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4 (수)

대통령이 지시하고 장관들이 사과했지만...'외주화' 근본해법은 빠졌다

댓글 2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지난 11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사망한 고 김용균씨의 유품. 공공운수노조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작업하던 김용균씨(24)가 숨진 지 엿새만에 정부가 종합대책을 내놨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사고 재발’을 막으라 지시를 내리고 장관들이 사과를 했다. 전국 석탄화력발전소를 긴급 점검하고 안전수칙을 반드시 지키도록 만들겠다는 대책을 발표했지만, 불평등한 원하청 구조를 바꿀 근본적인 해법은 빠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 문 대통령 “벨트 하나까지 살펴라”

문재인 대통령은 17일 이날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면서 “최근 산재 사망의 공통된 특징이 주로 하청 노동자이고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사실이다. 원가 절감을 이유로 노동자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사용자 의무까지 바깥에 떠넘기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이 멈추지 않고 있다”면서 “관계 부처는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조사하고, 유족이 조사에 참여하는 방안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원청과 발주자 책임을 강화하는 등 산업 안전의 기본을 바로세우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안타까운 사고가 연이어 발생했다”며 “태안 뿐 아니라 발전소 전체를 발판 하나, 벨트 하나까지 꼼꼼하게 살펴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앞서 열린 확대경제장관회의에서는 정부의 안전대책들이 현장에서 시행되지 않는 이유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과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합동대책을 발표하고 “고 김용균님의 영전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유가족과 국민들에게 사과했다.

■“전국 발전소 긴급점검”

고용노동부는 이날 대책에서 태안화력발전소와 운영사인 한국서부발전, 비슷한 사고가 발생했던 전국 발전소를 긴급점검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태안화력에 대한 특별산업안전보건감독이 이날 시작됐고, 수사 결과 법 위반 사실이 드러날 경우 관련자를 처벌하기로 했다. 서부발전에 대해서도 안전보건 종합진단을 실시한다.

태안화력과 비슷하게 운영되는 전국 12개 석탄화력발전소도 노동부 주관으로 긴급 안전점검을 해 하청노동자에 대한 안전 의무를 원청이 제대로 이행했는지, 정비·보수 작업 때 안전수칙을 지켰는지 살핀다. 노·사와 유가족이 추천하는 전문가로 ‘특별 산업안전조사위원회’를 꾸려 석탄화력발전소 사고 원인과 원·하청 실태를 조사하고 개선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김씨 사고 이후 “위험한 업무를 외주화시켜 하청업체에 맡긴 것 자체가 사고의 원인”이라는 지적이 쏟아졌지만 위험한 업무에서 하청을 주는 걸 제한하는 내용은 빠졌다. 노동부는 “지난달 국회에 낸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에서 원청의 안전 책임을 강화했기 때문에 개정안이 국회에서 빨리 통과되는 게 관건”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하도급을 허용하지 않는 ‘위험작업’의 범위를 늘릴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산안법이 개정돼 이행되는 상황을 보고 검토하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산안법이 통과돼도 김씨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하청업체 비정규직’이다. 서부발전 등 화력발전 5사는 정부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김씨가 일했던 연료환경설비운전 업종을 정규직으로 전환할지 여부를 지난 7월부터 협의하고 있으나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날 브리핑에서 이재갑 노동부 장관은 “산업부와 협조해 조속히 결론을 낼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만 답했다.

■ “위험한 작업은 2인1조로”

산업통상자원부는 모든 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 같은 위험한 설비를 점검할 때 2인1조로 근무하게 하고, 낙탄제거처럼 위험한 설비 주변에서 하는 작업은 설비를 정지시킨 뒤 시행하도록 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경력 6개월이 못 된 직원은 단독작업을 금지시키고, 개인 안전장구를 완벽히 갖추도록 하겠다고 했다. 위험시설 주변 안전장치를 보완하고 비상정지스위치 작동상태도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당연히 지켜졌어야 할 안전수칙이 현장에서 지켜지게 하는 게 핵심인데, 또다시 안전수칙만 강조한 셈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인력을 어떻게 늘릴 것인가다. 이태성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간사는 “2인1조로 일하려면 지금 인력으로는 설비 점검 횟수를 줄여야 하고, 사고가 나면 결국 하청에 책임이 돌아오는 구조가 된다”며 “지난해 기준으로 5대 발전사의 연료환경설비운전 하청노동자가 2400여명인데, 2인1조 근무로 바꾸려면 인력을 두 배로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성윤모 산업부 장관은 “원청인 발전사가 증원 부담을 져야 하며, 앞으로 협의를 통해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산업부는 하청업체 신입직원 교육을 원청이 실시하도록 하겠다는 대책도 내놨는데, 이렇게 되면 ‘불법파견’이 될 수 있다.

■ ‘위험의 외주화’ 근본 대책은 없어

정부는 앞으로 구성될 화력발전소 특별산업안전조사위원회와 협의해 재발방지 대책을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용균씨 사고 시민대책위원회는 “‘죽음의 외주화’에 대한 고민조차 빠진 알맹이 없는 대책”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태안화력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시민대책위원회’는 이날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현장시설 개선과 함께 위험한 업무를 맡은 비정규직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는 기자회견에 나와 “정부가 운영하는 공기업인 한국서부발전이 아들을 죽였다”며 오열했다. 그는 “아들이 일했던 9·10호기만 서 있고 같은 위험에 노출된 1~8호기에서는 계속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면서 “지금 당장 멈춰야 한다. 지금도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이 죽음의 일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말했다.

남지원·손제민 기자 somnia@kyunghyang.com

최신 뉴스두고 두고 읽는 뉴스인기 무료만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