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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풍납토성 서쪽 외벽 처음 드러나…성벽 폭 ‘최소 31m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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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실된 줄 알았던 서쪽 성벽 첫 학술조사 성과

내벽 단면엔 깬돌강돌 번갈아올리며 석축쌓은 흔적 첫 확인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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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 초기백제시대의 왕성터로 유력한 서울 풍납동 토성(국가사적)의 서쪽 성벽 구간에서 ‘외벽’(바깥벽) 구간이 드러났다. 이에 따라 남은 서쪽 성벽의 폭은 최소 31m를 넘어설 것으로 보여, 풍납토성의 대표적인 경관으로 알려진 폭 43m의 동쪽 성벽 못지않은 장대한 규모로 온존해있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 9월부터 서울 풍납동 310번지 일대의 서성벽 복원 지구를 발굴조사해 지난해 나온 내벽에 잇따르는 ‘외벽’ 구간을 최근 확인했으며, 내벽 구간도 단면을 살펴본 결과 깬돌과 강돌을 번갈아 올리며 석축을 쌓는 기법을 쓴 것으로 처음 확인됐다고 17일 발표했다.

발굴된 외벽은 강물에 휩쓸려 유실된 서성벽의 남은 실체를 확인하는 첫 학술발굴조사 과정에서 나왔다. 연구소 쪽은 서성벽 터를 포함한 옛 삼표산업 사옥 신축예정터와 부근 일대의 3900여평을 연차적으로 정밀 발굴해왔으며, 앞서 지난 9월 서성벽 복원지구 내 유적에서 서성벽의 내벽과 중심 토루(土壘:흙을 다져 쌓은 시설물) 일부, 서문터를 확인한 바 있다. 연구소 쪽은 “서성벽의 남은 폭은 현재까지 최소 31m 이상인 것으로 추정되지만, 동쪽 성벽(폭 43m, 해자 포함 59m)의 사례에 비춰 한강변인 성 바깥쪽으로 하부 조사를 더 진행하면 폭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며 “교란에 따른 훼손이 심해 외벽 구간의 원형을 찾기는 어렵지만, 추가 조사를 하면 전체 규모나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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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는 이와함께 서성벽 내벽의 단면을 최초로 잘라 조사한 결과 쌓는 방식은 2011년 조사했던 동쪽 성벽과 같다는 것을 확인했다. 단, 중심 토루 안쪽으로 재료가 다른 흙들을 2차례 덧붙이며 쌓아 내벽을 구축하고 가장자리는 석축(최대 폭 5.8m, 잔존 높이 2.6m)으로 마감했다는 것을 밝혀냈다. 석축은 내벽 가장자리를 ‘┚’자형의 계단식으로 자른 뒤 깬돌과 강돌을 번갈아 가며 쌓아 올리는 수법으로 축조한 사실이 처음 확인됐다. 또, 서성벽 내벽을 동서로 관통하는 서문터의 경우 남은 부분의 길이는 9m, 최소 폭 7.3m, 최대 폭 9.6m로 파악됐다. 문터의 평면은 ‘八(팔)’자 모양으로, 가운뎃 부분은 좁고 성 안쪽을 향하는 부분은 양쪽으로 벌어져 내벽 석축과 이어지며, 바닥은 가운데가 높고 성 내부로 들어갈수록 낮아지는 얼개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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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납토성의 서쪽 성벽은 일제강점기인 1925년 일어난 을축년 대홍수 때 모두 쓸려 사라진 것으로 보는게 2000년대 초반까지 국내 고고학계의 통설이었다. 그러나 2003년 옛 삼표산업 사옥 신축예정터 일부에 대한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시굴조사로 기초부분 흔적이 나온데 이어 지난해 10월 연구소가 같은 구역에서 토성 서남쪽의 내벽 일부와 문터로 추정되는 유적을 찾아내면서 서성벽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입증되자 기존 통설은 근거를 잃게 됐다. 연구소 쪽은 “이번 조사는 서성벽의 내외벽을 모두 확인했을 뿐 아니라, 서문터의 규모와 구조, 성벽과 문터의 연결 관계 등을 고고학적으로 밝혀내 학술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연구소는 18일 오후 3시 풍납동 발굴 현장에서 유적,유물들을 공개하는 설명회를 연다. 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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