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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일상이 교통체증·소음"…'집회·시위 공화국' 된 대한민국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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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11월 6만2254건… 작년보다 57% 폭증 / 김정은 답방·미투 찬반 갈등 등 / 이념·성별·세대간 맞불집회 많아 / 집회로 정권 바꾼 경험 영향 커 /“소음 일상화” 시민들은 피로감 /“내재된 사회 갈등, 집회로 표출 / 대의민주주의 작동 안한 탓도”

문재인정부 집권 2년 차인 올해 증폭된 갈등이 집회로 표출되면서 각종 집회와 시위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57%나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순실 게이트’ 때보다도 집회·시위가 더 많이 벌어졌다는 얘기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서울 도심에서 매주 열리는 진보단체와 보수단체의 집회는 정권교체와 맞물려 더욱 극심해진 사회갈등의 단면이란 분석이 나온다.

세계일보

13일 오후 청주시 오송읍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열린 '계란 산란일자 표기 반대 집회' 참가자들이 식약처 정문에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17일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1∼11월 전국에서 열린 집회·시위는 6만2254건으로 집계됐다. 집회를 신고하고 실제 개최하지 않은 경우는 제외한 수치다. 이를 환산하면 연말까지 총 6만7913건의 집회가 열릴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며 촛불집회가 시작된 2016년(4만5836건)이나 정권이 바뀐 지난해(4만3161건)의 집회·시위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올해 열린 집회·시위는 이념이나 성별, 세대 간 갈등이 표출된 사례가 많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놓고 갈라진 진보·보수단체의 집회가 대표적이다. 지난 15일 서울 마로니에공원에서는 백두칭송위원회의 ‘김정은 환영’ 행사가 열렸는데 다음날 세종문화회관 앞에선 백두청산위원회의 ‘김정은 답방 규탄’ 집회가 열렸다. 이 밖에도 ‘미투’ 정국에서 비롯한 혜화역 집회와 일명 ‘곰탕집 성추행’ 판결에 불복하는 집회로 대표되는 성대결 양상의 집회, 난민 수용 찬반 집회 등 맞불성 집회가 연이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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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14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거리에서 열린 `제25차 박근혜 대통령 무죄 석방과 정치투쟁 선언 지지 범우파 국민 총궐기 태극기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박 전 대통령의 무죄 석방 촉구 관련 구호를 외치고 있다.연합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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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정국을 거치며 정치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터진 것이 집회·시위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문재인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집회·시위의 권리 보장을 기조로 삼았다. 지난해 집회·시위 관련 사법처리는 1423명으로 2016년의 3396명보다 41% 줄었다. 지난해 6월부터는 법률 개정으로 청와대 앞에서의 집회·시위도 가능해졌다. 덕분에 청와대 앞 분수광장은 광화문광장에 버금가는 ‘집회 1번지’로 거듭났다.

그러나 ‘집회로 정권을 바꾼’ 경험이 과도한 집회 만능주의를 낳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회 질서나 정의와 관계없이 자기네 목소리를 관철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집회를 활용한다는 것이다. 지난 1일 민주노총은 정부의 탄력근로제 확대에 반발하는 민중총궐기를 열었다. 이들은 촛불정국에서 자신들의 활약상을 내세우며 정부를 압박했다. 지난달에는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잡월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직접 고용을 촉구하며 청와대 진입을 시도하다 경찰과 충돌하기도 했다. 소관 부처가 있는데도 청와대가 나서 해결하라고 촉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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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시위가 급증하면서 피로감을 호소하는 시민도 적지 않다. 종로구의 직장인 박모(30)씨는 “연일 집회가 반복되는 탓에 교통체증이나 소음이 일상이 됐다”며 “집회를 하더라도 시민의식을 지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택시기사 최모(57)씨도 “광화문에서 집회를 하면 강북 교통이 마비된다”며 “차로 위에서 행진이라도 하는 날엔 끝나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는 “그동안 내재돼 있던 사회적 문제나 구조적 문제들이 집회를 통해 표출되는 것으로 보인다”며 “한편으로는 대의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시민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면서 집회·시위가 늘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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