낼 공간이 필요하다. 2018년 11월17일부터 열흘 동안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Project Moon Bear) 활동가 두 명이 동남아시아 곰 ‘생츄어리’(생크추어리·sanctuary) 세 곳을 다녀왔다. 한국에서 학대받는 사육곰을 구조할 생츄어리를 만들기 위한 견학인 셈이었다.

시민들이 십시일반 모아준 돈으로 다녀와야 했기에 시간과 체력을 가장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노력했다. 베트남, 캄보디아, 호주, 영국 등의 다국적 전문가들이 10년 이상 곰들을 돌보아 온 경험을 고스란히 보고 들을 수 있었다.

시골 재래시장에 가면 밀렵한 야생동물의 고기를 버젓이 판매하는 나라에서 불법 곰 농장의 곰을 구조하고 보호하는 활동은 어떤 경험이었을까. 한국 상황을 잘 아는 그곳 활동가들은 우리 프로젝트에 큰 응원을 보내며 적극적으로 돕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열흘간 보고 듣고 느낀 것들 두 편으로 나누어 적는다.



*생츄어리: 열악한 환경에서 사는 동물을 구조하여 죽을 때까지 편안하게 돌보는 시설을 말한다. 동물을 이용해 이윤을 창출하지 않으면서 단지 동물을 보호하는 것이 목적인 이 생소한 시설은 아직 한국에 들어서지 않았다. 야생동물구조센터와 유기동물보호소는 동물을 구조해서 일시적으로 보호한 뒤 야생으로 돌려보내거나 주인을 찾아주는 것이 본래의 목적이므로 생츄어리와는 성격이 미묘하게 다르다. 생츄어리에서 편안히 생을 마감하는 동물은 더 이상 사람에게 이용 가치가 없는 동물이다. 그래서 해외의 농장동물 생츄어리들은 돼지나 닭을 자연수명까지 기르며 더 이상 동물을 축산물로 소비하지 않겠다는 상징적 의미를 표현하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생소한 단어이지만 우리말로 옮기기가 아직 마땅치 않아 일단 ‘생츄어리’ 그대로 쓰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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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듯 다른 베트남과 캄보디아


베트남과 캄보디아는 서로 거리는 가깝지만 성격은 다른 나라였다. 곰 이야기만 하자면, 베트남은 곰의 쓸개즙과 쓸개와 발바닥 등을 약재로 쓴다. 여전히 베트남에서는 상업적으로 곰을 길러 살아 있는 곰에서 쓸개즙을 빼 먹는 일이 성행한다.

곰을 상업적으로 쓰는지가 중요하다. 1996년에 베트남 전체에 500마리로 추정되던 사육곰 수는 2006년에 5000마리로 10년 만에 10배가 늘었다. 웅담의 효능이 갑자기 좋아져서가 아니라 돈이 된다고 하니 가난한 사람들이 너도 나도 뛰어든 참혹한 결과다.

이때 베트남에 곰 생츄어리들이 여럿 생겼다. 비정부기구(NGO)들은 베트남 정부와 함께 곰을 구조하며 곰 사육을 불법화했다.(한국은 아직 합법이다) 대중에게 곰 쓸개를 대체할 약물을 소개하고 다른 직업을 갖도록 유도한 결과 지금은 900여 마리가 사육되는 것으로 추정한다.

캄보디아에는 곰 쓸개즙 농장이 없다. 그래서 쓸개즙 생산 능력이 좋은 반달가슴곰보다 애완동물로 인기 좋은 말레이곰이 구조되는 곰 가운데 다수를 차지한다. 밀렵꾼들은 야생에서 어미곰을 죽여 고기를 별미로 먹고 귀여운 새끼는 부자들에게 비싼 값으로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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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로 50만원 선에 거래되는 새끼 곰은 어릴 때는 예쁨받다가 덩치가 커지고 사나워지면 방치된다. 말레이곰은 덩치는 작지만 호랑이와도 싸울 수 있는 곰이다. 그래서 말레이곰의 경우에는 정부에 압수되기보다 사육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법적으로 처벌할 근거도 있고 제도도 있지만 현실에서의 처벌은 곰을 포기하는 정도에서 끝난다. 안타깝게도 두 나라 모두 야생에 몇 마리의 곰이 어디에 사는지, 사육되는 곰의 수는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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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과 캄보디아 생츄어리 설립


베트남에서는 프리 더 베어스(Free the Bears)가 운영하는 깟 띠엔 국립공원(Cat Tien National Park) 안의 생츄어리 그리고 애니멀스 아시아(Animals Asia Foundation)가 운영하는 탐 다오 국립공원(Tam Dao National Park)의 생츄어리를 답사했다.

두 군데 모두 베트남 정부가 국립공원 부지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계약 형태이다. 처음에는 동물복지에 무지했고 관심도 없던 베트남 정부는 단체들의 지속적인 캠페인과 로비가 이어지면서 태도를 바꾸었다. 여전히 고지식한 관료제이지만 지금은 곰 농장 단속을 나가면 NGO들과 손발이 잘 맞을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시설과 운영에 드는 비용은 모두 NGO가 부담한다. 5년, 10년, 20년짜리 프로젝트를 계약하는 형식으로 모든 책임과 소유권은 정부가 가진다. 만약 계약이 끝나고 재계약이 성사되지 않으면 NGO는 빈손으로 떠나게 된다. NGO들은 그 지역 사람들이 스스로 생츄어리를 운영할 수 있게 되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직 베트남 정부가 생츄어리를 운영할 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당장 이 꿈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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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의 타마오 야생동물구조센터(Phnomtamao Zoological Garden and Wildlife Rescue Centre)는 캄보디아 정부가 멸종위기 야생동물을 구조하고 보호하기 위해 1995년 설립했다. 2000헥타르의 산림부지에서 구조센터는 100헥타르에 걸쳐 생츄어리 겸 동물원을 운영한다.

프리 더 베어스는 1997년부터 멸종위기 동물 가운데 두 종류의 곰(말레이곰, 반달가슴곰)을 도맡아 구조하고 보호하는 일을 한다. 역시 캄보디아 정부와의 프로젝트 계약을 맺어 모든 소유권은 정부가 가지고 운영은 NGO가 한다. 캄보디아 정부는 땅, 전기, 수도 등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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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지역 상황에 맞는 운영


각 생츄어리들은 해당 지역의 상황에 맞게 서로 다른 규모와 형태로 곰을 보호한다. 깟 띠엔 생츄어리는 새로 시작하는 곳이라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곰에게는 편안하고 곰을 돌보는 사람들에겐 일하기 쉬운 시설을 늘려 나가는 중이었다.

세 개째 짓는 중인 베어하우스는 건축 공법을 규격화해 복잡한 베트남 관료의 허가를 얻기도 쉬워졌다고 한다. 새로 짓는 동물병원은 최대한 자연광을 활용할 수 있도록 창을 많이 냈다. 전기울타리는 100퍼센트 태양광으로 운영하고, 빗물을 받아 식수를 뺀 나머지 모든 용도에 사용한다.

이곳은 우리가 다녀온 세 개의 생츄어리 가운데서 가장 자연 상태에 가까운 방사장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래서 가끔은 곰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기도 한단다. 곰에게는 최적의 형태일지도 모르나 인력이 부족해 아직 상주하는 수의사가 없고 합사 훈련이나 입방사 훈련 같은 개입도 아직 충분하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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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마리 곰들의 안식처


탐 다오 생츄어리는 세계 생츄어리 연합(Global Federation of Animal Sanctuaries)에서 최고등급을 받은 곳이다. 평가는 동물 관리, 운영, 재정, 가이드라인, 교육과 홍보, 직원, 시설, 보안, 안전, 수의학적 관리 등의 항목으로 이루어진다.

운영 주체인 애니멀스 아시아는 튼튼한 재정을 밑바탕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생츄어리를 중국과 베트남에서 운영한다. 탐 다오 생츄어리는 12헥타르의 부지에 10개의 베어하우스가 있고, 이곳에 178마리의 곰을 수용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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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과 사람의 안전을 위해 다소 인공적인 방사장을 만든 대신 곰들에게 어린이 놀이터처럼 놀 수 있는 시설물을 만들어 주었다. 그 많은 나무 인공시설물에 못이 튀어나오지는 않았는지 매일 점검한다는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이곳은 한 번에 60여 마리를 구조할 수 있는 계류시설과 이동 케이지를 갖추었다. 또 한 달에 두 번 예약을 받아 방문객을 들이고, 방문객은 철저한 교육을 받은 뒤에만 곰들을 구경할 수 있다.

캄보디아 타마오 생츄어리는 정부가 운영하는 동물원 형태의 시설에 속한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동물원이기 때문에 방문객이 곰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고, 이 때문에 생기는 스트레스와 질병 문제들이 계속 불거져 나온다고 한다. 태양광 전기는 물론, 곰의 똥을 발효시켜 만든 메탄가스로 음식을 조리하는 등 정부의 지원 아래 여러 가지 친환경 시범사업을 활발히 진행한다.

▶2부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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